엄마랑 있을 때는 전쟁, 아빠랑 있을 때는 ‘세상 얌전’…비결은 ‘입 닥치기의 힘’ [워킹맘의 생존육아]
잠자리 전쟁만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등원 전쟁이 시작된다. 신 나게 놀다 잠이 든 아이들은 등원 시간이 다가와도 눈을 쉽게 뜨지 못한다. ‘그것 봐, 어제 일찍 안 자니까 그렇잖아!’ 화를 내고 싶지 않아도 목소리가 커진다. 아이들이 무사히 등원을 해야 엄마의 출근길이 수월하기에, 마음이 더욱더 급해진다.
일주일 간의 해외 출장을 앞두고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도 이 부분이다. 내가 자리를 비우면 남편이 아이 둘을 혼자 재우고 혼자 등원 시켜야 하는데, 이 전쟁을 남편 혼자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다. 남편에게 큰 짐을 지우고 오르는 출장길은 마냥 편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나의 걱정과 무관한 일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빠와 함께 일주일을 보내는 아이들은 마치 군 생활을 하듯 정확한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을 지켰다. 열 시가 넘어도 잠을 자지 않던 아이들이 9시 전에 잠이 들었다. 오전 8시가 넘어서도 일어나기 힘들어하던 늦잠꾸러기 아가씨들은 오전 7시에 기상해 아침까지 먹고 8시 30분에 등원을 마쳤다.
내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을 것 같던 우리 집의 일상이 오히려 더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다니, 서운함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안도감이 더 컸다. 내 남편이 나보다 육아 고수인 것은 분명했다. 스승으로 모시고자 한 수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남편이 하는 말은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였다.
아니다. 분명 그럴 리가 없다. 마법을 부린 것도 아니고 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아이들이 갑자기 새 나라의 어린이가 되었을까. 재차 묻자 남편 왈, “그냥 아홉시에 누워서 불을 끄고 아무 말도 안하고 자면 돼” 였다. 그제서야 무릎을 쳤다. 아빠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두 아이 사이에서 새근 새근 잠이 든 새 나라의 아빠 옆에서 아이들은 장난을 조금 치다가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아이들이 안자면 좀이 쑤셔서 “제발 자, 내일 늦잠 자지 말고”를 외치는 엄마 옆에서는 더 신나게 떠들던 아이들은 먼저 잠들어버린 아빠 옆에서 쉽게 눈이 감겼다.
아침 등원길에도 마찬가지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밥먹으며, 옷을 갈아입으며 온갖 딴 짓을 일삼던 악동들은 먼저 준비를 마치고 문 앞에서 신발까지 신고 ‘이제 유치원 가자’고 말하는 아빠를 군말 없이 따랐다고 한다. 물론 일주일간 매일 그러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일주일을 이렇게 ‘모범적으로’ 보냈다. 정말 낯설다. 사실 실제로 보지 못했으니 낯설다가 아니라 ‘낯설었을 것 같다’가 맞는 표현일 것이다.
저널리스트 출신의 작가 댄 라이언스는 저서 ‘입 닥치기의 힘’에서 “입 닥치는 부모가 되자”고 조언했다. 그는 자녀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눈을 쓸어버리듯 장애물을 제거하는 ‘제설기 부모’, 자녀를 절대 혼자 두지 않으며 열심히 숙제 하라고 끊임없이 강요하는 ‘타이거 맘’에서 벗어나라고 했다 .
사실 과거 우리 사회의 표준은 ‘입 닥치는 부모’였고, 우리도 다시 과거의 ‘조용한’ 부모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우리의 부모들은 바쁘고 할 일이 많았다. 아니면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거실에서 편히 앉아 신문이나 책을 읽고 싶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아이들을 바쁘게 또는 즐겁게 해주려고 일정을 짜서 달력에 가득 적어 놔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었다고 댄 라이언스는 말했다.
이런 부모들은 아이들을 돕는다면서 오히려 학대하고 있다. 문제 해결 방법, 혁신 하는 방법, 혼자 힘으로 알아내는 방법처럼 어른이 되었을 때 필요한 중요한 기술을 개발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를 대비하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이들을 나약하게 만들고 혼자 힘으로 성장하며 배울 기회를 빼앗고 있다고 그는 책에서 말했다.
잠자리에서 ‘제발 자라고’ 잔소리 하는 내 모습을 헬리콥터 맘이나 타이거 맘의 모습으로 치부하며 아이를 나약하게 만들고 아이들이 혼자 성장하며 배울 기회를 빼앗았다고 자책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말이 아니라는 것을 남편을 통해 봤기에, 말과 이를 통한 행동의 제약이 아이들을 바른길로(?)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배웠다.
이제는 조금 더 말(잔소리)을 줄이고, 아이들을 더 믿으며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지켜보는, ‘입닫는’ 부모가 되고 싶다. 내 아이들도 언젠가는 잠자리에서 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홀로서기가 가능한 어른이 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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