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어떤 물질'이 되는 순간…구남 조웅 '슬로우 모션'
비스츠앤네이티브스와 작업, 인디 신 주목
자립준비청년 돕는 '잡초쇼' 등 기획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경의중앙선 가좌역 앞 모래내시장에선 물(水)이 흐른다.
밴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이하 '구남')의 리더 조웅이 팀 데뷔 16년 만인 지난 20일 발매한 첫 솔로 정규 음반 '슬로우 모션'을 접하고 든 생각이다. 이 음반은 수맥(水脈)을 품고 있다. 물을 노래하거나 물의 정경을 그렸다. 무엇보다 물처럼 자연스럽다. 모래내시장 한 가운데 자리한 건물 2층 내 조웅의 작업실에서 꾸밈 없이 흘러나왔다.
구남은 2010년대를 전후해 고유의 사운드를 만들어온 팀이다. 일렉트로닉, 댄스, 모던 록, 뉴웨이브 그리고 트로트가 혼종된 밀도 높은 음악을 직조해왔다.
그런데 조웅의 이번 솔로 음반은 이 세상의 자연스러운 것들을 인위적이지 않게, 정갈하게 보여준다. 사운드의 청빈함이 세상을 품고 있으니, 음악이 단순한데도 결은 풍성하다. 주변 소리를 오도카니 받아들이는 앰비언트의 정경을 펼쳐낸다. 익숙함에 스며든 살짝 낯선 소리로 분위기를 환기하는 묘수.
그래서 타이틀곡 '외롭고 시끄럽고 그리워'를 비롯 '피어나는 물결', '하얗게 부셔지는' 등 14개 트랙은 장종완 현대미술 작가가 그린 음반 커버와 맞물린다. 장 작가는 초현실적 풍경, 예상치 못한 상황 등을 조합해 현대 사회에 똬리를 틀고 있는 불안 등을 모순적이면서 풍자적으로 그려내는 작업을 해왔다. 수런거리지만 시끄럽지는 않은 시장의 소리가 백색소음이 된 어느 평일 낮에 조웅과 만났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이번 앨범도 이곳에서 일부 작업하신 거죠?
"앞으로 낼 솔로 2집 작업도 여기서 했어요. 그러니까 여기서 5년 동안 있으면서 (구남 포함) 앨범 네 개를 작업한 거죠. 이제 여기서 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직 공간을 봐 둔 건 아닌데, 1층 상가 같은 걸 얻어서 그곳에서 작업하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 중이에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이는 곳에서 작업을 하고 싶거든요."
-작업 공간 자체에 대해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시죠?
"공간의 역할이 있는 것 같아요. 위치나 해당 공간의 특징이 어떤 성격을 부여하겠죠."
-이번 음반은 여기 모래내시장 작업실과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서교동 음악서점 라이너노트에서 녹음을 하셨습니다.
"드럼과 같이 연주한 곡은 라이너노트에서 녹음을 했고, 기타와 노래만 나오는 곡은 여기서 녹음했어요. 지금보다 좀 더 정리된 곳이었는데, 녹음하기에 좋은 '앰비언트 공간'이었어요. 이번 음반의 곡들은 어쿠스틱하고 편성이 많지 않잖아요. 그 단순함에 딱 맞는 사이즈의 공간 느낌을 연출하기에 좋았어요."
-그럼 주로 이곳에선 밤 시간대 녹음을 했나요? 아무래도 시장 안에 있다 보면 낮에는 소란스러움이 섞일 거 같은데요.
"낮에도 했어요. 자세히 들어보시면 곡 끝날 때쯤에 기차 소리도 살짝 들리기도 해요. 라이너노트는 2층 공간에서 녹음 했는데 두 번째 날엔 마침 비가 와서 빗소리도 좀 들어가 있어요."
-조웅 씨의 솔로 앨범은 오래 전부터 나온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왔습니다.
"전 아무 말을 안 했는데…. 하하. 그렇긴 해요. 주변에서 생각한 것보다 좀 오래 걸렸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만족의 기준이 없었던 점이 가장 큰 이유 같아요. 그리고 완성이 됐다고 느낀 시점이 있었는데 그 앨범은 너무 너무 진지했어요. 그래서 드럼이랑 만든 곡들을 추가해서 앨범의 무게감을 좀 줄여 균형을 맞추면 어떨까 생각했죠."
-그런 면에서 리듬감이 넘쳤던 '유주와 조웅'이 너무 좋았습니다. 구남의 드러머 유주현 씨와 한 잼을 담은 트랙이죠.
"녹음실을 토·일요일 빌렸는데 일요일 마지막 녹음이었어요. 시간은 좀 남아 있는데 더 이상 뭘 할 게 없는 상황이었어요. 더 꺼낼 제 이야기도 없고, 음계적으로도 더 펼칠 게 없어 뭘 두드리는 상황이었는데 그게 재밌어서 뭐 좀 한 거예요. 그리고 연주가 끝날 때쯤에 제가 소파에서 잠이 들어요. 근데 녹음 장면을 영상으로 다 촬영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영상으로 남아 있을 거예요. 제가 잠든 걸 보고 유주가 쏙 빠져 나가는 모습이 담겼어요."
-균형을 맞추시기 전에 좀 무거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앨범 자체가 되게 진지했었다고 할까. 전 어떤 의도를 갖고 그렇게 한 게 아닌데 나오는 얘기들을 노래로 만들다 보니 그렇더라고요. 이 앨범을 바깥으로 던지기엔 너무 질릴 것 같은 거예요. 너무 심각한 건 아니었지만 제 자신이 듣기에도 진지했어요. 그래서 좀 유머러스한 다른 작업들을 더해서 '앨범을 재구성 해보자'고 생각했죠. 이번 앨범에 담기지 못한 남겨진 곡들로 2집을 늦지 않게 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첫 트랙 '소프트 쉘'의 내레이션도 좋았습니다. "성필아 / 이렇게 맛있는 타코는 어디서 사온 거야 / 음 / 이렇게 맛있는 타코를 먹어도 되나 나는"이라는 일상의 말이 그대로 노래 가사가 됐어요.
"사실 녹음 당시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어요. 감기 기운도 좀 있어 뭐가 잘 안 풀리는 상황이었어요. 그랬는데 마침 윤성필 매니저가 간식으로 타코를 사왔는데 너무 맛있더라고요. 장소를 빌려서 뭔가를 뽑아내야 되는데 잘 안 되는 상황에서 이 타코가 너무 맛있는데 나 이거 먹어도 되냐 그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처음 솔로 작업이니까 만족도에 대한 기준치가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그 기준치를 채워서 이번 앨범이 나오게 된 건가요?
"이 정도에서 '한 번 끊어서 발표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시작의 맥락으로 끊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한 거죠."
-처음에 무거웠던 앨범의 균형을 맞추신 후엔 조금 여유가 생겼습니까?
"좀 덜어지는 것도 있겠죠. 제 그냥 개인의 이야기, 개인의 삶을 한번 짚어본 거죠."
-예전 구남의 음악들은 내면으로 수렴되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이번엔 자연스럽게 밖으로 흘러나온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형식을 좀 덜 생각한 작업이니까요. 형식적으로 곡들이 되게 심플하죠. 구성도 단순하고. 그러니까 오히려 이야기에 더 집중되는 게 있는 거 같아요."
-이전에는 구조적으로 밀도 높은 사운드의 곡들이 많았잖아요.
"간단하게 말하면 이제 기본적으로 시끄러운 걸 견디는 게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좀 조용한 노래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번 음반은 '물(水)의 음반' 같기도 해요. 물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물에 대한 이미지도 많이 떠오릅니다. 곡의 분위기가 부유하는 거 같기도 하고요. 조웅 씨의 변화된 태도가 녹아들어갔다고 봐도 될까요?
"변화됐다기보다 그런 마음이 늘 저한테 있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20대 초반에 브라질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우연히 알게 된 어떤 분의 블로그를 통해서요. 그 때 기운들이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었던 거 같아요. 전혀 생뚱 맞은 게 아니라는 거죠. 구남 정규 1집('우리는 깨끗하다'·2007)에 실린 '뽀뽀', '언더스탠드 케어레슬리'는 그 영향이 있는 곡인데 일렉트로닉하게 변주가 된 거죠."
-목포에서 중고 기타를 하나 사셨다고요.
"그 악기로 이 앨범을 다 녹음했어요. 나일론 기타인데, 국산 브랜드이고 엄태창이라는 장인이 만드셨어요. 조사를 해봤는데 좋다고 하더라고요. 새 악기는 사실 또 길들이는 데 시간도 걸리거든요. 중고 사이트에서 본 뒤 찾아가서 만져봤더니 좋더라고요. 근데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도 제겐 기준이 없었어요. 이런 악기를 메인으로 써본 적이 없었거든요. 보통 이런 종류의 기타는 클래식 기타 연주에 사용되는데, 전 그걸로 제 나름의 팝을 만들어본 거죠. 제가 뭘 연주할 때 이 기타가 내주는 하나 하나 노트들이 사이즈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물리적인 것들이 제가 다루기에 좋은 덩어리들이었어요."
-좋은 소리, 좋은 사운드의 기준이나 정의가 예전과 달라진 게 있나요?
"기술적으로 좀 더 선명해졌겠죠. 그걸 해석하는 입장이요. 옛날에는 좋은 악기를 사서 좋은 소리라고 하는 것들을 이용했다면 요즘은 구남에서도 되게 싼 페달을 써요. 그러니까 소리는 객관적일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어떤 소리가 무조건 좋은 소리다'는 없는 거 같아요.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소리가 좋은 소리' 같아요."
-근데 자신이 좋아할 수 있는 소리라는 건 어쨌든 자신의 음, 자신의 음악에 대한 확신을 기반 삼는 거 같아요.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적당한 소리가 있는 것 같아요. 더 비싸거나 좋지 않아도 지금 제가 갖고 있는 악기가 제가 하고자 하는 음악을 표현하기에 충분했어요. 예전에 엘리엇 스미스라는 뮤지션이 메인으로 쓰던 기타도 사실은 되게 저가 모델이었거든요. 그 덕분에 유명해졌죠."
-이번에 대만 송캠프에서 작업한 곡도 포함됐고, 예전 구남 1집엔 '오~싱가포르'라는 곡이 있었습니다. 아시아의 열대 기후 섬나라의 정서를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특히 대만에서 공연도 많이 하셨는데 최근 선셋 롤러코스터, 엘리펀트 짐, 데카 조인스 같은 대만 밴드가 뜨고 있습니다.
"느긋할 수 있는 정서가 좋아요. 반바지에 티셔츠 한두 개만 있어도 되는…. 현재 대만 음악 신이 되게 재밌어요. 한국은 현재 인디 신이 되게 많이 위축됐다고 봐요. 근데 지금 대만은 2000년대 초 한국을 보는 거 같아요. 밴드의 규모가 커지고 자생적인 페스티벌들이 늘어나고 있죠. 또 대만은 언어가 중화권에 속하고 동남아도 인접해 있으니까 활동 무대가 꽤 넓더라고요. 대만에 처음 갔을 때 저희를 서포트하던 밴드들이 엄청 컸어요."
-저도 국내 인디 신이 많이 위축됐다고 느껴요. 그런 가운데 조웅 씨의 음반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크죠. 래퍼 빈지노, DJ 겸 프로듀서 이오공(250) 등이 속한 핫한 레이블인 비스츠앤네이티브스(BANA·바나)와 작업도 관심이고요. 혹시 책임감이나 부담 같은 걸 느끼시는지요.
"바나가 개인으로서 마음껏 해보라고 제안을 했고 실제 꽤 지원도 받았어요. 저한텐 개인적으로는 어떤 기회인 거죠. 그래서 뭔가 '좀 멋진 걸 해보자'는 입장이 있었어요. 근데 그 멋짐이라 함이 저한테는 '빛나는 무엇'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무엇'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자연스러움과 회사가 생각하는 방향이 하나의 결이어서 좋은 영향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고수의 영역은 힘을 주는 게 아니라 빼는 것, 즉 자연스러움인 거 같습니다.
"이번 음악 작업에서 집중했던 점은 컴퓨터가 아닌 테이프로 녹음을 한 거예요. 단순한 음악이고 심플한 구성이다 보니 오히려 '어떤 질감이 좋을까'에 대해 더 고민을 하게 됐죠. 그래서 테이프 녹음을 결정했어요. 드럼이 있는 트랙들은 채널이 너무 많으니까 원테이크로 녹음하기 힘들어 컴퓨터를 사용했는데, 그걸 다시 테이프로 녹음했죠. 결국 다 테이프로 녹음을 한 거죠. 그래서 들어보시면 테이프 노이즈가 있어요. 그 노이즈가 중요한 건 아니고 음악이 어떤 멜로디나 분위기를 갖고 있겠지만 무엇보다 '어떤 물질이면 좋겠다'라는 입장이 있었요. 본질적인 얘기인데 이게 어떤 성격의 물질이냐에 따라 요즘의 다른 음악들과 구별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미국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듀서 제리 페이퍼(Jerry Paper)의 음악을 많이 듣고 있었는데 '슬로우모션'의 마스터링을 페이퍼와 작업한 미국 유명 사운드 엔지니어 제이크 비에이터(Jake Viator)가 맡았더라고요.(비에이터는 페이퍼, 미국 사이키델릭 팝 밴드 '마일드 하이 클럽(Mild High Club)' 등의 음반 뿐 아니라 '애플'의 2021년 발표 이벤트 영상과 스포티파이, 더 페이더, 사운드클라우드 등 글로벌 매체들의 다큐멘터리 영상 음악을 아우르는 주인공이다.)
"마스터링도 중요했어요. 사실 마스터링을 몇 군데 맡겼어요. 근데 비에이터의 마스터링이 단연 돋보였어요. 회사에서 비에이터가 이번 음반 마스터링을 하면서 '되게 재밌어 한 거 같다'는 얘기를 들려줬어요. '재밌고 너무 좋았다'는 멘트도 줬고요. 정말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요소들을 되게 잘 살렸더라고요. 이번 음악은 발라드 같아도 사실 리듬이 되게 중요하거든요. 기타 연주에서 엄지손가락이 내는 저음들, 타이밍들이 더 재밌는 거예요. 손가락이 만드는 리듬이 너무 재밌는데 그거를 잘 잡았더라고요."
-이번 음반에서 '김일뚜'라는 트랙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친분이 있는 싱어송라이터 김일두 씨 관련 노래잖아요?
"한겨울 양양에서 만든 노래인데요. '나도 노래를 만들고 있지만 요즘은 참 별로 듣고 싶은 노래가 없다'라는 기분이 들었는데 마침 '김일두는 좋잖아'라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된 가사예요."
-이번 음반의 커버는 현대미술에서 유명한 장종완 작가님이 그린 작품이라고요.
"바나 측에서 조율한 건데 장 작가님도 마침 구남을 알고 계시더라고요. 작가님의 작품이 특별하게 마음에 들었어요."
-직접 알지 못한 분들이 서로 이미 알고 있고 통한다는 게 되게 신기해요. 되게 자연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요.
"때로는 그렇게 닿지 않고 '하이 파이브(high five)'가 되는 경우가 있죠."
-전국 투어도 준비 중이라고요.
"장기간의 투어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간 제약 없이 공연을 해볼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서 재밌는 공간들을 찾아서 돌아다니면 좋을 거 같아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컴필레이션 앨범 '이야기해주세요 – 세 번째 이야기'에 함께 하시는 등 다양한 작업도 많이 해오셨잖아요. 요즘 가장 크게 관심을 두고 있거나 고민하시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제가 '잡쵸소'라는 걸 기획해서 3회째 했어요. 우연히 라디오를 듣다가 '열여덟 어른'이라는 캠페인(만 18세가 되면 아동복지시설을 퇴소해야 하는 자립준비청년을 돕는 프로그램)을 알게 됐어요. 만 18세가 되면 500만 원을 받고 사회에 나와서 살아야 되는 거예요. 그게 너무 너무 쓸쓸해요. 저도 자식을 키우고 있거든요. 이걸 알게 된 이후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몇 팀씩 모여서 공연을 하고 수익금을 모아서 캠페인에 보내고 있어요. 또 그들에게 언더그라운드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문화를 보여주면, 사회의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환기만 해줘도 좋은 역할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조웅 씨는 정말 삶과 음악이 물처럼 순환을 이루고 있네요.
"음악을 만들어 발표하고, 박수 받고 거기에 충족히는 게 삶의 전부가 아니잖아요. 사회에서 역할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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