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심은 가라”…스포츠도 'AI 포청천' 시대
부정확한 심판들의 판정 오류 정정 기대감
“‘인간미’ 결여, 보는 재미 반감될 것” 우려도
[아로마스픽(64)] 10.16~20
편집자주
4차 산업 혁명 시대다. 시·공간의 한계를 초월한 초연결 지능형 사회 구현도 초읽기다. 이곳에서 공생할 인공지능(AI), 로봇(Robot), 메타버스(Metaverse), 자율주행(Auto vehicle/드론·무인차), 반도체(Semiconductor), 보안(Security) 등에 대한 주간 동향을 살펴봤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다.”
사실상 불문율처럼 여겨졌다. 그만큼, 심판의 판정은 성역에 가까웠다. 결정적인 순간, 경기의 흐름을 뒤바꾼 심판의 실수에도 이를 번복하긴 어려웠던 이유다. 스포츠 분야에선 오랫동안 관행처럼 굳어졌던 얘기다. 그랬던 심판의 성역이 추억 속으로 사라질 조짐이다. 녹색그라운드의 '포청천'으로 속속 등장하고 나선 인공지능(AI)의 여파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는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 종목인 프로야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19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전날 제4차 이사회를 열고 내년부터 자동 볼 판정 시스템(ABS)과 (투수들의 투구 간격을 엄밀하게 계측하는) 피치클록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ABS는 일명 AI 기반의 로봇 심판이 볼·스트라이크를 판정하는 시스템으로, 국내에선 2020년부터 퓨처스(2군)리그에서 시범 운영됐다. 2024시즌부터 ABS가 국내에 전면 도입될 경우, 우리나라는 전 세계 프로리그 야구 운영 국가 가운데 최상위 리그에서 경기 내내 100% 적용하는 첫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야구 최강국인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마이너리그 일부 경기는 100% ABS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나머지 경기에선 챌린지(팀당 3회씩) 형태로 시범 운영 중이다. KBO 관계자는 "볼-스트라이크 판정이 정교함과 일관성을 갖게 됐고 판정 결과가 심판에게 전달되는 시간도 단축됐다"면서 "KBO리그에 도입하면 공정한 경기 진행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피치클록의 경우, 앞서 시행해 경기 시간을 단축한 미국 프로야구 사례를 참고했다는 게 KBO 측 설명이다.
특히 ABS 도입은 내년 프로야구의 또 다른 관전포인트로 꼽힌다. 모든 경기에서 볼과 스트라이크 판정에 불만이 제기된 건 아니지만 국내 프로야구 선수들 사이에선 심판들의 공정성에 불신을 가져왔던 것도 사실이다. 심판들의 개인 성향에 따라 다르게 평가되는 들쭉날쭉한 스트라이크존 또한 논란의 대상으로 지목돼왔다. 다혈질인 일부 선수들은 심판의 스트라이크 판정에 강하게 어필하면서 퇴장까지 당했던 전례도 적지 않다. 대부분 프로야구 안팎에서 ABS 도입에 긍정적인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배경이다.
일각에선 ABS 전면 도입과 함께 따라올 부정적인 측면도 제기된다. AI 로봇의 판정으로 공정성 강화와 심판들의 불신 해소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동안 야구에서만 전해졌던 인간적인 측면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란 시각에서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의 한 전직 KBO리그 프로팀 감독이 “사람이 심판을 봐야 인간미도 있고 흐름도 있을 텐데, 로봇이 (심판을) 본다면 야구가 야구 같지 않을 것 같다”고 전한 소감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이다.
아직까지 완전치 못한 AI 로봇 심판의 부정확성 역시 우려되는 대목이다. 지난 4월 11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로봇 심판이 관여한 가운데 열렸던 ‘제2회 신세계 이마트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선 이례적인 모습도 연출됐다. 당시 타자 앞 홈플레이트 앞에서 땅바닥까지 떨어진 포물선 형태의 투수 변화구가 스트라이크로 판명된 것. 이에 관중석 곳곳에선 “땅에 떨어진 공이 어떻게 스트라이크냐”에서부터 “똑바로 좀 봐라”, “어떤 기준으로 스트라이크가 판명된 것이냐” 등을 포함한 비난 섞인 야유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타석에 들어섰던 타자 역시 이 판정에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연출했다. 지금까지 스트라이크존으로 정해졌던 무릎에서부터 가슴 높이의 포수 글러브 캐치 위치를 확실하게 벗어난 볼에 대한 판정이어서다. 스트라이크존과 관련된 데이터가 추가로 쌓이면 개선될 부분으로 관측되지만 선수들과 관중들에겐 낯선 경험임엔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 심판은 스포츠 분야에서 이미 영역 확장에 나선 모양새다. 지난해 11월 개최됐던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AI가 가미된 ‘비디오 판독 시스템(VAR)’은 단연 전 세계 스포트라이트를 몰고 갔다. 실제 개막전에서 개최국인 카타르와 맞붙은 에콰도르의 에네르 발렌시아(33) 선수가 전반 3분 만에 득점, 동료들과 세리머니까지 마쳤지만 이내 VAR 판독에 의해 무효골로 바뀌었다. 카타르 월드컵 내내 벌어진 경기에서도 VAR은 결정적인 오프사이드 반칙을 족집게처럼 잡아냈다. 이후, VAR은 전 세계 축구 경기의 12번째 심판으로 뛰고 있다.
AI 업계 관계자는 “AI 심판 시스템이 이제 막 도입되면서 대중화되는 단계이다 보니, 시간이 좀 필요해 보인다”면서도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나 관중들도 AI 심판을 받아들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재경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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