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의 감성, 골프美학] 골프가 삶과 같다고요? 아니요, 골프는 쉼입니다

김인오 기자 2023. 10. 2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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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으로 기온차가 심해지는 가을 골프를 하고 바쁠 게 없어 자동차 문을 열고 이광조dml '나들이' 노래를 듣는다. 창문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니 좀 더 센치멘탈(sentimental)해진다.

그렇게 쭈욱 아무도 없는 시골길을 따라 달리다 차를 멈췄다. 내 의지 보다는 마음이 먼저 움직인 것 같다. 저물 무렵 낙엽을 태우고 있는 할머니의 뒷모습과 하얀 연기를 피우며 타고 있는 나뭇잎이 냄새가 그리로 이끌었다. 할머니는 빙긋이 웃으셨고, 나도 그 웃음에 답하며 인사하며 불타고 있는 '낙엽 멍'을 했다.참 이상했다. 사춘기 시절 이유없이 쿵쾅이고 소용돌이치던 심장과 혈관이 재소환되는 듯 했다.

그랬다. 우린 자동차로 더 빨리 달리는 것만 부러워했다. 그것으로 차를 평가하고 샀다. 좀 더 천천히 달리면서 보여줄 수 있는 이 아름다운 풍경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18홀 내내 이 가을에 골프를 하니 너무 좋다는 말을 쏟아 냈고 참 골프는 인생과 같다고 누차 말했지만 너무도 정해진 답이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시속 얼마나 빨리 달리는 것이 자동차의 매력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움과 아름다운 풍경에 빠졌을 때 나를 그곳으로 인도해줄 수 있는 아름다운 동행자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얼마 전 처삼촌 딸이 한국에 있는 친척과 지인 앞에서 결혼 신고식을 하겠다고 한국을 찾았다. 강남에 좋은 식당을 원했지만 억지로 설득시켜 서원힐스 골프장 루프탑으로 행사장을 결정했다. 말들이 많았다. 그래도 강남에서 해야 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으나 토요일 오후 그렇게 바쁘게 식당에 와서 밥 급히 먹고 떠나야하는 형식적이고 요식적인 것이 싫었다. 

가을이 살포시 내려앉을 골프장 코스를 배경으로 일가친척에게 인사를 하고 루프탑에서 커피 한 잔을 할 수 있는 야경이 눈부신 아름다운 골프장 풍경을 즐겼다. 오신 모든 분들이 좋다고 했다. 무엇이 좋았을까. 아름다운 골프장 자연도 좋았지만 어쩌면 4시간 가까이 여유롭게 만나서 식사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진정한 쉼의 공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린 집이라는 개념이 삶을 담는 그릇이 아닌 그저 부동산의 가치로만 증식시켜왔다. 그 콘크리트 숲에 풀 한포기 나지 않아도 그 가치만 생각하며 웃음 지었던 것이다. 이번 서원힐스 루프탑 결혼신고식 행사는 그래서 성공이었다. 

"한국에 3주 정도 있다 보니 정말 가기 싫다. 그동안 너무도 나를 위해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 온 것 같아 눈물이 난다. 나 이제 지금부터라도 내 삶에 물기를 주며 살고 싶다"

미국서 온 외숙모가 촉촉한 눈빛으로 부는 키웠는지 몰라도 내 삶의 질은 성장을 멈춘 것 같다고 했다. 지금부터라도 미국으로 돌아가면 나를 돌아보고 나를 위해 좀 더 삶의 질을 높일 것이라고 해 가슴이 먹먹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시간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흘러가는 시간을 뜻하는 크로노스(chronos), 특별한 시간을 의미하는 카이로스(Kairos)다. 지금 그 외숙모에겐 흘러가는 시간이 아닌 특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동안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살아왔다면 이제는 내 삶에 단비를 내릴 수 있는 진정한 '쉼'이 필요하다.

우리가 골프장을 좋아하는 것은 골프 라운드 그 자체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숲 때문이다. 숲은 피톤치드, 음이온, 산소, 소리, 햇빛, 비밀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 인간에겐 원시의 본능이 있고 그 본능이 바로 숲이다. 그 골프장의 숲을 통해서 마음이 치유되고 힘들었던 삶을 보상 받는다.

내 상처를 가장 먼저 공감하고 위로해 줘야 할 사람은 바로 나다. 누가 내 삶을 대신할 수 없기에 애써 희생하고 '괜찮아!'로 위로하면 안 된다. 좀 더 이기적인 나로 돌아가서 빠르게 보다는 느리게, 좀 더 느리게 살아야 한다. 지금은 미국으로 돌아가 또 바쁘게 살아갈게 뻔한 외숙모에게 이광조의 '나들이' 가사를 전해주고 싶다.

발길 따라서 걷다가 바닷가 마을 지날 때 / 착한 마음씨의 사람들과 밤 새워 얘기 하리라 / 산에는 꽃이 피어나고 물가에 붕어 있으면 / 돌멩이 위에 걸터앉아 그 곳에 쉬어가리라 / 이 땅의 흙냄새라면 아무데라도 좋아라 / 아 오늘 밤도 꿈속에 떠오르는 아름다운 모습들 / 가다 가다가 지치면 다시 돌아오리라

이오게네스는 "시간은 인간이 쓸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시간을 산업혁명 이후처럼 노동력을 배가 시키는데 만 쓰면 안 된다. 나의 특별한 시간으로 나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써야 한다.

글, 이종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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