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폴 빼돌려 직접 남용·수백 건 처방···'마약 핫플'된 병원 [폴리스라인]
'병원 뺑뺑이'로 마약성 수면제 및 진통제 구해
의료진이 직접 약물 오남용도···"제재 강화 필요"
프로포폴·펜타닐·졸피뎀 등 의료용 마약류 유통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연일 제기되고 있다. 바로 병원을 통해서다. 수면제 및 진통제 처방이라는 명목 하에 오남용 사례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환자들의 ‘병원 뺑뺑이’를 1차적으로 잡아낼 수 있는 것은 의료진이지만 이들조차 허술한 감시망을 악용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병원 내 ‘약물 쇼핑’을 감시할 법적 제도가 미비해 정부 차원의 대응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프로포폴·펜타닐·졸피뎀···처방 건수 매년 늘었다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실이 식품안전의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의료용 마약류 처방 현황’ 자료에 따르면 프로포폴 처방을 위해 의료기관 2곳 이상을 방문한 사람 수는 2019년 48만 8000명에서 지난해 67만 4000명으로 4년 사이 19만 명 가까이 폭등했다. 특히 같은 기간 5곳 이상의 의료기관을 돌아다니며 프로포폴을 처방받은 사람의 수는 2019년 1503명에서 2022년 3059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프로포폴은 전신마취 및 수술, 진단 시 진정 등에 사용 되는 마취제로 중독성과 환각 효과가 있어 마약류의 하나인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된다. 배우 유아인, 방송인 에이미 등 유명 연예인과 재벌계에서 상습 투약 문제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 약물이기도 하다.
프로포폴 뿐만 아니라 강력한 수면 진정제인 ‘졸피뎀’도 대표적인 마약성 약물이다. 특히 졸피뎀은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수면 행동(약물 복용 후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기억 없이 하는 행동)을 유발해 처방 시 주의를 요한다. 졸피뎀 투약 후 충분한 시간을 갖지 않고 자동차 운전을 해 사망 사고로 이어진 사례도 꾸준히 발생한다. 문제는 하루 5정까지만 처방할 수 있는 졸피뎀을 의료진이 수십정씩 팔거나, 한 번에 28일분 이상 처방이 금지돼있음에도 환자 측에서 과거 처방 이력을 숨기고 다른 병원을 돌며 다량의 약을 수령하는 등 과잉 처방 문제가 만연하다는 점이다.
이밖에 환자가 여러 의료기관을 돌아다니며 펜타닐, 옥시코돈 등 마약성 진통제를 ‘병원쇼핑’ 하는 경우도 많다. 국내연구팀이 지난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인구 1만명당 연간 마약성 진통제 처방 건수는 2008년 501건에서 2015년 4만 727건으로 7년 새 81배나 증가했다. 이중 펜타닐 처방 건수는 식약처 집계를 기준으로 2018년 89만 1434건에서 2020년 148만 8325건으로 3년간 67% 증가했다.
동물병원에서 처방 받고·사망자 이름으로 유령 처방···갈수록 수법 다양화
동물병원을 통한 마약류 의약품 처방도 증가하는 등 마약류 모니터링의 공백을 악용하는 수법은 다양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식약처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5602건이었던 동물병원을 통한 펜타닐 패치 처방 건수는 2021년 1만 862건으로 2년 사이에 1.9배로 늘었다. 상당수는 동물병원이 식약처의 마약류 모니터링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재활지도실장은 “일부 중독자 중에는 아픈 동물을 산 후에 동물병원을 방문해 펜타닐 패치를 처방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진료 통한 과잉 처방 폭등해···관리 체제는 허술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자가격리된 환자의 진료를 위해 비대면 진료가 한시적으로 모든 질환에 초진부터 허용된 것을 계기로 오남용 사례가 상승 곡선을 탔다는 지적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시 마약류 의약품 처방이 금지된 2021년 11월 2일부터 올해 7월 31일까지 약 21개월간 마약류 의약품(건강보험 비급여 제외) 총 181만 12개가 6만 5256명에게 처방됐다. 이 중 마약은 5919명이 10만 7795개를 처방받았고, 향정신성의약품의 경우 5만 9495명이 170만 2218개에 달하는 약을 처방받았다.
한편 식약처는 2018년 도입된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을 통해 병원, 약국 등 마약류 의약품 취급 현황을 모니터링하고 특이점이 발견되면 수사를 의뢰한다. 아울러 처방 전에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이 의심되는 환자가 1년간 의료용 마약류를 얼마나 투약했는지 이력을 조회할 수 있도록 ‘의료쇼핑방지 정보망’에 접속해 환자의 1년치 투약이력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정보망 조회 ‘의무’가 없다 보니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체 의료용 마약류 처방 의사수 10만 3971명 대비 정보망 가입 의사수는 1만 1013명으로 10.6% 수준이다. 실제 마약을 처방한 의사 중 의료쇼핑방지 정보망을 이용한 의사는 1%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NIMS를 통한 모니터링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 수사 이후 병원에 대한 처벌 수위가 초범의 경우 벌금형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는 점, 식약처 측에서 수사 의뢰 후 결과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 등을 들어 ‘부실 관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약물 빼돌리고·'셀프 처방'에 중독되고···의료진조차 허술한 유통망 악용
#서울 서초경찰서는 이달 11일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30대 중국인 간호조무사 A씨를 긴급체포했다. A씨는 서초구 잠원동 소재 모 병원에서 근무하며 환자를 치료하는 데 사용하고 병에 남은 약물(프로포폴)을 폐기하지 않고 몰래 지퍼백에 보관한 채 스스로에게 투약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마약류 의약품을 관리하는 의료진이 가장 중독에 취약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로 감사원은 최근 마약류 약물에 중독된 의료진이 되레 ‘셀프 처방’을 통해 자유롭게 약물을 이용하고 이 상태에서 의사 면허를 유지한 채 환자를 치료해온 사실을 확인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2018년부터 최근 5년 사이 의사 면허가 취소·정지돼 자격이 상실된 의사 1082명 가운데 264명이 몰래 마약류 의약품을 처방하는 등 3500건 이상의 무자격 의료 행위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밖에 마약류에 중독됐거나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고 있음에도 별다른 자격 심사 없이 면허를 계속 유지해 온 사례도 3건(의사 2명·간호사 1명)이나 있었다. 의료법상 마약류 중독자는 면허 취소대상이지만 보건복지부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마약류 의약품을 본인에게 스스로 처방한 의사는 연평균 약 7000여 명, 처방 건수는 최근 5년간 11만 건에 달했다.1년에 50차례 넘게 투약하거나 처방한 의사가 44명이었으며 100차례 이상도 12명이나 됐다.
이에 감사원은 “의료인 결격 사유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정부의 관리 사각에서 면허를 유지한 채 의료행위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복지부가 병·의원의 마약류 관리방안을 마련하고 의료인 결격사유를 더 명확히 판단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아울러 의료진에 환자에게 마약류 의약품을 처방할 때도 단순히 투약 내역을 확인 하는 것 넘어 투약 제한을 강제하는 등의 강력한 제제방안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영주 의원은 “프로포폴, 졸피뎀 등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오용·남용시 환자의 신체적 정신적 피해가 심각한 마약이다”며 “의료용 마약의 과다 처방·투약 방지하는 ‘마약류 의약품 쇼핑 방지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의원은 “다수 의료기관을 방문해 의료용 마약을 쇼핑하는 환자들에 대한 전수조사와 필요 시 이들에 대한 마약류 처방 금지와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형임 기자 jang@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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