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아시안컵 결승에서 맞붙는다면?
손흥민-이강인-김민재 등 ‘최정예 전력’ 나서면 한국도 밀리지 않을 듯
(시사저널=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하 A대표팀)이 10월 FIFA A매치 주간을 연이은 대승으로 마무리했다. 튀니지, 베트남을 국내로 불러들인 A대표팀은 각각 4대0, 6대0으로 격파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10월 소집을 마무리하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클린스만호는 11월 A매치 주간에는 싱가포르·중국과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을 치른다. 그 이후에는 내년 1월 카타르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에 집중한다.
A매치 데뷔골 이강인, 클린스만호의 황금열쇠로 부상
이번 10월 A대표팀은 클린스만 감독 부임 이후 가장 완전체에 가까운 모습으로 뭉쳤다. 지난 9월엔 이강인, 정우영이 소집되지 못했고, 6월에는 김민재가 기초군사훈련 참가로 빠졌다. 이들이 모두 합류하자 공격 전개의 위력이 높아졌다.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빠르게 적응하며 확고한 주전으로 올라선 김민재는 튀니지전에서 상대 역습을 모두 차단하는 것은 물론 전방으로 날카로운 침투 패스를 뿌렸다. 활용할 수 있는 공격 자원이 넘치자 클린스만 감독은 소속팀 토트넘에서 사타구니 부상을 안고 온 손흥민을 튀니지전에 아예 쉬게 하며 관리했다.
손흥민이 빠진 상황에서 공격 선봉에 나선 것은 이강인이었다. A매치 14경기에서 득점이 없었던 이강인은 튀니지전 후반 10분에 왼발 프리킥으로 상대 골문을 가르며 대표팀에서 첫 골을 뽑았다. 지난 카타르월드컵에서 강력한 5백으로 프랑스를 꺾는 돌풍을 일으켰던 튀니지의 조직력에 막혀 답답했던 전반전 공격은 후반전 들어 이강인의 활약으로 180도 달라졌다. 이강인은 A매치 데뷔골을 기록한 지 2분 만에 상대 수비와의 적극적인 경합 후 부드러운 2차 동작으로 멀티골을 완성했다. 후반 21분에는 코너킥 상황에서 김민재의 머리에 정확히 공을 배달해 상대 자책골을 이끌었다. 후반 추가 시간에 황의조의 득점을 제외한 나머지 3골은 모두 이강인이 직접 관여한 것이다.
그동안 A대표팀에서 이강인은 확실한 자기 포지션과 전술적 역할을 갖지 못했는데 클린스만 감독은 적어도 이 부분은 확실히 해소했다. 이강인을 오른쪽 측면에 배치, 중앙으로 침투하며 드리블과 슈팅으로 하는 '반대발 윙어'로 활용한다. 특히 이강인의 정교한 왼발 킥에 높은 신뢰를 보내며 세트피스 전담 키커로 세웠는데 이게 상대 밀집수비를 깨는 중요한 포인트가 됐다. 튀니지전에서 직접 프리킥으로 선제골을 뽑으며 상대 수비를 허망하게 만든 이강인은 베트남전에서도 전반 5분 코너킥으로 김민재의 선제골을 도왔다. 향후 아시안컵에서도 상대가 비슷한 전략을 취할 때 이강인의 왼발이 밀집수비를 부수는 황금열쇠가 될 것임을 알렸다.
튀니지전에 휴식을 취한 손흥민은 베트남전을 풀타임 소화했다. 이날 유럽파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김민재의 선제골을 시작으로, 최근 프리미어리그 득점 4위로 뛰어오른 황희찬이 그림 같은 추가골을 넣었다. 조규성은 상대 자책골을 유도했고, 손흥민이 네 번째 골을 책임졌다. 이후에는 이강인과 정우영이 골맛을 봤다. 유럽파가 모두 득점자로 이름을 올리는 모습은 시너지 효과를 낳고 있다. 최근 항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하며 병역 혜택을 받는 젊은 선수들이 유럽으로 진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출하는 분위기다.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이 A대표팀이나 K리그 활약을 발판으로 계속 유럽으로 나갈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생긴 것이다.
클린스만호가 선수들의 압도적인 개인 기량으로 정상궤도에 진입하는 모습을 보이자 자연스럽게 '황금세대'를 보유한 한일 양국의 경쟁 구도가 도드라진다. 최근 일본 축구 대표팀은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지난 6월 A매치를 시작으로 5경기 연속 4득점 이상을 기록하는 A매치 대승을 거둔 것. 특히 9월에는 유럽 원정을 떠나 독일·튀르키예 등 강호를 상대로 각각 4대1, 4대2 승리를 거두며 FIFA 랭킹을 19위까지 끌어올렸다. 지난 카타르월드컵에서 이미 독일·스페인을 잡고 센세이션을 일으킨 일본이 의심 없는 세계적 강호가 됐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9월만 해도 이런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한국의 입장은 답답했다. 클린스만 감독이 축구 내외적으로 논란만 일으켰고, 침체된 경기력을 보였다. 그런데 10월 들어 상황은 흥미롭게 전개됐다. 일본은 10월 첫 경기에서 캐나다를 4대1로 꺾고 9월의 흐름을 이어갔지만, 한국이 4대0으로 제압한 튀니지를 상대로는 2대0으로 승리하며 기존의 다득점 기조가 멈췄다. 반면 한국은 10월 두 경기에서 10득점을 올리며 그동안 답답했던 공격력의 혈이 뚫렸다. 손흥민, 황희찬처럼 최고 레벨의 무대에서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는 선수와 이강인, 정우영처럼 최근 연령별 대표팀에서 경기 감각을 최상으로 끌어올린 선수들의 신구 조화가 돋보였다.
A급 스타 폭은 일본이 크지만 슈퍼급은 한국이 강해
지난 월드컵에서 황금세대를 앞세워 나란히 16강에 오르며 탈아시아 클래스로 꼽힌 한일 양국이 지금 맞대결을 갖는다면 어떤 양상으로 흘러갈까? 최근 전적만 놓고 보면 일본의 절대 우세다. A대표팀 대결에서 2021년과 2022년 일본이 잇달아 3대0으로 승리했다. 각 연령별 대표팀에서도 일본이 3골 차 대승을 거두는 일이 연달아 벌어지며 한국 축구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최근 20세 이하 대표팀과 아시안게임 대표팀이 한일전에서 연승을 거두며 트라우마를 어느 정도 털어냈다.
하지만 A대표팀 간 최근 맞대결 결과를 다른 시각에서 볼 필요도 있다. 한국은 2021년엔 코로나19 여파로 손흥민을 비롯한 유럽파가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 2022년 맞대결도 유럽파가 빠진 동아시안컵에서의 대결이었다. 한국은 손흥민-황희찬-이강인-이재성-김민재로 이어지는 막강한 척추라인의 위력이 최근 한일전에서 가동된 적이 없었다. 10월 A매치 2경기에서 증명됐듯이 이들 유럽파가 제대로 뛰면 경기력의 레벨이 달라진다.
일본은 두터운 유럽파로 더블스쿼드까지 만들 수 있다는 게 최대 강점이다. 독일·튀르키예전에 전혀 다른 라인업을 내세웠지만 모두 대승을 거뒀다. 특유의 조직력과 섬세한 패스로 풀어가는 공격 전술은 수준이 높다. 하지만 미토마(브라이튼), 엔도(리버풀), 구보(레알 소시에다드), 가마다(AC밀란), 도미야스(아스널) 등 주요 선수들의 존재감이 손흥민·김민재·이강인에는 미치지 못한다. 월드 클래스로 꼽히는 슈퍼급 스타는 확실히 한국이 강하고, A급 스타의 폭은 일본이 더 크다는 차이가 있다.
결국 역대 최고 전력이라는 양국이 제대로 맞붙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무대는 아시안컵이다. 인도네시아·이라크·베트남과 함께 D조에 속한 일본과 바레인·요르단·말레이시아와 E조에 배정된 한국은 조 1위를 차지할 경우 결승전에서나 맞대결이 가능하다. 호주·이란·사우디아라비아 등 아시아의 라이벌들과 확실한 격차를 보이고 있는 한일 양국이 아시안컵 결승이라는 정점에서 맞붙는다면 제대로 된 평가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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