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프리즘] 차선책의 조건

권대익 2023. 10. 2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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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수의 마음 읽기]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클리닉에 다니는 30대 A씨는 자격증 시험을 준비한지 꽤 오래되었는데, 최근 시험을 본 후로는 잠을 못 자고 살도 빠지면서 풀이 죽어 있는지 한달이 되었다. 한참 머뭇거리던 그는 수년간 준비하던 시험을 그만 두기로 했다고 고백했다. 대신 조금 경쟁이 덜한 시험을 준비하기로 했는데, 자신의 선택이 옳은 일인지 잘 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사실 정신과 의사가 무엇을 해야 한다거나 잘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오히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스스로 알아 보도록 도와 주면서 생각을 같이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사람마다 판단의 기준은 다를 것이고, 결국은 스스로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내 삶의 목표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내 삶에서 어떤 것을 추구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어떤 사람은 돈과 명예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혼자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또, 사회와 타인들에게 헌신하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다양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이 중 더 좋고 우월한 가치는 없다. 하지만, 내 마음이 끌리는 일인가 혹은 남들이 좋다고 해서 따라가는 일인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내 삶의 가치,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면 적성 검사를 해 볼 수도 있겠지만 간단한 방법을 동원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백지 한 장을 꺼내서 어린시절부터 기분 좋았던 일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적어 보는 것이다. 그것은 큰 부자가 되는 것일 수도 있고, 운동을 잘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명예를 제일 좋아하거나 또는 헌신적인 삶을 추구할 수도 있다. 그렇게 적어 놓은 것들에 순서를 매겨보자. 상위 1-5번 정도에 들어가는 것들이 당신의 삶의 가치 또는 인생 목표일 가능성이 높다.

그 다음에는 지금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그 가치에 맞는 일인가를 생각해보자. 하고자 하는 일로 선택한 나의 진로가 그저 소득을 얻기 위한 일인지, 나를 개발하고 더 잘 되고 싶은 욕망 때문인지, 혹은 이 세상에 공헌하는 일인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는 이것들을 호구지책을 위한 노동으로서의 직업(Job), 자아 실현을 위한 진로(Career), 사회에 도움이 되는 소명(Calling)으로 나누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업, 진로, 소명의식이 적절하게 섞인 마음으로 일을 선택하거나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먹고 살기 위한 직업으로만 나의 일을 생각하는 비중이 크다면 어떤 일을 해도 힘들 것이고 재미를 느끼지 못해 지치기 쉽다. 진로를 위한 준비 과정에서도 이 일을 왜 해야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자주 들게 될 것이고, 이겨낼 수 있는 작은 역경에도 쉽게 좌절하면서 다른 길을 돌아보게 만들 것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지금 하는 자리에서 경제적 안정을 얻으면서 자기계발을 하면서도 자연스레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인생의 목표와 자신의 진로 계발이 일치하는 사람이라면 가는 길이 어렵더라도 쉽게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인생의 가치와 목표에 대해 깊은 생각을 거친 다음에는 지치는 마음을 달랠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만난 그 친구에게는 어쨌든 선택은 본인의 몫이지만, 아주 잘 할 것 같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만약 지금의 일이 너무 힘들어서 다른 것을 찾았는데, ‘이거라도’ 하자 하는 마음에 선택하는 것이라면 원래 내가 처음에 선택 했던 일은 무슨 이유로 원했던 것인지를 파악해 보는 것이 좋겠다. 새롭게 선택하는 일이 인생 목표에 어긋나지 않는 길로 갈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라면 좋은 차선책을 찾은 것이다.

그렇게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뒤돌아 볼 시간이 없다. 다시 열심히 시작하기로’결심’하는 일만 남았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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