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심듯 빛을 새기듯… 찰나의 아름다움 담다 [박미란의 오프 더 캔버스]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미약한 것들도
일상 풍경과 어우러지면서 존재감 뽐내
바람 분재화한 물결모양 아크릴 오브제
말라버린 들꽃마저도 보는 즐거움 선사
빛과 만나 그린 그림자는 ‘또 다른 작품'
심미적 감동 주는 ‘여백의 중요성’ 역설
‘쉘위댄스’는 이경규와 홍재진이 2014년에 결성한 2인조 디자인 스튜디오의 이름이다. 부부이자 동료인 이들은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의 접점과 그것의 정취”에 관심을 두고 심미적 사물들을 만들어낸다. 삶 속에서 발견한 특정 순간들, 바깥세상의 커다란 자연을 실내 공간으로 끌어와 자신들의 손길로 재구성하는 일이다.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 대학원생이던 홍재진은 자신의 다섯 평 원룸에서 조그만 사물들을 만들어내곤 했다. 조각 난 햇빛을 찬란하게 흩뿌리는 모빌과 창가 커튼을 두드리던 바람의 모양을 본뜬 오브제 같은 것들이다. 그가 2020년 나이스프레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음처럼 이야기했다.
“비정형적인 곡선을 지나 실내공간에 머무는 빛은 그 위에 선명하게 맺히기도 하고, 흐릿하게 보이기도 하며, 그림자로서만 드러나기도 합니다. 빛과 오브제의 상호작용은 표면의 투명도와 굴곡, 그리고 보는 이의 시선 방향에 따라 달라집니다.”
쉘위댄스의 사물들은 처음부터 그 쓰임새나 정체가 모호하게끔 만들어졌다. 이경규는 그것들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램프, 꽂이, 받침 등의 미약한 쓰임새로 내 주변에 들어와 어우러진다”고 했다. 자리 잡는 장소에 따라, 또 관계 맺는 사람에 따라 매번 다른 모양새와 쓰임새로 거듭나는 물건들. ‘블랭크 윈드’ 연작은 탁자 위에 놓여 꽃을 꽂는 거치대가 되었다가 벽면에 가로누워 선반으로 탈바꿈하는가 하면 층층이 물건을 실어 나르는 트레이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것들은 견고한 일상의 풍경에 저마다 조그만 균열을 낸다. 활동 초기에 다양한 형태로 제작한 ‘잡초 꽂이’ 연작은 조각 난 돌멩이를 재료 삼아 만들었다. ‘쓰임새’의 범주 안에 들지 못해 길 위를 떠돌던 돌의 파편들이 새로운 정체성을 지닌 물건으로서 거듭난 것이다. 그에 부여된 용도라 함이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하도록 만든다. 잡초를 실내에 꽂아 두고 감상하고 싶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다만 이들의 손길을 거쳐 태어난 ‘잡초 꽂이’의 생김새를 마주하자 납득하게 됐다. 꽃송이의 싱그러움은 이내 까맣게 변색되지만, 애초에 무던한 들풀의 생김새는 시든 후에도 처음의 모습 그대로다. 그간 마른 들풀 특유의 아름다움을 너무나도 무심하게 지나쳐 왔다.
저마다의 오브제들은 서로가 서로를 참조하며 작품세계를 키워냈다. ‘블랭크 윈드’로부터 파생된 ‘블랭크 더스트(Blank Dust)’는 아크릴릭으로 구불구불한 선형의 형태를 만든 후 모빌처럼 매다는 형태로 선보였다. 끝자락의 황동봉 꽂이에 가느다란 잎사귀를 꽂아 둘 수 있다. 또는 그저, 빛과 오브제가 만나 만들어내는 벽면 위 그림자를 감상할 수도 있다.
◆장소의 공백을 채우는 방식… 바람과 먼지의 다녀감에 주목하기
쉘위댄스에게 작업을 지속하는 원동력이 무엇이냐고 묻자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삶의 공간을 되짚어 본다. 그곳에 바람이 들를 자리가 있는지, 햇빛이 머물 틈이 있는지. 필요한 요소를 갖춘 한편에는 반드시 무엇도 아닌 여백을 남겨 두어야 한다. 책상 위 자리도 또 마음속 장소도 그렇다. 그 빈칸의 공백은 그다지 쓸모없는 것들로 채워도 괜찮다. 쉘위댄스의 방식대로 바람이 지나간 흔적이라도, 먼지가 내려앉은 모양이라도 좋겠다. 어느 날 주워 온 조약돌, 무심코 모아 둔 엽서들, 왜인지 마음이 기우는 그림과 조각들. 매일의 날들에 유연한 상상력과 여유로운 기쁨을 데려다주는 것은 그토록 쓸모없는 물건들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정성껏 빚어내는 작업은 도리어 무엇보다 쓸모 있는 일이지 않을까. 모두의 장소에, 가득 찬 일상에 한 뼘 빈자리를 내어 두라고 권하는 오브제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박미란 큐레이터, 미술 이론 및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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