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기차 회사가 줄줄이 망해가고 있는 이유[딥다이브]

한애란 기자 2023. 10. 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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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산업 초창기인 1908년, 미국의 활성 자동차 제조업체 수는 253곳에 달했습니다. 자동차 제조 스타트업 전성시대였죠. 이후 수십 년 동안 시장 경쟁과 1929년 대공황 충격을 거치며 지금의 빅3(GM·포드·스텔란티스) 체제로 시장은 재편됐습니다.

100년 전 자동차 산업을 떠올리게 만드는 일이 지금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난립했던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잇달아 파산 위기에 몰렸습니다. 10년의 투자 붐이 끝난 중국 전기차 시장은 이제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적자생존 모드로 진입했는데요. 오늘은 줄줄이 망해가고 있는 중국 전기차 기업을 들여다봅니다.
중국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가열되는 가격 인하 경쟁으로 소형 전기차 제조사는 버티기 어려워졌다. 이미지는 MS 빙의 AI 이미지 크리에이터로 생성. 
*이 기사는 2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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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갔던 WM도 파산 위기

2015년 설립된 WM모터스는 한때 ‘전기차 스타트업의 네 마리의 용’ 중 하나로 불렸습니다. 중국 3대 전기차 스타트업(니오·샤오펑·리오토)과 어깨를 나란히 했었죠. 특히 2018년 출시한 EX5가 인기를 끌면서 당시엔 테슬라의 잠재적 경쟁자라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중국의 전기차 투자 붐을 타고 WM모터스는 2016~2022년 약 400억 위안의 투자를 유치했는데요. 바이두·텐센트·PCCW 같은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투자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동안 누적 판매 대수는 10만대에 달합니다.

그리고 이제 WM모터스는 파산 일보 직전입니다. 이달 초 ‘WM모터스가 파산 신청을 하고 회장이 미국 뉴욕으로 도피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요. 이에 WM모터스는 ‘파산이 아닌 (그 이전 단계인) 사전구조조정을 법원에 신청했다. 회장이 해외로 나가긴 했는데 투자자 유치를 위해서다’라는 해명자료를 냈습니다. 보도 내용이 어느 정도는 사실임을 인정한 거나 마찬가지이죠.
한때 인기를 끌었던 WM모터스는 경영난 끝에 10월 초 법원에 구조조정을 신청했다. 선후이 회장은 독일 뮌헨 모터쇼 참석을 이유로 출국한 뒤 미국에 가서 돌아오지 않아 ‘도피설’이 제기된다. WM모터스 홈페이지
WM모터스가 고꾸라진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잇단 차량 화재로 인한 품질 논란, 경쟁사에 비해 부족한 지능형 기능, 너무 이른 제2공장 투자, 경영진 간 내부 갈등, 상장 실패, 무엇보다 판매부진. 그 와중에 올해 초엔 차 값을 최대 2만5000위안 인상하기까지 했죠. 테슬라가 주도한 가격인하 치킨게임이 시작된 상황에서 거꾸로 가는 무리수를 둔 겁니다.

2년 전 WM모터스의 SUV를 구입했던 한 고객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WM모터스가 문을 닫으면 애프터서비스도 중단될 거라 새 차를 사야 할 겁니다. 더 중요한 건 망한 브랜드의 자동차를 운전하는 게 창피하다는 거죠.

속도가 전부인 시장

사라지게 생긴 전기차 스타트업은 WM모터스만이 아닙니다. 중국엔 라이센스를 받은 자동차 제조업체가 200여 곳, 이 중 전기차(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포함)를 실제 생산하는 브랜드는 약 50개인데요. SCMP 보도에 따르면 적어도 15개의 전기차 스타트업이 파산 위기에 놓였습니다.

아이웨이즈(Aiways, 爱驰汽车)도 그 중 하나입니다. 2017년 디디추싱과 CATL의 투자를 받아 설립된 아이웨이즈는 ‘유럽에 진출한 최초의 중국 전기차 기업’으로 주목받았죠. 실제 그간 15개국에 6259대의 자동차를 수출했는데요. 하지만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습니다. 지난해 판매량이 고작 4626대에 그쳤고요. 상장까지 실패하면서 결국 자금난에 빠진 아이웨이즈는 올해 3월 직원 급여를 주지 못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공장 가동은 중단됐고, 본사 사무실은 현재 텅 비었습니다. 직원들은 정부에 “(아이웨이즈의) 파산 절차를 시작하고 미지급 임금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아이웨이즈는 창립 5개월 만에 독일 법인을 설립하며 해외 진출에 열을 올려왔다. 하지만 가장 큰 시장인 중국 시장 공략에 실패하면서 지금은 직원 임금과 본사 임대료를 체불한 채 사실상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아이웨이즈 홈페이지 
망해가는 전기차 기업엔 저마다의 사정이 있습니다. 헝치(恒驰)자동차는 그 태생부터 문제입니다. 중국 부동산 위기의 주범 격인 에버그란데(헝다) 그룹이 모회사이니까요. 한때 아시아 부자 2위에 올랐던 쉬자인 에버그란데그룹 회장은 자동차를 만드는 게 꿈이었는데요. 2019년 전기차 사업에 뛰어들어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자 8000명을 채용하며 통 큰 행보를 보입니다. 2년 뒤 상하이모터쇼에 무려 9개의 신모델을 선보여 업계를 놀라게 했고요.

그런데 실제 양산은 계속 늦어졌습니다. 그리고 2022년 10월 첫 양산모델 헝치5가 드디어 나왔는데요. 이게 SNS에서 엄청나게 화제가 됩니다. 시동이 걸리지 않는 차량부터, 디스플레이의 그래픽이 깨지고, 주행보조기능·통풍시트가 먹통 되기까지. 온갖 전자적 결함의 집합체였던 거죠. 결국 헝치5 생산공장은 가동을 멈췄고요. 자금난에 빠진 헝치자동차는 두바이에서 전략적 투자를 유치했지만, 모회사 에버그란데가 청산 일보 직전인 상황이라 투자가 무산될 판입니다.

이 밖에도 무려 5개 공장(22만대 생산 가능)을 지어놨지만 지난해 고작 5321대를 판매한 천지자동차, 지난해 10월 첫 차량을 출시한다며 2만5000명 예약을 받았다가 생산을 못 해 전액 환불해준 뉴트론도 있습니다. 다들 어떻게든 부활해보려고 애쓰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들 기업이 어려움에 빠진 세부 이유는 조금씩 달라서 한마디로 요약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하나이죠. 전기차 산업에선 속도가 생명이라는 겁니다. 자칫 삐끗해서 가속페달에서 잠시 발을 떼기라도 하면, 다시는 따라잡지 못할 수 있습니다. 고객의 요구를 반영한 진보한 기술의 신모델 차량을 적기에 내놓아야만 뒤처지지 않습니다. 혁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살아남을 제조사는 몇 곳?

에버그란데(헝다) 그룹의 헝치자동차는 지난해 첫 양산모델 헝치5를 내놨다. 하지만 여러 전자적 결함 노출로 판매는 1000대 정도에 그쳤고, 생산은 중단됐다. 헝치자동차 홈페이지
시장이 성숙해지면서 소수의 플레이어로 재편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특히 올해 들어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 가격 전쟁이 불붙으면서 그 속도가 빨라졌는데요. 아직 중국 전기차 제조사는 대부분 적자 상태입니다. 자금력에서 뒤지는 중소 제조사가 버티기란 점점 어려워지고 있죠.

과연 몇 곳이나 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UBS의 폴 공 애널리스트는 FT와의 인터뷰에서 “2030년엔 10~12개의 중국 자동차 제조사가 대규모로 운영될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통합의 물결이 일면서 소수의 회사만 살아남을 거란 전망이죠.

중국 전기차 업체 샤오펑 CEO인 허샤오펑(何小鹏)은 더 가파른 변화를 예상합니다. 그는 지난 4월 “자동차 산업이 전기화로 전환하는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자동차 제조사가) 대거 퇴출당할 것”이라며 “2027년까지 전기차 제조사가 8개 정도 남을 것”으로 봤습니다. “모든 선수는 리그에서 강등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도 말했는데요. 정작 샤오펑 역시 적자와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승자는 BYD, 그리고 또 누구?

그럼 과연 누가 살아남을까요. 일단 1순위는 말할 필요 없이 BYD(비야디)이죠. 중국 자동차 시장 점유율 1위 BYD의 질주가 무섭습니다. 지난해 BYD가 전 세계 전기차(순수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 판매에서 테슬라를 제치고 1위를 했다는 소식은 이미 전해드렸는데요. 그래도 순수전기차(BEV)만 따지면 테슬라가 한참 앞서갔거든요. 그런데 이것도 조만간 역전될 듯합니다.

올해 3분기 테슬라의 전 세계 판매량은 43만5059대, BYD의 순수전기차(개인용) 판매량은 43만1603대입니다. 별 차이 없죠. 지금 추세대로라면 4분기엔 순수전기차에서도 BYD가 전 세계 1위에 올라설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자체 생산 배터리와 반도체를 이용한 ‘가성비 좋은 전기차’라는 BYD 전략은 중국은 물론 해외시장에서도 통하고 있습니다. 
BYD는 지난 8월 누적 기준으로 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 포함) 생산 500만대를 돌파했다. 올해 연간 생산량 목표치는 300만대이다. BYD 홈페이지
전기차 스타트업 3인방 중엔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한 리오토의 선전이 돋보입니다. 리오토는 평균 찻값이 40만 위안(약 7400만원) 안팎인 고급 대형 SUV에 집중하는데요. ‘1980년대생 아빠들의 로망’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입니다.

최근 중국 시장에서 급부상한 건 화웨이입니다. 화웨이의 전기차 브랜드 아이토(AITO)는 대형 SUV M7의 신형 모델을 지난달 출시했는데요. 한 달 만에 6만대가 계약되는 대박을 쳤습니다. 구형보다 저렴하고 내연기관차와 비슷한 수준인 24만9800위안(약 4600만원)이란 가격이 인기 비결인데요. 스마트 콕핏(운전석), 주행보조 기능도 뛰어나다고 합니다. 그동안 전기차에선 존재감 없던 화웨이의 급발진에 업계는 ‘진짜 화웨이가 온다’며 긴장하고 있죠.

중국 전기차 시장 재편까지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새로운 브랜드의 진출을 위한 문은 점점 닫히고 있죠.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갈 신규 진출 기업이 과연 있을까요. 시장에선 딱 한 곳에 주목합니다. 바로 샤오미인데요. 샤오미는 첫 번째 전기차 모델 MS11을 시험생산 중이라고 알려져 있죠. 최근 홍콩 톈펑증권의 궈밍지 애널리스트는 샤오미의 첫차가 2024년에 30만 위안(약 5500만원) 미만 가격에 출시될 거란 보고서를 냈습니다. 다만 아직 이미지도 공개되지 않은 단계라서 기대(‘젊은이들을 위한 차가 될 것’)와 걱정(‘이미 늦었다. 레이쥔의 최대 실패작이 될 것’)이 공존합니다.

9월 중국에선 순수전기차 50만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량 24만6000대가 판매됐다. 제조사들의 가격 인하 경쟁으로 전기차를 선택하는 소비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중국승용자동차협회
한편 9월 중국 신에너지차(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 판매 대수(74만6000대)는 1년 전보다 22% 늘면서 역대 최대 기록을 썼습니다. 보조금 폐지와 경기 둔화에도 시장은 계속 커지는데요. 중국 언론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만두를 빚듯이’ 끊임없이 새로운 모델이 나오는 데다, ‘가격 인하가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은 영향입니다. 글로벌 전기차 산업의 판도 변화를 한발 앞서 보여주는 중국 시장. 그 트렌드를 놓치지 않도록 예의주시해야겠습니다. By.딥다이브

중국 시장 판매 부진으로 인해 최근 테슬라 주가가 충격을 받았죠. 딥다이브에서 BYD(비야디)의 부상을 처음 다룬 게 10개월 전인데요. 솔직히 이렇게까지 무섭게 치고 올라올 거라곤 예상 못 했습니다. 파산 위기에 처한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이야기가 남 얘기 같지만은 않은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WM모터스·아이웨이즈·헝치자동차 등 한때 주목 받았던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이 파산 위기에 몰렸습니다. 판매부진과 자금난에 시달리다가 결국 공장을 닫고 생산을 중단했는데요. 혁신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난립했던 중국의 전기차 제조사는 결국 소수의 대형사 위주로 재편될 겁니다. 전문가들은 8~12개 제조사만 살아남을 거라고 내다봅니다.

-과연 누가 살아남을까요. 절대 강자 BYD가 1위 자리를 확고히 하는 가운데 흑자로 돌아선 리오토, 신형 모델로 돌풍을 일으킨 화웨이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습니다.

-출혈을 감수하는 가격경쟁으로 인해 중국 전기차 시장의 재편은 빨라지고 있습니다. 중국 이외의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도 곧 닥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 기사는 2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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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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