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사랑을 닮았다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2023. 10. 2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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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하는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
최태현 지음, 창비 펴냄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다음 한 걸음을 선택하는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민주주의와 사랑이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니 알겠다. 사랑과 가장 비슷한 모양의 정치체제가 있다면 민주주의임을. 나의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지만, 피곤과 귀찮음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의회와 정부가 우리를 ‘대표’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고안한 여러 제도가 공동체를 위협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투표와 헌법 같은 제도가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자는 그것이 민주주의의 전부가 아님을 성실하게 검토한다. “대안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찰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요즘, 절망이야말로 우리 공동체가 치열하게 사유해야 할 감정이다.

연결된 위기
백승욱 지음, 생각의힘 펴냄

“끊임없이 회의하며 다시 단단하게 다진 신념이 아니라면, 고집이나 환상에 불과할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국은 수시로 타이완 주변을 봉쇄하며 무력 통합 위협을 가하고 있다. 북한은 실전에 투입 가능한 전술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중‧러가 예전엔 시도하지 못했거나 그럴 필요가 없었던 일들을 감행 중인 이유는, ‘어떤 거대한 것’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어떤 것’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냉전’과 ‘미국 단일 패권’이란 외피 속에서도 끈질기게 지탱되어온 세계질서(얄타 체제)라고 설명한다. 이 질서의 와해는 우크라이나로 시작해서 타이완을 거쳐 한반도로 이어지는 “연결된 위기”로 폭발할 수 있다. ‘위기들’이 ‘연결’되어 군사적 대립과 전쟁이라는 현실로 폭발하지 않도록 통제하기 위해 필요한 역사적 통찰과 지혜를, 이 책은 담고 있다.

파이낸셜 페미니스트
토리 던랩 지음, 조율리 옮김, 클레이하우스 펴냄

“나는 모든 여성이 이런 느낌을 느껴보았으면 한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 학자금을 다 갚았다. 스물다섯 살에 10만 달러를 모았다. 금융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 ‘허 퍼스트 $100K(Her First $100K)’를 창립했다. 이 책을 쓴 토리 던랩은 인정한다. 정기적으로 케이블 회사에 요금을 낮춰달라고 협상할 줄 아는 아버지와 매달 두 번씩 꼼꼼하게 가계부를 점검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그건 특권이었다. 시스젠더이자 이성애자, 비장애인 백인 여성으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것 모두가. 그리고 그 특권에는 책임감이 따랐다.” 그녀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MZ 세대 여성들에게 재정 관리법을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은 그중 하나다.

아주 짧은 소련사
실라 피츠패트릭 지음, 안종희 옮김, 롤러코스터 펴냄

“소련이 그렇게 간단히 붕괴할 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한때 미국에 대항해 세계를 양분했던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란 기세등등한 초강대국이 하루아침에 붕괴해버린 어이없는 사건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 책의 저자는 소련이 러시아 혁명으로 성립되어 레닌의 통치와 후계 경쟁, 스탈린의 대숙청, 제2차 세계대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등 세계사적 사건을 경유하며 해체되기까지 75년 동안의 공산주의 통치와 제국의 붕괴를 생생하고 매력적인 소련 입문서로 정리해냈다. 제목(‘아주 짧은 소련사’)에 부끄럽지 않게, 해외의 평론가들로부터 “명확하고 흥미진진한 데다 매우 읽기 쉽고 간결하며” “수많은 탁월한 정보를 매우 읽기 쉬운 문장으로 압축”했고 심지어 “학술서로서도 기적에 가까운” 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정감각
나임윤경 외 지음, 문예출판사 펴냄

“‘진실’이 맥없이 지워지고 ‘사실’이 근거 없이 조롱과 폄훼를 당하는 것.”

지난해 6월 한 대학의 강의계획서가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았다. 나임윤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의 ‘사회문제와 공정’이다. 학생들이 청소 노동자의 집회가 수업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고소와 소송을 제기했다. 저자는 강의계획서를 통해 일부 청년들의 그릇된 ‘공정감각’을 비판하며 대학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그 공정감각의 중심에 선 게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이다. “청소 노동자 임금 300만~400만원”처럼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득세하고 사회적 약한 고리에 대한 조롱과 혐오, 멸시가 공기처럼 퍼져 있다. 에브리타임은 어쩌다 반지성주의의 현장이 되었는가. 저자는 “이대남에 가려진 다른 20대의 목소리”를 드러내기 위해 수강생 13인과 이 책을 함께 썼다. 결코 단일하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대항의 담론을 만들어낸다.

엄마가 죽어서 참 다행이야
제넷 맥커디 지음, 박미경 옮김, 위즈덤 하우스 펴냄

“아주 오랫동안 내 일을 위해, 또 엄마를 위해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왔다.”

혼수상태에 빠진 엄마에게 딸은 말했다. “드디어 40㎏을 찍었어.” 엄마가 딸을 위해 정해준 체중 목표치였다. 하지만 그 소식에도 엄마는 깨어나지 않았다. 엄마가 없다면 나는 이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딸은 혼란스러운 방황을 시작한다. 여섯 살에 할리우드 아역배우의 길로 들어섰던 저자가 엄마와의 강박적인 관계, 섭식장애, 할리우드 트라우마 등에 대해 고백한 에세이다. “내 인생이 에이전트나 엄마의 손이 아니라 내 손에 달렸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미국에서 출간 이후 1년이 지나도록 베스트셀러에 올라 ‘대중문화적 현상’이란 평가를 받은 책이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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