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탈북민 한마당…“모이자, 손잡자, 힘내자”
[앵커]
앞서 보신대로 중국이 최근, 탈북민 600여 명을 강제로 북송하면서 국제 사회의 큰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북중 국경이 수년 간 봉쇄돼 탈북민 수가 한동안 크게 줄었지만, 올 상반기에는 대한민국에 들어온 탈북민이 다시 백 명에 육박하는 등,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분단 이후 지금까지 남한 사회에 정착한 탈북민은 대략 3 만 4 천 명에 육박하는데요.
탈북민들은 ‘먼저 온 통일’로 불리며 남북 통합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민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고 함께 응원하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됐다고 하는데요.
탈북민들의 대화합 잔치에 최효은 리포터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가을비가 내리는 날씨지만 커다란 운동장이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아름다운 춤사위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신명 나는 아코디언 연주에 어깨춤이 절로 납니다.
한자리에 모인 이들은 탈북민들입니다.
[최화숙 : "양강도 해산시에요. 지금은 고양시에서 살아요."]
[허황 : "(고향은) 평양요. 지금은 서울시 노원구."]
탈북과정은 끔찍했고, 여전히 남한에서의 삶도 녹록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날만큼은 모든 걱정을 내려놓습니다.
[한서진 :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 즐거움 너무 좋아요. 이런 모임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어요."]
‘2023년 탈북민 어울림 한마당’이 진행된 현장입니다.
[조민호/남북하나재단 이사장 : "많이 대화하고 소통해서 통합을 하기 위해서 오늘 만든 자리인데 탈북민 사회가 더 단합하고 우리 국민이 탈북민을 바라보는 눈이 많이 달라질 것으로 기대를 합니다."]
다행히 궂었던 날씨가 맑게 개면서 축제 분위기도 한껏 무르익어갔습니다.
이곳 어울림 한마당에는 약 3천여 명의 탈북민들이 모였습니다.
각자 바쁜 일상을 뒤로 하고 오랜만에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 행사를 즐기고 있는데요.
목숨을 걸고 한국으로 온 탈북민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도와가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함께 만나보실까요.
북한식 운동회에선 화합의 마음이 빛을 발했습니다.
["북에서 했던 추억의 게임, 병 끼고 달리기."]
줄에 병을 끼고 달리는 경기와 두 사람이 머리 사이에 공을 끼고 달리는 경기.
북한에서 즐겨하던 추억의 종목이라고 합니다.
저도 병을 끼고 달리는 경기에 참여해봤습니다.
낯설었지만 같은 팀 연진 씨의 응원에 힘입어 2등을 차지했습니다.
[조연진 : "네, 우린 유치원 때부터 이 (경기를) 하거든요. 너무 좋아요. 진짜."]
금강산도 식후경!
이런 행사에 먹거리는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이죠.
함경도 출신인 성희 씨는 집안에서 내려오던 방식 그대로 빚은 북한 전통 술을 선보였습니다.
[김성희/북한 술 제조업체 대표/탈북민 : "북한 술의 특징은 원재료 맛과 누룩의 향 이걸 최대한 살려주는 게 강점입니다."]
우리 쌀로 재현한 북한 술에서, 탈북민들은 그리운 맛을 떠올렸는데요.
[박순호 : "(북한) 술맛이 나네. 북한에서 먹던 딱 그 술이에요. 진짜 그 맛이에요."]
또 다른 매대에는 어린 아들과 함께 북한의 떡을 먹는 부자가 눈에 띕니다.
[최세영 : "이거 아빠가 평양에서 먹던거야. (그래요?) 엄청 맛있어."]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아픈 기억을 삼켜봅니다.
[최세영 : "아이는 이 맛을 모르죠. 한국에서 태어났으니까 그런데 이런 거 볼 때마다 좀 가슴이 짠하죠. 북한 생각이 나고, 북한에 있는 자식 생각이 나고 그래요."]
흔치 않은 경험으로 인해 이처럼 탈북민들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론 울고 있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특히 최근 중국에서의 탈북민 강제 북송 소식은 동병상련의 탈북민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석경옥/소품 제조업체 대표/탈북민 : "중국 감옥에 있을 때는 하얀 밥을 먹었는데 북한 감옥에 들어가면 죽도 없어요. 그래서 형편없죠. 옥수수 알도 지금 이 가을에 옥수수 알이라도 주워 먹지만 겨울이나 봄 같은 땐 먹을 게 없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잡혀간 분들 보면 진짜 안타깝죠."]
그래서 이들에 대한 심리 상담 등은 안정적인 삶을 지속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데요.
탈북민 상담사들이 행사장 한 편에서 재능기부에 나선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원경희/심리상담가/탈북민 :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는 아픔들을 다 갖고 계시는 분들이에요. 그런 분들이 지금까지 얘기를 못 하고 있다가 저희들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어 준 것 같아서 저희는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 (상담) 전화가 오면 저희가 친절하게 상담을 다 연결해 드릴 거고요."]
탈북민들은 오늘 이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고향의 향수를 느끼며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은 각자의 가슴 속에 어떠한 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15년 전 남한에 정착한 경옥 씨는 남과 북에서 인정받은 손재주로 장신구와 소품을 만들어 정착 기반을 다지고 있습니다.
[석경옥/소품 제조업체 대표/탈북민 : "북한에서 하던 일은 제가 무역회사에서 수놓은 일 자수 (놓았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저절로 다 제가 손으로 (하는 일을) 하고 있죠."]
무엇보다 딸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요.
[석경옥/소품 제조업체 대표/탈북민 : "이런 새터민(탈북민)들 모임 할 땐 저희 딸을 데려오고 싶거든요. 왜냐하면 내 고향 사람들이고 이 사람들이 사는 그 음식 보면 내가 어떻게살다 온 그게 드러나잖아요."]
엄마의 고향을 기억해주기를 바라며, 아직 북에 남아있는 가족을 향한 소망도 전합니다.
[석경옥/소품 제조업체 대표/탈북민 : "그저 지금 이대로만 살아계시면 통일이 될 때 우리 부모나 형제 자매들 만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 봐요."]
5년 전,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부부의 사연은 더욱 특별합니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로 장애를 갖게 된 미영 씨.
[이미영 : "북한에선 장애를 가지면 일단 집에서 나오려고 안 해요. 북한에선 불구 말을 그래도 그 소리 싫어서 바깥에 나가기 싫고 안 나가."]
미영 씨에게 탈북은 남편이 없었다면 생각조차 하기 힘든 계획이었습니다.
[이미영 : "저희 남편이 저를 업고 오는데 엄청 고생이 많았어요. 산도 넘어야 되고, 강도 건너야 되고 다리도 못 쓰는 상태에서 나 업고가야 된다 해서 애기 포단(포대기) 만들어서 그걸로 싸서 업고 압록강 건넜어요. 딸 손잡고..."]
편견과 차별이 가득했던 시절을 벗어나 미영 씨 부부는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새로운 꿈을 그려 나갑니다.
[이미영 : "사회 생활하는 거 너무 좋죠. 제 평생에 일할 수 있단 게 너무 좋고 앞으로 생활을 잘하면 정착 잘해서 저희도 봉사하고 싶습니다."]
[전영철 : "북한에서 못다 한 일을 한국에 오니까 너무 좋고 뭐랄까. 저희 집사람이랑 모든 행복을 누리고 살고 싶습니다."]
더 이상 낯선 이방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한 탈북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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