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중국, 억류 탈북민 강제 북송…“살려주세요”
[앵커]
항저우 아시안 게임 폐막 직후, 중국은 억류 중인 탈북민 6백여 명을 강제로 북송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이유로 북한이 국경을 폐쇄하면서, 한동안 중단됐던 탈북민 강제 북을 다시 재개한 겁니다.
강제 북송이 국제적으로 큰 비난을 받는 건 송환된 탈북민들이 겪게 되는 심각한 인권 침해 문제 때문인데요.
중국의 추가 북송 가능성도 우려됩니다.
오늘 ‘클로즈업 북한’에선 중국 내 탈북민들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우리가 탈북민의 강제 북송을 왜 막아야 하는지 깊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이번에 강제 북송된 한 탈북민 가족이 큰 용기를 내서, 탈북민들의 절절한 호소를 전해왔습니다.
[리포트]
김 철 옥.
북한을 떠나온 후에도 잊은 적이 없는 이름.
말갛고 잘 웃던 귀여운 소녀.
탈북민 김혁 씨의 사촌 여동생입니다.
[김혁/2000년 탈북 : "저희 친척들이 다 모여서 결혼하는 결혼식 사진인데. 요 때가 아마 (철옥이) 유치원 때 아닌가."]
친남매처럼 가까웠고, 또래보다 더 친구처럼 지냈다고 합니다.
[김혁/2000년 탈북 : "1년을 같이 살았는데 그때는 제가 5살이었고 철옥이가 4살 때. 4살에서 5살 사이에 같이 살았습니다. 철옥이 손목 잡고 두만강에 나가서 계속 놀았어요."]
그러나 행복하던 유년 시절은 1990년대 중반에 시작한 고난의 행군과 함께 산산이 부서져 버렸습니다.
[김혁/2000년 탈북 : "작은 어머님이 식량난과 경제위기 때문에 돌아가셨고 작은 어머님이 돌아가시면서 먹고 살기 더 어려워졌고 가족들은 먹고살기 힘드니까 흩어져서 생활하는 경우도 많았고 철옥이 같은 경우에는 중국에 넘어가면 먹을 걸 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넘어가게 된 거죠."]
1998년, 굶주림 속에 국경을 넘었지만 중국 땅을 밟은 열네 살 소녀 철옥 앞엔 또 다른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혁/2000년 탈북 : "넘어가자마자 바로 인신매매 당한 거더라고요. 철옥이를 데려간 남편이 그때 당시 40세 가까이 됐나 봐요. 철옥이랑 30세 이상 차이가 나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뒤이어 탈북한 가족들은 철옥 씨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시작했지만 2019년에야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소녀였던 철옥은 어느새 다 큰 딸을 둔 엄마가 돼 있었습니다.
[김혁/2000년 탈북 : "성인이 된 건 제가 처음 봤거든요. 체격도 많이 커진 것 같고요. 그때는 작았는데. 그런데 보는 순간 아, 이게 철옥이구나 그냥 바로 알겠더라고요."]
그런데 재회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가족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올해 봄, 철옥 씨가 중국 공안에 체포된 겁니다.
그리고 지난 10일, 강제 북송됐습니다.
중국 수용소 억류 6개월 만입니다.
[김혁/2000년 탈북 : "9일 저녁 5시경에 딸한테 전화로 내일 넘어갈 것 같다 내일 넘겨진다더라 이렇게만 얘기가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딸이 울고불고하면서 여기저기 알리기 시작했고. 상황이 굉장히 멈추는 듯했어요. 사실. 이렇게 급박하게 움직일 거라곤 예상도 못 했거든요."]
북송은 확인됐고, 김혁 씨를 비롯한 가족들은 철옥 씨가 앞으로 북한에서 어떤 끔찍한 일을 겪을지 두렵기만 합니다.
[김혁/2000년 탈북 : "철옥이 같은 경우에는 어릴 때 나간 데다가 북한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 잡히면 사상성 문제가 또 이야기 나올 수가 있죠."]
현재 중국에 머물러 있는 탈북민은 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국제법상 탈북민은 ‘난민’에 해당하지만, 중국 당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경제적 문제로 국경을 무단 월경한 ‘불법 체류자’라는 겁니다.
[왕원빈/중국 외교부 대변인/10월 12일 : "중국에는 이른바 '탈북민'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경제적 원인으로 중국에 온 불법 입국한 북한 주민에 대해 중국 정부는 시종일관 책임감 있는 태도를 유지하며 국내·국제법, 인도주의를 결합한 원칙을 견지해 적절히 처리하고 있습니다."]
불법 체류자로 규정된 만큼 공안의 불시 검문에라도 걸리면 현장 체포될 수밖에 없어, 늘 불안에 떨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탈북민들이 중국행을 택하는 이유는 뭘까?
바로 먹고 살기 위해, 죽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섭니다.
2015년, KBS 취재팀이 만난 중국 내 탈북민들.
그 가운덴 어린아이들도 있는데요.
동상에 걸려 퉁퉁 붓다 못해 까맣게 된 아이의 발.
발바닥엔 시뻘건 물집이 잡혀 있고 피부 일부는 이미 괴사했습니다.
적게는 일곱 살에서 열세 살까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한겨울에 국경을 넘은 꽃제비들입니다.
["(너희들 부모님은 없니?) (북한에 가면 엄마는 없니?) 네. (아버지는?) 없어요. (너희를 안 찾니?) 네."]
철옥 씨처럼 생계를 위해 국경을 넘었다 인신매매를 당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지금은 한국에 정착한 탈북 여성이 우리 돈 2백만 원에 팔려 와 살았던 집입니다.
["(오셨을 때 어땠어요?) 왔을 때 세상에 이런 집도 있는가. 여긴 북한보다 더하니까요."]
하지만 탈북민은 아무리 어려도, 중국인과 결혼해도 강제 북송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중국으로 탈북했던 최민경 씨는 강제 북송 뒤 겪었던 일들로 지금도 악몽을 꾼다고 합니다.
[최민경/NK감금피해자가족회 대표/2012년 탈북 : "몸을 실 한 올 안 걸치고 홀딱 벗겨서 (검사)해요. 검신을 시작해요. 특히 이 사람이 의심스럽다 이런 사람들은 몇 회에 걸쳐 앉았다 일어났다를 시키고. 그다음에 부류를 나눠서 독방에 수감하고."]
수용소에서의 생활 역시 최악이라고 합니다.
[최민경/NK감금피해자가족회 대표/2012년 탈북 : "3평 남짓 한 데다 30명씩 넣어요. 그러니 돌아앉을 수도 없어요. 거기에 변기까지 같이 있잖아요 북한 감옥은. 그래서 위생 환경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이, 벼룩, 빈대."]
여기에 강제 노역까지 하다 보니 탈북민들은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목숨을 잃습니다.
[최민경/NK감금피해자가족회 대표/2012년 탈북 : "자고 일어나 출석을 부르면 없어요. 대답이 없어서 보면 죽어 있어요. 이 죽음의 소굴에서 살려만 달라고. 살려만 달라고. 저는 딸이 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있습니다. 그래 살려만 주세요. 살려만 주세요. 그 기도만 했던 것 같아요."]
탈북민이 겪는 이 같은 참상은 명백한 인권 침해로 국제법 위반이라고 유엔 등 국제기구는 비판합니다.
[서보혁/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탈북민의 인권은 크게 세 가지 영역이 있습니다. 임시 체류하고 있는 제3국에서 인권, 그리고 북한을 나가거나 다시 들어갈 경우 강제 송환 포함해서 그 과정에서 생기는 인권이 있고, 그리고 다시 강제 북송이 되었을 때 치를 수 있는 인권 침해가 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부분 강제 북송 자체가 일단은 국제 난민법에 위반됩니다."]
우리 정부도 중국의 이번 강제 북송을 강하게 비판했는데요.
[구병삼/통일부 대변인/10월 13일 : "정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해외 체류 탈북민이 자유의사에 반하여 강제 북송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우리 정부는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중국 측에 이 문제에 대해 엄중하게 제기하였으며."]
문제는 약 1,400명의 탈북민들이 지금도 중국 수용소에 구금되어 있다는 겁니다.
추가 강제 북송을 막기 위해선 우리 정부의 노력과 더불어 국제 사회의 강력한 공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서보혁/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중국이 국제 사회에서 지위를 높이고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당신들이 가입한 국제인권 인도주의법을 지키고 그것에 근거해서 탈북민을 보호하는 게 좋겠다는 외교적인 설득과 국제사회의 압력 이런 것들을 우리가 일관되게 해나가야 되고."]
다섯 번의 탈북 끝에 한국에 들어온 최민경 씨 역시 탈북민을, 북한 주민을, 똑같은 인권을 가진 사람으로 바라봐 달라고 호소합니다.
[최민경/NK감금피해자가족회 대표/2012년 탈북 : "단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 인권이라는 거는 보편적인 권리잖아요. 인간으로서 내가 정말 태어나서 우리가 무슨 죄가 있을까요. 태어난 곳이 북한인 게 저는 죄라고 생각해요."]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두만강을 넘었다 인신매매된 14살 소녀 김철옥.
그리고 25년 만에 강제 북송된 김철옥.
우리가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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