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속 북한' 탈북민 운동회
◀ 김필국 앵커 ▶
지난 주말, 서울의 한 대학 운동장에서 전국의 탈북민들이 함께 운동회 등을 펼치며 모처럼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 차미연 앵커 ▶
네, 그리웠던 고향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나기 위해 역대 가장 많은 탈북민들이 운집했다는데요.
그 현장을 이상현 기자가 찾아가봤습니다.
◀ 리포트 ▶
가을비가 소곤소곤 내리던 지난 토요일 오전.
궂은 날씨에도 우비와 우산 차림으로 서울의 한 대학 운동장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합니다.
선선해진 가을을 맞아 남북하나재단이 준비한 '탈북민 어울림 한마당'을 위해섭니다.
[조민호/남북하나재단 이사장] "어차피 오늘은 탈북민들도 "비오는 건 걱정하지 마라. 비 와도 한다." 사선을 넘어온 사람들이라 이 정도는 뭐.. 진정한 탈북민들의 단합된 모습을 한번 대한민국에 보여주자. 그러면서 이미지도 바꾸고 북한에 주는 메시지도 좀 있고 그래서 호응이 좋아요."
"반갑습니다~~"
탈북 예술인들의 공연으로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행사장엔, 날이 조금씩 개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요.
[이상현 기자/통일전망대] "이번 행사를 위해 보시는 것처럼 전국에서 수많은 탈북민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무려 3천명이 넘는 인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탈북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고 합니다."
무대 주변으론 탈북 이후 오랜 기간 명태 덕장이나 수공예 공방을 운영해온 탈북민부터,
십수년 쌓아온 남한 직장에서의 노하우를 토대로 최근 특허를 받아 사업을 시작했다는 탈북민까지, 성공적인 남한 정착생활의 결과물들을 뽐내는 공간들이 마련돼 있었습니다.
[서정민/탈북 창업가] "코로나 때 집에서 배달을 해 먹었는데 랩 벗기기가 너무 귀찮은 거에요. 쓰레기도 많이 나오고 그래서 이거 한번 랩을 벗겨보자.. 이건 그냥 음식물 담고 뚜껑만 닫으면 절대로 새지가 않아요."
수년 만에 다시 만난 고향 언니, 탈북 동기들과 함께 어릴 적 먹던 북한식 순대와 김치, 간식 등을 맛보며 추억 여행도 떠나봅니다.
[노정옥/탈북민] "이런 좋은 자리를 마련해줘가지고 동생도 만나고 우리 (하나원) 기수도 만나봤어요. 우리 기수에 친구가 많이 앓더라고요. 너무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났어요."
[유옥이/탈북민] "서울에서 벌어지는 자리지만 작은 북한이라고 생각을 해요. 언젠가는 이 많은 사람들이 같이 38선을 넘어서 그리운 고향을 함께 갈 수 있는 사람들이구나라고 생각하니까."
탈북민 자녀들은 비눗방울 놀이로, 어린 나이에 탈북한 청소년들은 남한 땅을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작품 전시로 어울림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김영미/탈북 청소년 대안학교 교장] "한국에서 이렇게 여행하면서 사진을 찍는 것을 배워서 이렇게 작품 전시를 한게 사실 한꿈학교 학생들에겐 처음이에요. 그래서 아주 의미 있고."
드디어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추억의 운동회 시간.
먼저 조그마한 나뭇가지를 병에 끼워 달리며 릴레이 대결을 펼치는 종목이 선을 보였는데요.
북한에선 유리병을 이용해 주로 명절에 많이 한다는 놀이로, 중간중간 병을 수시로 떨어뜨리긴 했지만 탈북 후 고향 사람들과 처음 해본 추억의 놀이에 마냥 행복했습니다.
[이송금/탈북민] "고향 생각이 나고요. 오늘 또 이렇게 다 같이 모여가지고, 오니까 알게 된 지인들도 만나게 됐고 고향 분들도 만나고 너무 고마웠습니다."
두 사람이 공을 머리 사이에 끼고 달리는 놀이도 펼쳐졌는데요.
이날 처음 본 사이였음에도 금세 친 자매처럼 친해지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김순옥(탈북민)/임혜진(탈북민)] "북한에서는 원래 배에다 (공을) 끼고 했어요. 근데 오늘은 머리에.. 너무 잘 맞더라고요. 너무 좋았어요."
"우리 모두 통일을 바라는 마음에서 통일노래자랑을 시작하겠습니다~!"
축제에 빠질 수 없는 노래자랑대회.
저마다 숨겨놓은 끼와 흥을 맘껏 뽐내봤는데요.
"어디서 오셨습니까?" "날강도에서 왔습니다." "아, 날강도에서 오셨어요? 어머, (저랑) 같은 고향이다. 여러분, 원래는 양강도인데, 양강도 사람들 워낙 그쪽 지역은 살기 어렵다보니 날아가는 돈도 가로챈다 해서 날강도라고 합니다."
수많은 어른들을 제치고 탈북민 부모가 남한에서 낳아 기른 초등학생이 영예의 1등을 차지했습니다.
[바람의 빛깔(원곡 포카혼타스OST-오연준 버전)] "아름다운 빛의 세상을 함께 본다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요."
모처럼 한데 모여 먹고 웃고 뛰며 즐겨봤던 탈북민들의 하루.
[이혜경/탈북민] "(탈북한 지) 17년 됐는데 너무 좋아요. 처음 본 사람들도 많고 오랫동안 못 봤던 사람들도 만나가지고."
그 흥겨웠던 하루가 끝나갈 무렵엔 하늘의 구름이 걷히고, 환한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통일전망대 이상현입니다.
이상현 기자(shon@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unity/6535645_291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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