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꽃의 영화뜰] FBI가 웬 비디오 가게를 털었다고?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2023. 10. 21. 08: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디어오늘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미국 FBI가 뉴욕 맨해튼의 유명 비디오 가게에 들이닥친다. 요주의 코너는 카운터 곁에 위치한 '해적판' 칸! 정장에 선글라스를 낀 요원들은 자루에 쓸어 담듯 희귀 비디오테이프를 수거한다. 일개 비디오 가게에서 일어났다기엔 규모가 남다른 사건이다. 여기, 대체 뭐 하는 곳이길래?

이건 한때 미국 영화광들의 애정을 독차지했던 1980~1990년대 미국 비디오 가게 '킴스 비디오' 이야기다. 지난달 27일 국내 개봉한 다큐멘터리 <킴스 비디오>는 바로 그곳의 역사를 회고한다. 당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희귀 영화를 대여해 주며 영화광들의 성지로 자리잡았던 독보적인 가게다.

▲ 영화 '킴스 비디오' 스틸컷
▲ 영화 '킴스 비디오' 스틸컷

OTT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극장에서 놓친 영화를 다시 보기 위해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야만 했다. 영화광들의 비디오테이프에 대한 집착은 한층 더 심해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전 세계 희귀 영화가 복제돼 유통되는 '킴스 비디오'에 자발적으로 몰려들었다.

미국 전역에 11개 지점을 둘 정도로 크게 성공한 '킴스 비디오'는 직원을 전 세계 영화제에 파견하기에 이른다. 개봉 기회를 얻지 못하고 수장되는 작품을 건져 오기 위해서다. 그렇게 확보한 '자원'은 미국 유명 영화광들의 구미를 당기는 아카이브가 됐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코엔 형제가 '킴스 비디오'에 연체료를 물었고, 봉준호 감독이 '형님'으로 칭하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이 가게 사장과 꽤 가까운 친구가 됐을 정도라고 하니, 그 위용을 상상할 수 있는가.

물론 영광의 순간만 있던 건 아니다. 소유권자의 허락 따위(!)는 받지 않고 영화를 복제, 유통하면서 FBI 수사 목록에 올랐기 때문이다. 저작권 개념이 엄격한 요즘 관점으로 보면 좀 황당한 일이지만, 80년대 뉴욕 영화광들의 기준은 좀 달랐던 모양이다. 아무도 봐주지 않아 사라지기 일보직전이던 영화를 발굴하고 비디오로 복사해 관객과 만나게 했던 '킴스 비디오' 사장의 발상과 배포를 더 크게 쳐줬다. '킴스 비디오'에서 일했던 직원은 “뉴욕의 대항문화와 지하문화, 영화와 예술의 어두운 면과 교차하는 지점까지 상징한다”며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그 가치를 증언한다.

▲ 영화 '킴스 비디오' 포스터

문제는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세상이 변했다는 것. 비디오 대여점이었던 넷플릭스가 OTT 플랫폼으로 변모하자 킴스 비디오 직원도 넷플릭스에 취직한다. 비디오테이프의 역사가 종말을 고하던 시점이다. '킴스 비디오' 사장은 '액기스'와 다름없던 5만 5000장의 희귀 테이프를 잘 보존해 줄 곳을 찾고, 때마침 '당신의 소장품을 가치 있게 보관하고 전파하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선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의 한 마을을 낙점한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아마 이쯤에서 다큐멘터리 <킴스 비디오>의 진짜 목적을 가늠할지 모르겠다. 한때 '킴스 비디오'의 열성 팬이었던 감독은 오랜 시간이 흘러 '감감무소식'이 된 5만 5000점 비디오테이프의 행방을 쫓아 직접 이탈리아 시칠리아로 향한다. 예상대로, 감독을 기다리는 건 충격적인 광경이다. 산처럼 쌓인 비디오테이프는 빗물 샌 창고에 먼지 덮인 채로 관리자도 없이 방치되고 있다.

감독은 결심한다. 이 비디오테이프들을 다시 미국으로 데려가기로!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주인이 양도해 준 소장품을 되돌릴 방법이 없을 것만 같던 순간 감독이 떠올린 묘수는, 마치 전 세계 희귀 영화를 무단으로 복제하고 대여해 영화광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킴스 비디오'의 방식만큼이나 기발하다. 그 흥미진진한 여정을 고스란히 촬영한 덕에 <킴스 비디오>는 미국 최고 독립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를 비롯해 유수 영화 축제에 초청될 수 있었다.

▲ 영화 '킴스 비디오' 스틸컷

사실 이 모든 이야기보다 더 재밌는 건, '킴스 비디오'를 세우고 운영한 사장의 존재일 것이다. 다름 아닌 우리나라 군산에서 태어나 1979년 미국으로 떠난 이민 1세대, 용만 킴이다. 세탁소 한편에서 해적판 비디오를 빌려주다가 '킴스 비디오'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는 그의 부흥과 실패의 역사는, 그간 익히 알려진 한국계 미국인의 차별과 극복 서사를 훌쩍 넘어선 독보적인 아우라를 띈다. 뉴욕 문화계의 한 축을 담당했던 '힙'하고 독특한 아시아계 사업가로 기억되는 그 존재감은 전에 본 적 없는 새로움이다.

▲ 영화 '킴스 비디오' 스틸컷

<킴스 비디오> 정식 개봉을 앞둔 지난달 한국을 찾은 용만 킴은 기자회견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2014년) '킴스 비디오' 폐업 소식을 들은 뉴욕타임스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는데, 그때 기자에게 '잊히고 싶다. 난 루저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거절했다"고. 아마 그 역시 몰랐을 것이다. 9년쯤 흐른 어느 날, 실패한 줄로만 알았던 자기 사업에 너무나 큰 영감을 받았던 '찐팬'의 활약으로 완성된 영화를 품에 안고 고국을 찾는 인생 대반전을 맞게 될 줄을.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