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넘은’ 전쟁…무고한 희생, 책임은 누가? [세계엔]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의 "전쟁에도 규칙이 있다"는 발언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얼마나 참혹하고 잔인한지 깨닫게 합니다. 전쟁의 불씨를 댕긴 하마스의 기습공격과 인질 납치부터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면봉쇄, 이번에 일어난 병원 폭발 참사까지 모두 무고한 주민들의 희생을 낳았습니다.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었다는 이번 전쟁의 면면을 짚어봅니다.
■하마스의 민간인 납치와 '인간방패'
현지 시간 지난 7일, 하마스는 로켓포 공격과 함께 가자지구 분리장벽을 부수고 이스라엘 남부 20여 곳을 공격합니다. 이스라엘 레임 키부츠 마을에서 열린 음악 축제 현장에서는 적어도 260명이 숨졌습니다. 무장대원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난사했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나왔습니다.
더 끔찍한 건 민간인들을 납치했다는 겁니다. 하마스가 납치한 여성을 차량에 태워 가자지구로 돌아가는 영상이 SNS에 퍼지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대원들에게 인질로 잡혀간 사람의 수를 19일 기준, 203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하마스의 공격에 이스라엘이 곧바로 '피의 보복'을 다짐하자 하마스에서는 '인간 방패'를 언급합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민간인 주택을 사전 경고 없이 공격할 때마다 이스라엘 민간인 인질 1명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하마스의 이 모든 행위는 명백한 전쟁범죄입니다. 국제법은 1949년 제네바협약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전시 중에도 민간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을 처음 세운 협약입니다. 적대행위를 하지 않는 사람을 살상해서는 안되고, 이와 함께 군사 작전을 수행하더라도 목적과 비교해서 민간인 사상자가 지나치게 많으면 안 된다는 '비례성의 원칙'도 고려해야 합니다. 하마스의 공격은 둘 다 어겼습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모두 제네바협약을 비준했으므로 이를 따라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고사 작전과 남쪽 대피령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이튿날, 가자지구를 전면 봉쇄합니다.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전기와 연료, 모든 물품을 끊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고사 작전으로 가자 주민들은 오염된 물을 마시고 주린 배를 움켜쥐며 전기와 통신이 끊긴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하마스의 공격이 불법이라고 해서 이스라엘의 반격이 모두 정당화되는 건 아닙니다. 폴커 투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민간인의 생필품을 박탈해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포위 공격은 국제인도법에 따라 금지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과 미국의 설득으로 구호물품이 조만간 가자지구 접경을 넘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스라엘의 봉쇄 방침은 아직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지상전을 염두에 둔 이스라엘군은 이후 현지시간 13일, 가자시티 주민들에게 남쪽으로 대피하라고 촉구하는데요. 이를 두고도 해석이 엇갈립니다.
라비아 샴다사니 유엔 인권최고 대표사무소(OHCHR) 대변인은 이를 "국제법을 위반한 강제 이송이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법상 주민들의 위생과 건강, 안전 등을 보장한 숙소를 마련한 뒤 임시 대피를 유도할 수는 있지만 이스라엘이 이를 보장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반면 미국 육군사관학교의 전쟁법학자인 마이클 슈미트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스라엘이 사상자를 줄이기 위해 대피령을 포함한 여러 조치를 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국제법에 따라 '군사 목표 근처에서 민간인을 분리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관점입니다.
■병원에 떨어진 로켓…파괴된 '평화 안식처'
현지 시간 17일, 가자시티에 있는 알 아흘리 병원에서 일어난 폭발은 전 세계의 분노도 터뜨렸습니다. 환자들과 보호자, 의료진뿐만 아니라 병원 인근에서 공습을 피해 몸을 숨긴 피란민들도 화를 입었습니다. '평화의 안식처'라 불렸던 곳은 비극의 현장이 되어 적어도 300명 넘는 사망자가 나왔고 다친 사람도 수백 명으로 추산됩니다.
원래 병원은 전시 중에도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여겨집니다. 국제인도법에서 의료시설에 대한 공격을 엄격하게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병원이나 예배당을 포함한 민간 시설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될 경우에 한해서는 보호 대상에서 예외가 됩니다.
결국 이번 폭발이 의도적으로 병원을 노린 경우라면 명백한 전쟁범죄에 해당하고, 수많은 민간인 희생을 불렀다는 점에서도 국제법 위반 소지가 높습니다.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의 또다른 무장단체 이슬라믹지하드는 병원 참사의 배후로 서로를 지목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희생자 853명…국제법은 있지만 처벌은 요원
유엔에 따르면 현지 시간 18일 오후 5시 기준으로 가자지구 안에서 숨진 사람은 모두 3,478명입니다. 이 가운데 어린이 희생자는 최소 853명입니다. 전체의 4분의 1에 해당합니다. 전쟁 중에도 무고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제법의 대원칙은 이번 전쟁에선 이미 무너져 버렸습니다.
현실적으로 책임을 묻거나 처벌할 수단도 마땅치 않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전쟁범죄를 다루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ICC의 관할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ICC는 집행을 강제할 경찰력이 없습니다. 회원국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ICC 조사 대상에 오를 수는 있지만 9년 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이 2년 전에야 조사 단계에 들어갔다는 점, 유죄 판결도 그리 많지 않다는 점도 ICC의 한계입니다.
결의안과 제재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역할을 바랄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주의적 접근 허용을 촉구하는 시급하고 기본적인 결의안도 미국의 거부로 채택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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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효진 기자 (h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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