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그노벨상을 타면 노벨상도 받을 수 있을까
❋편집자주. 이그노벨상. 괴짜들의 노벨상이라 불리며 “다시 할 수도 없고 다시 해서도 안되는 업적”에 수여되는 상으로불립니다.매년듣기만해도웃음이터져나오는연구약10개에수여되고있죠. 하지만웃음 너머로 과학의 본성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연구들을 조명하는 상이기도 합니다. 매년 단신으로 지나갔던 이그노벨상 연구를 모아 더욱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가을은 (이그)노벨상의 계절이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발간하는 과학잡지 ‘있을 것 같지 않은 연구 회보’는 현지시간 9월 14일 2023년 이그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그리고 10월 2일부터는 노벨위원회가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일주일에 걸쳐 2023년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그런데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상을 둘 다 받은 과학자가 있었다.
● 개구리 공중 부양을 연구라고
1996년의 어느 금요일 밤 안드레 가임 네덜란드 네이메헌대 물리학과 교수는 이상한 실험을 시작했다. 자신이 몸담고 있던 연구실의 가장 중요한 실험 장비인 20 테슬라(자기력선속의 밀도를 나타내는 국제단위. 기호는 T다) 성능의 강력한 전자석 내부에 물을 부은 것이다.
“장비에 물을 붓는 것은 확실히 표준적인 과학 연구 방법은 아닙니다. 그리고 내가 왜 그런 ‘전문가답지 않은’ 짓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요.” 14년 후 그는 한 연설에서 당시의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놀랍게도 물은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전자석의 중심에 뚫린 구멍 내부에 떴다. 가임 교수는 이 현상이 물 분자가 가진 반자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반자성은 물체가 외부 자기장과 반대 방향으로 자성을 띠는 성질이다. 물은 미약한 반자성을 띤다. 그런데 전자석의 강한 자기장 속에서 물의 반자성이 나타났고 이 힘이 중력을 이겨내면서 공중에 떠오른 것이다.
이 결과에 가임 교수는 물론 주변 자기장 연구자들도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이 결과가 거짓말이라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전자석 중간에 물을 부어 본 사람이 가임 교수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가임 교수는 물을 많이 포함한 물체라면 공중 부양에 성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딸기, 토마토 등을 띄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실험 재료는 개구리였다. 공중 부양 개구리의 사진은 물리학 잡지는 물론 여러 언론의 지면을 장식했고 가임 교수는 2000년 이그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 딴짓이 허용되는 금요일 밤 모임
사실 이 같은 개구리 공중 부양 실험은 가임 교수와 동료들이 ‘금요일 밤 실험(Friday Night Experiments)’이라 부르던 실험 시리즈의 일환이었다. 금요일 밤 실험은 연구팀의 주 프로젝트와는 관련 없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보는 시간이었다.
전혀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실현된다면 큰 변화를 일으킬 만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실험들이 이 시간에 이뤄졌다. 가임 교수는 연구실 총 업무 시간의 10%를 여기에 할애했다.
약 15년 동안 가임 교수팀은 20여 차례의 금요일 밤 실험을 진행했고 대부분 실패했다. 연구원들의 경력을 위태롭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오래 지속된 프로젝트는 별로 없었다. 눈에 띄게 성공한 건 딱 세 가지였다(이에 대해 가임은 “10%가 넘는 놀라운 성공률”이라고 밝혔다).
첫 번째가 개구리 공중 부양 실험이었다. 두 번째는 어디에나 잘 붙어서 기어오르는 도마뱀붙이의 발을 흉내 내 만든 ‘게코(도마뱀붙이) 테이프’였지만, 상업화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공한 실험 발상만으로 따지면 개구리 공중 부양보다도 더 엉뚱한 실험이 가임 교수에게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안겨줬다.
● 스카치테이프로 노벨상을 타다
2001년 안드레 가임은 네덜란드를 떠나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로 부임했다. 이곳에서 새 연구실을 꾸리면서 그는 신입 박사과정 학생이 진행할 사이드 프로젝트로 ‘가능한 얇은 흑연 필름 만들기’를 제시했다.
흑연은 탄소의 여러 동소체 중 하나로 우리에게는 연필심으로 친숙한 물질이다. 그러나 동시에 흑연은 당시까지도 전기적 특성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신비한 물질이기도 했다. 흑연은 탄소 원자가 육각형 모양으로 연결된 평면이 층층이 쌓인 구조였다. 가임 교수는 흑연에서 탄소 원자 평면 한 층을 벗겨낸 물질 ‘그래핀’을 만들 수 있다면 새로운 특성을 연구할 수 있으리라 추측했다.
사실 그래핀을 만들기 위한 시도는 1970년대부터 있었지만 실제로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가임 연구팀은 처음에 흑연을 연마제로 갈아내 10μm(마이크로미터μm는 100만 분의 1m) 두께까지 줄여봤지만 너무 두꺼웠다. 그래핀을 구현하기엔 택도 없는 두께였다.
반전은 쓰레기통에서 일어났다. 가임 교수팀의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연구원은 주사터널링현미경(STM)으로 흑연을 촬영하는 사람들을 보다가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들은 시료를 정리하기 위해 흑연 시료 표면을 스카치테이프로 붙였다 떼는 과정을 거쳤는데 이렇게 버려진 스카치테이프 표면에 흑연이 얇게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낸 것이다.
테이프 표면에는 과연 수 nm(나노미터는 10억 분의 1m) 수준의 흑연 층이 남아있었다. 이렇게 간단할 수가. 전 세계 연구팀이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그래핀을 만드는 비법은 겨우 스카치테이프였다.
이후 가임 연구팀은 1년 넘게 흑연 표면에 스카치테이프를 10~20번 정도 뗐다 붙였다 하며 그래핀을 만들었고 단일 층 그래핀의 물리적 특성을 밝혀냈다. 그들의 논문은 2004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리자마자 재료물리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논문으로 떠올랐다.
이 논문은 그래핀이라는 재료의 신기원을 열었다. 그래핀은 독특했다. 금속이 아니면서 전기가 통하고, 강철보다 수백 배 단단하다. 반도체, 연료전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용적으로 쓰일 수 있는 성질이었다.
학계의 예측대로 가임 교수와 노보셀로프 연구원은 2010년 그래핀 연구의 신기원을 연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동시에, 가임 교수는 최초로 이그노벨상과 노벨상을 동시에 수상한 연구자라는 영예를 안았다.
● 과학이 항상 진지해야 할까
어떤 연구가 중요하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한정된 연구비를 어떤 연구에 지원할지 선택해야 하는 과학정책가가 항상 맞닥뜨리는 고민이다.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엉뚱한 연구보다는 사뭇 진지해 보이는 연구를 지원하는 데에 더 마음이 쏠릴 것이다.
가이아 이론을 만든 영국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은 ‘과학 예산 전체에서 단 1%를 비정통적인 계획에 투입하자’고 주장했다고 알려졌다. 가임 교수가 진행한 ‘금요일 밤 실험’은 장기적으로 볼 때 허무맹랑한 대안적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 옳을 수 있다는 완벽한 사례처럼 보인다. 그는 완전히 반대처럼 보이는 이그노벨상과 노벨상 사이의 깊은 간극을 메웠다.
2010년, 안드레 가임 교수는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이그노벨상 수상에 관해 “우리의 유머 감각과 자기비하적 태도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과학의 가장 숭고한 자리에서도 농담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엉뚱함과 재미는 진지함과 절박함 만큼이나 과학에 필요한 가치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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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10월호, [빅잼] 이그노벨상을 타면 노벨상도 받을 수 있을까?
[이창욱 기자 changwoo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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