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뒤 죽을 각오" 울먹인 돌려차기 피해자…檢·法 '책임 전가'
"사실 저는 20년 뒤에 죽을 각오로 열심히 피해자들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제 사건을 빌미로 해서 좀 많은 범죄 피해자분들한테 이렇게 힘없고 아무 백 없는 이런 국민들을 구제해 주셨으면 좋겠다."
20일 국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부산지방법원 등 지방 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A씨는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는 김도읍 법사위원장의 질문에 "이건 그냥 하나의 업무가 아니라 그분(피해자)들에겐 인생"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A씨는 "그걸 그냥 숫자로만 치부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도 밝혔다. 판사들에게는 업무인 하나하나의 사건, 그리고 양형 판결이 범죄 피해자들에겐 생사를 넘나드는 일이란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A씨가 국회에서 눈물로 이같은 증언을 한 같은 날, 가해자 이모씨(31)의 발언도 언론을 통해 알려져 충격을 안겼다. 이씨는 감방 동기들에게 "여섯대 밖에 안 찼는데 발 한 대에 2년씩 해서 12년이나 받았다. 공론화 안 됐으면 3년 정도 받을 사건"이라며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에 그냥 죽여버릴 걸 그랬다"는 것이다.
이 발언은 항소심 재판부에 반성문과 탄원서를 내던 시기에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감형을 위해 반성문을 제출했지만 실제로는 보복성 발언을 반복하고 있던 셈이다. 이씨는 검찰에서 징역 20년을 구형받았으나 1심에서 12년 징역으로 감형됐다.
A씨는 이날 국감에서 재판부의 감형에 대해 부당함을 토로했다. A씨는 "1심 공판 내내 살인미수에 대해서 인정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어떻게 가해자의 반성이 인정이 되나"라며 "범죄와 아무 관련 없는 반성, 인정, 가난한 불우한 환경이 도대체 이 재판과 무슨 소용이 있나.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겠다는데 왜 판사가 마음대로 용서를 하겠다고 하는 건가"라고 했다. 이어 "이건 국가가 2차 가해를 피해자에게 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A씨는 자신의 1심 공판 기록 열람을 수차례 시도했지만 거절당한 경험도 전했다. A씨는 "1심 공판에서 사각지대 시간이 7분 정도 있다는 것을 들었고 그때 처음으로 성범죄 가능성을 의심했다. 그래서 알고 싶지도 않았던 공판 기록을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로부터) 정말 많은 수차례 거절을 당했고 겨우 받을 수 있는 건 공소장뿐이었다. 피해자는 재판 당사자가 아니니 가해자에게 민사소송을 걸어서 문서송부 촉탁을 하라고 권유받았다"고 했다.
A씨는 1심의 살인미수 혐의가 2심에서 강간살인미수로 변경된 경위에 대해 "1심이 끝나고 1200장이 넘는 공판기록을 한 달 내내 들고 다녔다"며 "거짓말이 가득한 공판 기록을 봤고 제가 성범죄를 다시 적극적으로 조사를 해야 된다고 어필을 했고 그로 인해 그나마 얻어낼 수 있는 결과였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A씨는 이 과정에서 보복 범죄 위협에 노출됐다. A씨는 "공판 때마다 열심히 참석하니 가해자는 오히려 형이 피해자 때문에 키워졌다고 했다. (저에게) 증오심을 표출했고 구치소 같은 방 재소자한테 외출하면 저를 찾아가서 죽이겠다, 현재 주소를 달달 외우면서 다음번에는 꼭 죽여버리겠다라는 얘기를 했다"며 울먹였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재판장이 (재판기록 공개) 허락을 했으면 피해자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민사소송을 하면 피해자 신원 노출되는 것도 아실 텐데 법원이 권유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보복범죄를 발생시키는 원인을 제공한 점 반성하셔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법사위는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여야가 공방 없이 한목소리로 사법부를 질타하고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참고인은 가림막 내부에서 모습이 가려진 채로 진술했으며, 음성변조는 희망하지 않아 목소리가 생생하게 전달됐다.
다만 법원 측의 온도는 달랐다. 김흥준 부산고등법원장은 "고등법원장으로서 되게 안타까움을 많이 느낀다. 위로의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이어 "구체적인 제도(개선)에 관해서는 제가 깊이 검토를 하지 못해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되는지는 정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안타깝다라는 표현을 하셨는데 말이 되나.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질타하자 김 원장은 "부적절한 말이라면 제가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답변 도중 헛웃음을 짓다 "지금 웃을 일이냐"는 지적도 받았다. 김 원장은 "화살의 방향은 법원이 아니라 검찰을 향하고 계셔야 된다. 법원이 적극적으로 기소되지 않은 공소사실을 두고 재판을 심의해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도 했다.
오후에 이어진 지방법원 대상 국감에서 최경규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은 '화살' 발언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비겁하게 남 탓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영학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은 수사 과정에서의 노력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원래는 '준상해' 송치됐다. 성범죄를 염두에 두고 수사했지만 DNA 물증이 없어 고심하다 경찰에 속옷 DNA 검사를 지시했다"며 "살인미수로 1심 기소를 했는데 재판 중에 국과수에서 DNA 검사 결과가 의미 없게 나왔다"고 했다. 이어 "많은 토론을 거쳐 항소심에 이르러 다시 다퉈보자고 해서 증인 신청을 다시 하고 대검에 의류 정밀감정을 해 청바지 안쪽 DNA를 찾아 공소장을 변경, 강간살인미수로 유죄판결 받은 사안"이라고 밝혔다.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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