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의 입'으로 44년…김영규 공보관 "전작권 가져와야"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김은정 기자 = "한국의 안보는 한국인이 주도적으로 지켜야 한다. 한국군이 전시작전통제권도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영규(76) 주한미군 공보관은 19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미 두 차례 전환 시기가 연기됐고, 북한의 핵ㆍ미사일 능력 고도화와 한반도 안보 환경 악화로 이제는 전환 시점을 가늠하기도 어려워진 전작권에 대해 이런 견해를 밝혔다.
그는 44년 동안 주한미군에서 대(對)언론 창구 역할을 하면서 한국군과 주한미군 사이에서 가교 구실도 해왔다. 오는 31일 퇴임을 앞둔 김 공보관은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오찬을 겸한 인터뷰에 응했다.
"90년대 이후 한국군 주도·주한미군 보조 역할"
김 공보관은 "1990년대 전후로 주한미군의 역할이 크게 변했다"며 "1990년 전에는 주한미군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여러 역할이 한국군으로 넘어갔고 (주한미군은) 보조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평시 작전권이 주한미군에서 한국군으로 넘어갔고, 비무장지대(DMZ)에서 미군이 완전히 철수했으며,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가 미군에서 한국군으로 바뀐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그는 전작권 전환은 한미가 협상 중이고 조건이 아직 완전히 충족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지만, 한국군의 주도적인 역할을 고려할 때 전작권 전환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공보관은 '연합 작전 때 외국군의 지휘를 받지 않는다는 미군의 퍼싱 원칙을 생각할 때 미국은 전작권을 한국에 넘겨줄 생각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내가 지켜본 바로는 분명히 (전작권 전환) 계획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작권 전환 이후 "미래 연합사령부가 되면 한국군 장성이 사령관이 되고 미군이 부사령관을 맡는 구도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퍼싱 원칙과 전작권 전환은 별개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군은 어떻게 하면 한반도 안보를 강력히 지켜낼 수 있냐에 초점을 맞춘다"며 그 일환으로 추진하는 것이 유엔군사령부 재활성화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유엔사 재활성화는 한국군 장성이 연합사령관을 맡게 된 이후 미군이 더 많은 역할을 하기 위해 유엔사 기능을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가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김 공보관은 강조했다. 전시에는 한미가 연합사 체제로 싸우고 유엔사는 연합군의 전력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연합사와 유엔사는 기능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76년 카투사 근무로 미군과 인연…판문점 미루나무 제거 현장에
'한미동맹의 산증인'인 그는 30세이던 1976년 입대해 카투사(주한미군에 배속된 한국군 병사)로 차출되면서 주한미군과의 인연을 시작했다.
연세대(67학번)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동두천에 있는 미 2사단 공보실에 배속돼 2사단 기관지인 '인디언 헤드' 기자로 근무했다.
그는 1976년 북한군의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당시 미 2사단 대원들이 북한군과 대치하면서 판문점의 미루나무를 제거하는 작전 현장을 지켜봤다.
당시 나무 하나 제거하는 작전에 폭격기와 항모전단 등 미군 전략자산이 대거 동원됐다고 한다. 미군은 미루나무 제거를 이유로 북한군이 도발하면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로 임했다고 김 공보관은 회고했다.
그는 1979년 전역과 함께 미 2사단 공보실 정식 직원으로 채용됐고, 1985년에는 주한미군 공보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주한미군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 유엔군사령부의 공보관으로 내외신 기자들의 현장 취재를 지원해왔다.
그는 재직 기간 회담 취재 지원 등을 위해 판문점을 1천 번 이상 방문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는 1989년 임수경이 방북 후 남쪽으로 내려오던 모습을 꼽았다.
그는 "당시 임수경과 문규현 신부가 군사분계선에서 연설했다. 임수경은 정권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젊은이의 열정을 가지고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취지의 연설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며 "젊은이의 열정을 가지고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고 회고했다.
판문점 1천번 이상 방문…"임수경 방북 가장 기억 남아"
김 공보관은 임수경이 남한으로 내려오는 장면을 취재하지 못한 한국 언론을 상대로 브리핑해야 했다.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관계만 설명한 뒤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는데, 마음이 영 불편해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천주교 신자였던 그는 바로 성당에 가서 신부 앞에서 고해성사하면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고서야 마음이 풀렸다고 한다.
그는 1980년대 '반미'를 외치는 젊은이들의 생각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서점에서 구할 수 있었던 '운동권 서적'을 모두 구해 열심히 읽었다고 한다.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젊은이들과 대화하기 위해 우선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그의 서재에는 당시 운동권 서적이 다수 있다고 한다.
그는 외신의 판문점 취재를 지원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언제 통일이 될 것 같냐?'는 질문이며, 일관되게 "가까운 장래에는 안 될 것"이라고 답한다고 한다.
김 공보관은 "판문점 회담 취재를 지원하면서 북한 기자도 많이 만났다"며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생각이 너무 다르다. 70년 이상 떨어져 살면서 남북한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 달라져 다시 합친다는 게 쉽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한탄했다.
그는 주한미군 공보관이면서도 미군과 한국군 사이의 가교 역할도 많이 했다. 한국군과 미군 사이에서 양측의 입장을 전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퇴임 이후에는 방송 관련 새로운 일을 시작해 주한미군의 활동을 소개하는 등 한미동맹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할 계획이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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