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건강] "귓속 맴도는 '삐' 소리…정신건강에도 '경고음'"
정확한 '청력검사'가 치료 첫발…"인터넷 이명 영상, 맹신 안 돼"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한 번쯤은 갑작스럽게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경험을 한다. 이때 들리는 소리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략 '삐∼', '찌∼', 쉬∼' 등으로 표현된다.
대개 이런 소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명'(耳鳴)이라는 질환이 돼 평온한 일상을 방해하는 평생의 불청객이 되기도 한다.
대한이과학회 소속 이비인후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이명은 외부의 소리 자극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머리나 귀에서 소리가 들리는 증상으로 정의된다.
우리말로는 '귀울림' 또는 '귀울음'이라고 한다. 의미가 없는 단순한 소리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소리·음악·언어 등이 들리는 '환청'과 구분된다.
이명 환자는 세계적으로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 의학교육논단에서 펴낸 2022년도 자료에서는 전체 인구의 약 10∼15%가 이명을 경험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증상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소아에서도 이명 발생률이 13%로 상당히 높게 집계됐다.
국내에서는 이명 유병률이 성인의 20.7%, 12∼19세의 17.7%로 각각 보고된다. 질병관리청에서 실시한 국민건강영양조사 분석에서는 성인 5명 중 1명이 이명을 경험하고, 매년 이명 발생률이 3%씩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난청 환자 절반 이상이 이명 증상…"비정상 청각신경 자극이 원인"
이명은 다양한 원인이 거론되지만,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로 '난청'이 꼽힌다.
난청 때문에 청각 경로로 전달되는 신호가 줄면서 뇌가 청각 정보의 부족함을 느끼게 되고, 이를 보상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과민 반응이 나타나면서 이명이 발생한다는 게 학회의 설명이다.
실제로 난청이 있는 환자의 50∼70%에서 이명이 동반하는 것으로 학회는 분석했다.
이 외에도 귀에 독성이 되는 약물, 머리 손상, 메니에르 증후군, 내이염, 중이염, 청신경 종양, 뇌종양 등도 이명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드물지만 청각기 주위의 혈관계와 근육계의 병변으로 이명이 발생하기도 한다.
혈관성 이명이란 중이와 내이에 인접한 혈관(경정맥과 경동맥)으로 혈류가 지나가는 소리가 전달돼 들리는 경우로, 귀에서 맥박이 뛰는 소리나 '쉭, 쉭' 하고 피가 혈관을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다.
근육성 이명은 중이 내 소리를 전달하는 구조물 등에 부착된 근육에 경련이 있을 때 이명이 들리는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원인이 불분명한 이명도 많은 편이다.
서울대병원운영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이비인후과 김영호 교수는 "상당수 이명은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 어렵고, 비정상적이고 반복적인 뇌 내부 자극이 청각신경 자극으로 이어져 실제로 소리가 나는 것처럼 인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폰 사용자, 이명 위험 27% 높아…귓속 음압 영향 추정"
이어폰 사용이 이명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분석도 꾸준히 제기된다.
차의과대학 이비인후과 김소영 교수 연구팀이 국제학술지(Noise & health)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외부 소음이 있는 환경에서 하루 1시간 이상 이어폰을 사용하는 1천955명과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는 대조군을 비교 분석한 결과, 이어폰 사용자의 이명 경험률이 22.9%로 대조군의 18.1%보다 높았다.
연구팀은 이런 결과로 볼 때 이어폰 사용자의 이명 발생 위험이 비사용자보다 27% 높은 것으로 추산했다.
연령별로는 12∼20세 젊은 층과 40세 이상 중장년층 이어폰 사용자의 이명 발생률이 다른 연령층보다 더 높았다.
연구팀은 "그동안 몰랐거나 무증상이었던 청각 장애가 이어폰 사용 후 이명 증상으로 나타났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이어폰 사용에 따른 음압의 영향이 청력을 관장하는 유모 세포 기능을 감소시키거나, 이명 발생에 기여하는 불특정 청각 신경계의 문제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게 연구팀의 해석이다.
"이명 계속 땐 우울증 위험 커지는 부작용…중년 남성이 더 취약"
이명이 지속되면 일상생활에 지장은 물론 정신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연세대의대 예방의학교실 장성인 교수 연구팀이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40세 이상 1만979명을 대상으로 분석해 국제학술지 (Plos one)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이명 증상이 있는 남성과 여성이 우울증을 경험할 위험은 이명 증상이 없는 경우보다 각각 1.53배, 1.78배 높은 것으로 추산됐다.
특히 남성의 경우 40∼49세에 이명 증상을 겪는 경우 우울증이 생길 위험이 2.96배까지 상승했다.
이는 퇴직 때까지 일을 지속하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중년 남성에게 이명이 생길 경우 큰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연구팀의 해석이다.
반면 여성은 남성과 달리 70∼79세 연령대에서 이명 환자의 우울증 위험이 최고치(2배)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우울증에 취약한 상태에 처한 사람에게 이명이 생기면 우울증이 더 잘 유발되는 것으로 본다.
김영호 교수는 "이명의 발생은 기분과 정서를 담당하는 뇌의 변연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며 "이 때문에 우울증이나 불안 등 정서장애가 있는 경우 이명의 발생과 진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청기·인지행동치료' 도움…"인터넷 이명 영상 상당수 부적절"
이명이 생겼다면 우선 난청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정확한 청력 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사에는 청력 상태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순음청력검사와 고막 검사, 각종 설문검사 등이 포함된다.
단국대병원 이비인후과 정재윤 교수는 "제대로 된 장비와 시설을 이용한 청력 검사는 개선할 수 있는 질환이나 다른 심각한 귀 질환을 파악하는 데 꼭 필요하고, 청각 재활에도 근간이 된다"고 설명했다.
검사에서 난청이 이명의 원인이라면 보청기 착용이 도움 될 수 있다. 난청으로 인해 감소한 청각경로로의 입력신호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또한 주변 환경음을 적절히 증폭해 이명과 배경 소음 사이의 대비를 줄임으로써 이명에 따른 괴로움을 감소시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인지행동치료'와 '이명 재훈련치료'도 접목되고 있다.
이명 증상을 받아들임으로써 일상의 사소한 잡음과 같은 범주에 혼합하는 뇌 훈련이 인지행동치료라면, 이명 재훈련치료는 이명과 유사한 소리를 통해 뇌에서 이명을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자극으로 인식하도록 '습관화'하는 방식이다.
약물의 경우 신경안정제, 항우울제, 진정제 등이 이명의 악순환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다만, 선별세로토닌 재흡수억제제(SSRI) 계열의 항우울제는 이명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보고가 있어 주의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이든 치료까지 최소 6개월에서 2년 정도의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여유 있게 치료에 임해야 하고, 환자 본인도 충분한 수면, 금주, 금연 및 규칙적인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 유지, 이명 치료를 위한 훈련 습관 형성 등 각고의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다.
다만, 아직 감기약이나 두통약처럼 이명을 손쉽게 치료할 수는 없는 만큼 근거 없는 치료법에 매달리는 건 주의해야 한다.
실제로 경희대병원 이비인후과 연구팀은 인터넷에 노출된 이명 치료 관련 동영상을 분석한 논문(Scientific Reports)에서 분석 대상 동영상 100개 중 상당수 콘텐츠가 부적절한 의학적 증거에 기초하고 있으며, 교육 품질이 좋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일산백병원 이비인후과 이전미 교수는 "이명은 소음 노출 등 자극을 받은 후 또는 아주 조용한 공간에 있는 등의 경우에서 정상인의 90% 정도가 경험하는 흔한 증상이지만, 지속적이거나, 자주 발생하거나, 귀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는 등 일상생활에서 지장을 받는 경우에는 빠른 검사와 치료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bi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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