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시세차익 '5배'… 10억원 벌게 해준 '강남브리즈힐'
[편집자주]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은 아파트 분양가에도 적잖은 파장을 미쳐 내 집 마련 위기로 다가왔다. 주택 거래의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는 공공분양의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른바 '반값 아파트'를 앞다퉈 내놓겠다고 나선 배경이다. 서울시 산하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올해 사전청약을 실시한 '토지임대부주택'이 대표 모델. 높은 청약경쟁률로 인기를 끌었지만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법 체계의 확립 없이 설익은 대책이라며 우려를 표한다. 토지임대부주택은 국유지의 80%를 정부가 보유한 싱가포르 주택정책 모델에서 비롯됐다. 기본적으로 시세차익 상승을 제한하는 주택 모델이어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분양된 토지임대아파트들은 지상권에 대한 권리 주장과 인근 시세 상승을 이유로 건물 소유자가 땅 소유자인 공공기관과 대립하는 등의 부작용이 심각했다.
(1) 도시 흉물된 '회현시민'… 1세대 토지임대아파트의 끝자락
(2) LH 이어 SH·GH도 '반값 아파트'… 반복되는 '반쪽 정책'
(3) [르포] 시세차익 '5배'… 10억원 벌게 해준 '강남브리즈힐'
서울에서 입지가 양호하고 교통이 불편하지 않으며 학군도 갖춰진 웬만한 아파트를 사려면 못 해도 5억원은 줘야 하는 시대다. 기준금리가 올라 아파트 시장이 침체에 빠졌다고 한들 10~20년 전과 비교할 때 떨어진 단지는 거의 없다. 아파트 가격은 통상 건물에 토지 가격을 합쳐 결정되는데 건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감가상각돼 가치가 떨어지지만 땅값은 오르기 때문이다. 수도권 주요 도시의 땅은 유한하기에 수요가 지속되는 한 토지 가격은 상승하기 마련이다.
토지임대부 주택이 등장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집값이 높아지는 주된 원인인 토지는 공기업이 갖고 계약자는 건축물만 소유하는 방식을 통해 고품질의 주택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급하겠다는 목표다. 서울 강남 자곡동에 위치한 강남브리즈힐 아파트가 이 같은 토지임대부주택의 전형적인 예시다. 2012년 분양자들은 땅 아닌 건물만 매수했다. 토지 주인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다. 74㎡(이하 전용면적) 분양가는 1억9380만∼1억9610만원, 84㎡는 2억2050만∼2억2230만원 선.
가구별로 토지 임대료에 따른 전환보증금을 추가로 예치할 수 있다. 74㎡ 기준 최대 보증금은 약 5400만원으로 이 경우 토지 임대료는 15만원까지 내려간다. 84㎡는 최대 6100만원 예치 시 매달 17만원의 임대료를 내면 된다. '종합부동산세법'에 따라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에선 제외된다.
올 초 84㎡ 매물이 10억3000만원에 팔렸다. 현재 호가는 10억8000만~11억9000만원 정도다. 74㎡는 9억5000만~10억7000만원 사이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인근에서 사무소를 운영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74㎡는 최근 거래된 것이 거의 없다"며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조회가 가능해진 지 얼마 안 돼 다른 아파트와 달리 가격 확인이 어렵다 보니 현 입주민이 내놓은 매물은 많은데 문의는 저조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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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남성 주민 A씨는 "환경만큼은 강남 최고인데다 토지임대부주택이기에 시세도 저렴하고 세금 측면에서도 유리하다"며 "임대료를 내긴 하지만 연말정산이 가능해 부담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주민 B씨는 "가성비 좋은 집이란 얘기에 이견은 없지만 결국 토지 지분을 못 가지고 있어 나중에 재건축 등을 추진하게 되면 내 몫이 없지 않겠냐"며 "입주민끼리 LH측에 토지 매각을 더욱 강력히 요구하는 방안을 고심해봐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 카드를 다시 들고 나온 건 서울주택도시공사(SH)다. '반값 아파트'라는 별칭을 앞세워 지난 3월 사전예약을 실시한 고덕강일지구3단지는 500가구 모집에 약 2만명이 몰렸다. 특별공급 경쟁률은 33 대 1, 일반공급은 67 대 1이었다.
토지임대부 주택이 내 집 마련 초기자본이 부족한 무주택 시민들의 자가 소유를 보장하는 주거 사다리 역할을 수행한다는 이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김효선 NH농협은행 WM사업부 ALL100자문센터 부동산수석위원은 "거주 10년 후에 해당 부동산 가치가 내릴지 오를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저렴한 가격에 시민의 주거 안정성을 보장한다는 도입 취지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집을 살 때 거주 그 자체만 목적으로 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느 정도의 시세 차익도 기대할 수 있기 마련이다. 현행법상 토지임대부 주택은 시세차익은 물론이고 자유로운 거래도 제한된다. 이런 이유로 계약자들을 중심으로 환매 주체를 공공기관에서 민간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부 여당에서 일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해 12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이종배 의원(국민의힘·충북 충주)은 역세권 등 도심의 우수한 입지에 저렴한 주택이 공급될 수 있도록 토지임대부 환매 주체를 지방공사까지 확대하고 재공급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의 '주택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거주 10년 이후 개인 간 거래를 허용하되 매입금액에 차등을 둔다는 내용도 담겼으나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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