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흔이 증거, 교수 죽인 범인은…" 하버드 수업에도 쓰는 VR실험[월드콘]

김종훈 기자 2023. 10. 21.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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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하던 친구들이 창업한 VR실험 플랫폼 '랩스터',
과학교육 현장 바꾸는 중…"학업성취도 101% 증가"
[편집자주] 전세계에서 활약 중인 '월드' 클래스 유니'콘', 혹은 예비 유니콘 기업들을 뽑아 알려드리겠습니다. 세상에 이런 게 있었나 싶은 기술, 이런 생각도 가능하구나 싶은 비전과 철학을 가진 해외 스타트업들이 많습니다. 이중에서도 독자 여러분들이 듣도보도 못했을 기업들을 발굴해 격주로 소개합니다.

VR 가상실험 플랫폼 랩스터를 창업한 마이클 보데커(왼쪽)와 마즈 본데/사진=랩스터 홈페이지
#한 과학교수가 피를 흘리며 자택에 쓰러져있다. 현장에서 혈흔을 채취해 실험실에서 PCR 검사를 실시한다. 직접 PCR 키트를 이용해 DNA를 추출, 증폭시킨 뒤 전기영동기를 통해 증폭된 DNA를 채취한다. 범죄 드라마에서나 보던 DNA 프로파일링이다. 이렇게 얻어낸 DNA 정보를 사건 관계자들 것과 대조해보니, 교수를 살해한 범인은….

가상과학실험 플랫폼 랩스터(Labster)가 제공하는 'CSI 범죄현장' VR(가상현실)실험 페이지의 한 장면이다. 여기서 사용자는 과학수사대원이 돼 DNA로 범인을 색출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는 인간 DNA의 구조와 특징, PCR 키트 실습방법을 학습하게 된다.


과학실험 과목, 있어도 무용지물…VR실험 가능하다면?
굳이 VR을 통하지 않아도 현실에서 실험 키트를 구입, 실습할 수 있기는 하지만 학교현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학습계획을 세운 뒤 학교에 공문을 올려 키트를 구매, 비치하고 실습 후 뒷정리하는 것까지 모두 교사의 몫이다. 교과서 진도 나가기도 바쁜데 이런 실험까지 진행하는 것은 꿈도 못꾼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이 때문에 2015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한국 교실에 들어온 과학탐구실험 과목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실습형 수업을 늘려야 한다는 과학계 목소리와 달리 교육현장에서는 기존 과학수업처럼 책과 유인물 위주로 진행된다는 것.

가상과학실험 플랫폼 랩스터의 해부학 시뮬레이션 장면./ 사진=랩스터 홈페이지 갈무리

랩스터를 활용하면 과학수업 환경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다. 랩스터는 생물학, 해부학, 생태학, 공학, 식품영향학, 물리학 등 다양한 과학분야를 학습할 수 있는 VR실험 시뮬레이션을 제공한다. 준비된 시뮬레이션 개수만 300개가 넘는다. 교과목뿐 아니라 실험장비 사용법, 안전수칙 등 실험과학에 필요한 일반 원칙들도 교육할 수 있다. 특별한 장비가 없어도 인터넷에 연결된 기기 하나만 있으면 바로 가상실험을 시작할 수 있다.

미국 리빙스턴 고등학교 교사인 다이안 시걸즈는 생물학 수업에 랩스터를 도입해 상당한 학습효과를 거뒀다. 그는 랩스터 인터뷰에서 "많은 학생들이 학년이 바뀐 후에도 랩스터 실험을 기억하고 있었다"며 "어떤 학생은 그때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대학 실험실에 취직했다는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VR실험, 학업 성취도 101% 증가"
학술전문지 네이처 보도에 따르면 기존 강의방식에 랩스터의 VR실험 방식을 도입한 결과 학업성취도가 101% 증가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강의 없이 랩스터 VR실험만 진행하더라도 성취도가 76% 증가하는 것으로 측정됐다고 한다.

랩스터는 대학교육에서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루이스 마틴 박사는 랩스터 인터뷰에서 "막전위(Membrane potential) 같은 개념은 학생들에게 직접 보여줄 수가 없어 설명하기 매우 어려웠다"며 VR실험으로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이외에도 미국 하버드, 스탠퍼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등도 수업에 랩스터를 도입했다.

랩스터는 지난 4월 투자금 4700만 달러를 추가 유치해 총 투자금 1억5000만 달러를 끌어모았다. 92억 달러 규모 자산을 운용하는 GGV캐피털과 20억 달러 이상 자산을 보유한 아울벤처스, 교육전문 투자사 에듀캐피털 등이 투자에 참여했다.

랩스터 물리학 과정 시뮬레이션을 통해 자석의 자기 원리를 학습 중인 모습./ 사진=랩스터 홈페이지 갈무리
PC방에서 스타하던 대학원생들, "과학수업 바꿔보자" 의기투합
랩스터 창업자 마이클 보데커와 마즈 본데는 PC게임 카페에서 스타크래프트2와 카운터스크라이크 게임을 같이 하던 사이다. 당시 두 사람은 덴마크 공과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생물공학 실험실 관리를 맡고 있었다. 본데는 수강생들이 실험실에 올 때마다 '백지'가 되는 것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학습과학 박사과정생이던 보데커와 고민을 나누다 보니 과학수업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결론이 따라나왔다. 두 사람은 비행기 조종사 교육에 쓰이는 항공 시뮬레이터에 착안, VR 과학실험 개발을 시작해 랩스터 창업에 이르렀다. 보데커는 "10~15년 뒤 노벨상 수상자가 연단에서 '랩스터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수상 소감을 밝히는 모습을 보는 게 우리의 꿈"이라고 말했다.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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