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흉물된 '회현시민'… 1세대 토지임대아파트의 끝자락

김노향 기자 2023. 10. 2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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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아파트' 명암(1)] 반값 아파트, 40년 후 어떻게 될까

[편집자주]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은 아파트 분양가에도 적잖은 파장을 미쳐 내 집 마련 위기로 다가왔다. 주택 거래의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는 공공분양의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른바 '반값 아파트'를 앞다퉈 내놓겠다고 나선 배경이다. 서울시 산하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올해 사전청약을 실시한 '토지임대부주택'이 대표 모델. 높은 청약경쟁률로 인기를 끌었지만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법 체계의 확립 없이 설익은 대책이라며 우려를 표한다. 토지임대부주택은 국유지의 80%를 정부가 보유한 싱가포르 주택정책 모델에서 비롯됐다. 기본적으로 시세차익 상승을 제한하는 주택 모델이어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분양된 토지임대아파트들은 지상권에 대한 권리 주장과 인근 시세 상승을 이유로 건물 소유자가 땅 소유자인 공공기관과 대립하는 등의 부작용이 심각했다.

서울 중구 남산 올라가는 길 언덕에 위치한 '회현제2시민아파트'는 1970년 준공돼 올해 퇴거를 완료하고 철거된 계획이다. /사진=김노향 기자
◆기사 게재 순서
(1) 도시 흉물된 '회현시민'… 1세대 토지임대아파트의 끝자락
(2) LH 이어 SH·GH도 '반값 아파트'… 반복되는 '반쪽 정책'
(3) [르포] 시세차익 '5배'… 10억원 벌게 해준 '강남브리즈힐'

서울 남산공원 백범광장을 마주보는 가파른 언덕 위에 오랜 세월을 증명하듯 위태롭게 서 있는 '회현제2시민아파트'(이하 '회현시민아파트'). 국내 1세대 토지임대부주택으로 기록된 이 아파트는 1970년 입주해 올해로 만 53년됐다. 완공 당시 고층으로 인식되던 10층 높이에 총 340가구 규모다. 단일면적 38.34㎡(전용)로 비슷한 시기에 건립된 공공분양아파트의 면적보다 약 9.9㎡ 넓었다. 회현시민아파트는 건립 당시 입주금 30만원을 15년 거치 월 2000원씩 상환하는 조건이었다. 쌀 한 가마니 5000원, 연탄 한 장 16원 수준의 물가 시기여서 입주금 30만원은 서민에겐 높은 문턱이었다. 가장 최근에 신고된 임대차 거래는 2017년 5월 보증금 200만원, 월세 20만원이다. 신고된 매매 거래는 없다.

서울시가 땅을 소유하고 건물만 분양한 회현시민아파트는 2006년 위험시설 D등급으로 분류돼 거주 가능한 건축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판정됐다. 수차례 철거와 보존 정책 사이에서 갈팡지팡하다가 올 10월 보상과 퇴거를 완료하는 계획이 수립됐지만 끝내 기한을 지키지 못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10월에 보상 협의를 완료할 계획이었는데 거주자 각자의 사정이 있어서 어려웠다"며 "다만 계획을 중단하거나 변경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남은 가구에 대해선 규정상 공개하지 않는다"며 "올해 안에 보상과 퇴거를 실시하고 철거 계획과 설계를 수립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회현시민아파트 분양 당시 토지임대를 위한 계약기간을 명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 가구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보상을 실시한다.



SH공사 '반값 아파트' 무늬만 반값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올 3월 사전예약을 실시한 토지임대부주택 고덕강일지구3단지는 주택 구입을 위한 초기자금이 부족한 무주택 서민의 주거 사다리로 각광받아 고금리 리스크에도 청약자가 몰렸다. 1차 사전예약 총 500가구 모집에 약 2만명이 지원해 최고 경쟁률(청년 특별공급) 118대 1, 평균 경쟁률 40대 1을 기록하는 등 큰 관심을 끌었다. 이어 6월 고덕강일지구3단지 2차 사전예약에도 1만779명이 신청해 평균 1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 10월16일에도 마곡지구 토지임대부주택 사전예약이 실시됐다.

SH공사의 토지임대부주택은 공공이 토지를 소유하고 건물만 분양해 '반값 아파트'로 불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인상으로 분양가가 상승함에 따라 공공이 분양한 반값 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서울이나 인프라가 좋은 3기 신도시 등에 낮은 가격으로 내 집 마련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토지임대부주택은 무주택자의 내 집 장만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향후 감가상각에 따른 건물 가치 하락 문제와 토지 사용료(임대료)가 변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문제점은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땅을 빌려 사용하는 '보증부월세'에 가까운 제도인데 건물 분양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고덕강일3단지의 전용 49㎡ 기준 건물 분양가는 약 3억1400만원, 토지 임대료는 월 35만원으로 추정되는데 이 점만 강조되고 실제 감정 시점에 분양가와 임대료가 변동 예정이라는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본청약에 이르러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단지는 후분양 방식으로 공정률 90%인 2025년 본청약이 진행돼 40년간 임대될 예정이다. SH 관계자는 "분양가와 임대료는 시장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며 "이 같은 이유로 본청약 시 계약을 포기할 수 있도록 청약통장 사용 규제를 두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약통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규정 때문에 청약률을 부풀린 허수 효과가 나타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회현제2시민아파트로 가는 골목


토지임대부주택 매각 허용 법안 추진


SH공사의 토지임대부주택이 다소 성급한 실행이었다는 의견도 나온다. 종전에는 조성원가를 기준으로 임대료를 산정했다. 하지만 올해 주택법 시행령이 개정됨에 따라 조성원가 또는 감정가에 3년 만기 정기예금 평균 이자율을 적용해 지방자치단체장이 임대료를 정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지자체장의 결정에 따라 임대료가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사전예약자 입장에서 임대료가 오를 경우 공공에 대한 신뢰가 하락할 수 있고 환매 제한을 완화하는 주택법 개정안의 시행 여부도 정책 리스크"라고 우려했다. 현행법상 토지임대부주택의 처분을 원하는 경우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만 환매할 수 있어, 정치권은 지난해 12월 환매 대상을 SH공사와 경기주택도시공사(GH) 등으로 확대하는 법안을 추진했다. 전매제한 기한 10년이 지나면 개인간 거래를 허용하는 내용도 담겼다.

토지임대부주택의 인기 하락 요인으로 작용하는 공공환매 정책을 완전히 바꾸는 것은 아니지만 시세차익을 허용해야 하는 근본적인 딜레마에 놓여 있다. 회현시민아파트 사례처럼 토지 소유권이 없는 건물 재산권의 인정 문제를 놓고 입주자와 사업자가 대립하는 사태 역시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김노향 기자 me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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