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테크] 이봉주가 슈퍼슈즈 신었다면 한국신기록 얼마나 단축했을까

한 달 사이 남녀 마라톤 모두 세계 신기록 깨져
탄소섬유판 넣은 슈퍼슈즈 경쟁에 기록 단축
슈퍼슈즈, 통증·피로도 줄이는 효과도

최근 한 달새 마라톤의 역사가 바뀌었다. 지난 9월 24일 에티오피아의 티지스트 아세파는 2023 베를린 마라톤 여자부에서 2시간11분53초를 기록하며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케냐의 브리지드 코스게이가 2019년에 세운 기록을 무려 2분11초나 단축했다. 아세파는 결승선을 통과한 뒤 자신이 신고 뛰었던 운동화 ‘아디제로 아디오스 에보 프로 1(Adizero Adios Evo Pro 1)’을 번쩍 들고는 입맞춤했다.

지난 9월 24일 에티오피아의 티지스트 아세파는 2023 베를린 마라톤 여자부에서 2시간 11분 53초를 기록하며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결승선을 통과한 직후 아세파가 자신의 신발을 들고 감격에 겨워하고 있다./아디다스

그로부터 2주 뒤에는 남자 마라톤에서 세계 신기록이 나왔다. 케냐의 켈빈 키프텀은 2023 시카고 마라톤 남자부에서 2시간 35초를 기록하며 엘리우드 킵초게가 가지고 있던 세계 신기록을 34초 앞당겼다. 마라톤에서 ‘꿈의 기록’으로 불리는 2시간을 불과 35초 앞두게 됐다. 결승선을 통과한 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번쩍 치켜든 키프텀의 발에는 나이키의 알파플라이3 시제품이 있었다.

불과 한 달 사이 남녀 마라톤 세계 기록이 모두 깨졌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아세파나 키프텀이 아니라 아디다스와 나이키에게 쏟아졌다. BBC를 비롯한 여러 외신은 마라톤 세계 기록 갱신 소식을 전하며 ‘슈퍼슈즈’ 전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고 분석했다.

BBC는 “세계 기록이 서브 2(2시간 이내에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것)에 가까워지면서 선수의 지구력 만큼이나 기술력의 싸움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고, 런닝 전문지인 러너스월드는 2024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서브 2′를 향한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기술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봤다.

◇‘서브 2′ 현실로 만드는 슈퍼슈즈 경쟁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슈퍼슈즈 경쟁은 2016년 시작됐다. 나이키는 2016년 베이퍼플라이 시리즈를 처음 출시하며 마라톤의 경쟁 구도를 바꿨다.

나이키가 주목한 건 운동화의 중창(신발의 밑창과 깔창 사이 부분)이었다. 나이키는 중창에 탄소섬유판을 넣어 마치 스프링과 같은 효과를 줬다. 운동화가 바닥에 착지한 뒤에 내딛는 힘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중창 두께도 기존에 31㎜에서 36㎜로 높여서 추진력을 85%까지 끌어올렸다. 기존 운동화의 추진력은 60% 수준이었다.

스포츠 과학자인 로스 터커는 “탄소섬유판을 넣은 신발을 신은 선수는 평지보다 1~1.5% 정도 경사의 내리막길을 뛰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나이키의 슈퍼슈즈를 향한 집념은 2019년 빛을 봤다. 2019년 10월 12일 오스트리아 빈의 놀이공원인 프라터에서 열린 ‘이네오스 1:59 챌린지’에서 킵초게는 마라톤 풀코스를 1시간59분40.2초에 완주했다. 꿈의 기록인 ‘서브 2′에 처음으로 성공한 것이다. 공식 대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기록은 정식 기록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인간의 힘으로 ‘서브 2′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운동화는 바닥창인 아웃솔(outsole), 중창인 미드솔(midsole), 깔창이라 부르는 인솔(insole)로 구성돼 있다. 그림의 붉은색이 중창으로 나이키나 아디다스는 여기에 탄소섬유판을 넣어 운동화의 성능을 향상하고 있다./나이키

이 때 킵초게가 신은 신발이 나이키가 특별 제작한 줌엑스 베이퍼플라이였다. 이 신발은 중창에 탄소섬유판을 4장을 넣었다. 이후 세계육상연맹은 공식 대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운동화에는 탄소섬유판을 1장만 허용하고, 밑창 두께도 40㎜가 넘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또 슈퍼슈즈는 내구성을 포기하는 대신 무게를 최대한 줄이고, 발 앞부분과 발뒤꿈치 부분의 높이 차이인 오프셋을 줄여서 발 앞쪽에 실리는 부하를 낮췄다. 아세파가 세계 기록을 세울 때 신은 아디다스의 ‘아디제로 아디오스 에보 프로 1′은 무게가 138g에 불과하다. 일반적인 운동화보다 40% 정도 가볍다.

◇슈퍼슈즈 신으면 운동 수행 능력 3% 정도 올라가

이런 슈퍼슈즈는 마라톤 기록 단축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미국 오스틴주립대의 연구진은 작년 2월 탄소섬유판이 들어간 운동화들이 운동수행능력 향상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비교한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나이키 알파플라이 넥스트%, 베이퍼플라이 넥스트% 2를 포함해 7개의 탄소섬유판 운동화와 일반 운동화 1개까지 총 8개의 운동화가 연구 대상이었다.

연구진은 12명의 실험 참가자에게 이들 운동화를 신고 시속 16㎞의 속도로 달리게 했다. 그 결과 가장 효율이 좋은 운동화는 나이키의 알파플라이 넥스트%로 일반 운동화와 비교해 3.03%의 효율 향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초에 나온 다른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스페인 카스티야라만차대학 스포츠트레이닝랩 연구팀은 나이키의 슈퍼슈즈인 ‘나이키 줌엑스 베이퍼플라이 넥스트% 2′가 어떤 효능이 있는지 연구를 진행했다. 12명의 참가자가 7일 간격으로 두 번의 장시간 러닝 훈련을 하게 한 뒤에 운동화에 따른 달리기 효율과 피로도를 측정한 것이다. 그 결과 슈퍼슈즈를 신었을 때 운동 수행 능력이 2.4% 정도 향상되는 것으로 측정됐다.

연구팀은 “탄소섬유판이 들어간 운동화를 이용하면 러너가 느끼는 근육통과 피로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며 “장시간에 걸친 고강도 달리기에 유리하다”고 평가했다.

미국 오스틴주립대의 연구진은 작년 2월 탄소섬유판이 들어간 운동화들이 운동수행능력 향상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비교한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그 결과 일반 운동화에 비해 최고 3% 정도 운동 수행 능력을 향상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오스틴주립대

운동 수행 능력이 2.5~3% 정도의 향상하는 것만도 2시간에 걸쳐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마라톤 선수들에게는 큰 차이를 만든다. 단순 비교는 쉽지 않지만 이봉주 선수가 2000년 도쿄 국제마라톤 대회에서 슈퍼슈즈를 신었다면 2시간 7분 20초의 한국 신기록이 2시간 3분대로 당길 수도 있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슈퍼슈즈에 관심이 쏠리지만 선수들의 개인적인 노력을 폄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세계 기록을 세운 키프텀은 매주 250~280㎞를 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대 스포츠연구소의 토마스 앨런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신발이 도움이 되지만 아주 작은 개선일 뿐”이라며 “선수들은 신발 외에도 훈련 기술과 영양 상태 등 다양한 도움을 받으면 기량을 향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육상연맹도 슈퍼슈즈는 마라톤 기록 경신의 한 부분일 뿐이라며 기술의 진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인정했다. 세계육상연맹은 “마라톤 세계 기록은 시대에 따라 함께 진화하고 있다”며 “신발 외에도 코칭 기술과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더 많은 대회, 정교한 코스, 페이스 메이커, 영양 상태 관리 등이 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참고자료

European Journal of Sport Science(2023), DOI : https://doi.org/10.1080/17461391.2023.2171907

Footwear Science(2022), DOI : https://doi.org/10.1080/19424280.2022.2038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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