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에 보치아 입문해 국가대표 “늦었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

이천/박강현 기자 2023. 10. 2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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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희, 항저우 장애인亞경기대회 출전
대표선수 중 유일한 비뇌성마비

보치아(Boccia)는 장애인 선수들이 가로 6m, 세로 12.5m 경기장에서 한 팀은 적색구, 다른 팀은 청색구를 던져 흰색 표적구에 더 가까이 붙인 공을 점수로 계산해 승패를 가리는 경기다. ‘땅 위의 컬링’이라고도 불린다.

뇌 병변·중증 장애인 선수들이 참가하는데 장애 등급에 따라 BC1~BC4로 나뉜다. BC3은 혼자 공을 처리할 수 없는 사지 마비 선수로, 이들 투구를 도울 ‘보조 선수’가 필요하다. 공의 방향과 속도 등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주는 비(非)장애인 보조 선수와의 호흡과 협업이 중요하다. 팔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포인터기 같은 도구로 보조 선수에게 원하는 방향과 속도를 알려주면 대신 공을 굴려준다.

오는 22일부터 28일까지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2022 항저우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APG) 보치아 종목에 나서는 ‘불혹 신인’ 강선희(46·광주장애인보치아연맹·장애 등급 BC3)는 첫 출전이지만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본다. 최근 이천선수촌에서 만난 그는 “국가대표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타이틀이 아니다. 내가 국가대표라고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라고 말했다.

보치아 강선희가 최근 경기 이천선수촌에서 연습 직전에 자세를 취했다. 그는 "국가대표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타이틀이 아니다. 내가 국가대표라고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벅찬다"라고 말했다. /장련성 기자

그는 2017년 우연한 계기로 보치아에 입문했다. 2000년 12월 교통사고를 당한 뒤 사회복지사를 준비하다가 2016년 장애인 체육 현장 실습으로 간 곳에서 보치아를 접하고 ‘이거다’ 싶은 생각에 시작했다. “너무 늦진 않았을까”라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인생에서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일념으로 보치아에 매진했다. 원래 탁구도 즐겨 했어서 타고난 운동 신경이 있다는 것은 알았다. ‘한다면 한다’가 그의 좌우명이었다.

2017년 3월부터 본격 훈련에 돌입했고, 1달 만에 참가한 한 국내 보치아 대회(해남)에서 전체 43명 가운데 16강에 들며 재능을 보였다. 기량을 키워 2019년에 이미 국내 정상을 찍기 시작했다. 당시 국가대표들과 훈련하면서 많이 배우고 자극 받았다고 한다. “이때 시점을 계기로 실력이 갑자기 올랐다”고 돌아봤다.

물론 시련도 있었다. 2020년 코로나가 전 세계를 휩쓸며 각종 경기들이 취소되고 연기되면서 그동안 쌓은 랭킹 점수들이 없어졌다. 실전 감각을 제대로 못 쌓아 기량이 후퇴해 결국 도쿄 패럴림픽행도 좌절됐다.

보치아 종목의 강선희가 이천선수촌에서 선전을 다짐하고 있는 모습. /대한장애인체육회

하지만 강선희는 흔들리지 않고 심기일전했다. 2022년 보치아 국가 대표 선발전에 출전해 당당히 BC3 개인전 1위를 차지하며 첫 태극 마크를 거머쥐었고, 현재 세계 8위까지 올랐다. 그는 현재 보치아 국가 대표 중 최초이자 유일한 비(非)뇌성마비 선수다. 임광택(48) 보치아 감독은 “보치아는 그동안 사실 뇌성마비 전문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했다”며 “그런데 이제 BC3 등급에선 뇌성 및 비뇌성마비 선수도 참가할 수 있도록 종목이 확대됐다. 강선희가 그 시발점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강선희 선수로 인해 BC3 (비뇌성마비) 선수들이 더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강선희는 상당한 상징성이 있는 선수”라고 덧붙였다.

최근 경기 이천선수촌에서 만난 보치아 종목의 강선희(왼쪽) 선수가 본지와의 인터뷰를 갖고 있다. 박세열 경기 보조선수가 훈련을 돕고 있다. /장련성 기자

7년째 보조 선수로 함께하는 박세열(28·광주장애인보치아연맹)은 “최선을 다해 누나를 도와 금메달을 합작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원래 헬스 트레이너로 활동했던 박세열은 2017년부터 강선희의 ‘그림자’가 돼 함께 호흡을 맞췄다. 중간에 군대도 다녀와 병역의 의무를 수행했다. 그 전까진 강선희의 비장애인 남편이 보조 선수 역할을 했지만, 남편이 건강 상의 이유로 하지 못하게 됐다. 강선희는 박세열을 “나의 분신”이라 말한다.

한국 보치아 대표팀은 지난 1988년 서울 패럴림픽부터 2020 도쿄 패럴림픽까지 9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강선희도 보치아 강국 명성을 이을 준비가 됐다. 그는 본인의 강점으로 “거리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것”을 지목했다. 인터뷰 말미엔 “큰 무대에서의 경험은 적지만, 열심히 준비해 반드시 금메달을 따 한국의 종합 순위 상승에 기여하겠다”며 눈을 반짝였다.

최근 경기 이천선수촌에서 만난 보치아 종목의 강선희(왼쪽) 선수가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박세열 경기 보조선수가 돕고 있다. /장련성 기자

이번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는 척수 장애, 시각 장애, 뇌 병변 장애 등을 가진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열린다. 22종목 616개 메달 이벤트가 펼쳐지며 45국에서 선수 3800여 명이 참가한다. 우리나라는 총 345명(선수 208명·임원 137명)으로 구성된 선수단을 파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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