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뀔 때마다 역할극 반복…인사청문회, 돌파구 찾아라
김대중·노무현 정부 도입·확대, 투기·병역기피 등 ‘도덕적 허들’ 마련
낙마·‘국회 패싱’ 늘자 여당 “도덕성·정책 분리” vs 야당 “처벌 강화”
정권 바뀌면 입장도 바꿔…“법무부에 사전검증부터 철저히 해야”
“결과적으로 어쨌든 말을 바꾼 것, 그 점에 대해서는 저는 국민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2000년 6월26일, 이한동 국무총리 후보자)
5·6공화국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뒤 한나라당을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으로 당적을 옮기고, 평소 비난해온 김대중 정부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것을 두고 여야 의원의 ‘정체성 추궁’이 이어지자 이한동 국무총리 후보자는 고개를 숙였다. 부동산 투기 의혹엔 더 진땀을 흘렸다.
“농민이 아닌 입장에서 1200평에 해당하는 그 많은 농지를 어떻게 구입하십니까?”(이병석 한나라당 의원)
“하여간 참 엄청나시네요. 그런 걸 다 찾아내셨네.”(이 후보자)
“부인도 땅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설훈 새천년민주당 의원)
“위장전입 아닙니까?”(안상수 한나라당 의원)
여야의 집요한 추궁에 결국 잘못을 인정했다. “위장전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이 후보자)
헌정사상 처음 열린 인사청문회 열기는 뜨거웠다. 경기도 포천과 의정부를 잇는 도로에 전두환 공덕비 설치, 1986년 ‘통일은 국시’ 발언을 한 유성환 의원 체포동의안 단독 처리 주도,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 비난, 게다가 땅 투기 의혹까지 여야 가리지 않고 송곳 질문을 쏟아냈다.
총리부터 시작해 모든 국무위원 확대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한 김대중 대통령과 여당이 된 새정치국민회의(민주당 전신)는 “대선 공약인 인사청문회 도입 약속을 지키라”는 한나라당의 요구에 골머리를 앓았다. 지루한 협상 끝에 15대 국회(1996~2000년) 임기 종료가 임박한 2000년 2월 국회법에 국무총리, 대법원장 및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등의 자격을 심사하는 인사청문위원회 설치 근거를 마련했다. 이어 16대 국회(2000~2004년) 시작과 함께 구체적 청문 방법을 규정한 인사청문회법을 제정했다.
헌정사상 처음 피청문인으로 동료 의원 앞에서 곤욕을 치른 이한동 총리 후보자는 아슬아슬하게 국회 인준 표결을 통과(찬성 139표, 반대 130표)했다. 여야를 넘나들며 6선을 한 이력이 큰 도움이 됐다. 이후 인사청문회는 위력을 발휘했다. 2002년 7월 김대중 대통령이 지명한 장상 총리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부동산 투기와 자녀 이중국적 문제가 불거져 인준 표결을 통과하지 못했다. 장대환 총리 후보자가 새로 지명됐지만 그 역시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논란으로 국회 인준을 받지 못했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과 여당에는 부담스러운 절차였다. 하지만 2002년 12월 대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대통령은 청문 대상 확대에 발 벗고 나섰다. 2003년 2월엔 4대 권력기관장(국가정보원장·검찰총장·경찰청장·국세청장)을 인사청문 대상에 포함하는 청문회법 개정안에 동의했다. 야당의 요구도 거셌지만 검찰과 정보기관을 개혁해 정치 개입을 근절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소신도 영향을 미쳤다.
2004년 4월 총선(17대)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압승한 뒤 노 대통령은 이듬해인 2005년 7월 인사청문회를 국무위원 전원으로 확대했다. 당시 청와대 정무비서관, 기획조정비서관 등을 지낸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 대통령은 대통령 마음대로 임명하던 장관을 여야의 검증 테이블에 올려 인사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생각과 함께, 참여정부 장관에 나설 정도 인물이라면 언론과 야당의 공세에 당당히 맞서 소신과 철학을 밝히고 도덕성과 능력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노 대통령은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2006년 2월7일, 첫 국무위원 인사청문회장. 야당은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언행을 문제 삼고, ‘코드 인사’라며 인사청문경과보고서(이하 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했다. 국회 동의 대상이 아닌 장관은 국회가 여야 이견으로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아도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다. 노 대통령도 ‘정략적 트집 잡기’라며 유 장관을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했다. 청문회를 무력화한다는 비난이 거셌지만 이후 이재정(통일부)·송민순(외교부) 장관까지 3명을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틀을 갖춘 인사청문회는 고위공직 후보자에게 새로운 ‘도덕적 허들’로 자리 잡았다. 신상털기, 망신주기 청문회라는 비판에도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논문 표절, 병역기피, 자녀 이중국적 등 흠결 있는 이를 걸러내는 순기능을 했다. 2000년 6월 이후 23년 동안 인사청문 대상 고위공직 후보자 가운데 37명이 도덕적 흠결이나 ‘코드 인사 논란’으로 사퇴했다.
청문회 역사 새로 쓴 ‘김행랑’
“저도 지금 딸한테 설득하고 있는데 딸이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2023년 10월5일, 김행 후보자)
“따님이 (위키트리 주식) 7천주 갖고 계세요. 7천주면 10만원씩만 따져도 7억입니다. 세금 내역 안 내셨잖아요.”(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
“재산 은닉 없습니다. 호도하지 마십시오. 저희 딸은 지금 재산 공개 대상도 아닙니다.”(김행 후보자)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주식파킹·주가조작 의혹 등에 대해 목청을 높이고 “자신 있으면 고발하라”며 맞섰다. 권인숙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이 그의 답변 태도를 지적했다. “그런 태도를 유지하시면, 도저히 이걸 감당 못 하겠으면 본인이 사퇴하시든가요. 자료 제출 안 하고 범법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증명을 못 하면서 고발하라든가 이런 식으로 얘기하시면 안 됩니다.” 발끈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권 위원장에게 “중립을 지키라”고 외치며 청문회장을 박차고 나갔다. 김 후보자도 청문회장을 이탈했고,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인사청문회 시행 2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신현영 민주당 의원 등 35명은 지난 10일 ‘인사청문회에 공직 후보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하거나 중도이탈한 경우 사퇴로 간주한다’는 내용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른바 ‘김행 줄행랑 방지법’으로 이름 붙인 이 법안은 21대 국회 들어 41번째 국회에 제출된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이다.
‘김행 이탈’과 함께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신원식 국방부 장관 등을 잇달아 임명하면서 청문회 제도는 논란에 휩싸였다. 취임 1년5개월 만에 18명의 공직 후보자를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하면서, 국회 인사청문회를 요식 절차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10월10일치 사설(‘야당은 무조건 “반대” 여당은 “강행” 이런 인사청문회 그냥 둘 건가’)에서 “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비난했지만 문재인 정부 때 국회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된 장관급도 34명에 달한다”며 “장관 청문회의 법적 구속력을 강화해 국회가 반대한 후보는 대통령이 임명할 수 없게 하거나, 반대로 이미 형해화한 장관 청문회를 아예 폐지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익숙한 풍경이다. 23살이 된 인사청문회의 한계가 지적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인사청문회를 전후해 10명의 낙마자가 나온 박근혜 정부, 8명이 낙마한 문재인 정부에선 대통령까지 나서서 ‘신상털기와 망신주기식 인사청문회 때문에 유능한 인재를 구할 수 없다’며 여야에 개선책 마련을 요구하기도 했다.
박근혜·문재인 ‘비공개 도덕성 청문’ 요구
“종합적인 자질보다는 신상털기식, 여론재판식 비판이 반복돼서 많은 분들이 고사를 하거나 가족들의 반대로 무산이 되었습니다.” 2014년 6월30일, 박근혜 대통령은 사의를 밝힌 정홍원 총리 후임으로 지명한 안대희(고액 수임 전관예우 논란), 문창극(역사관 논란) 후보자가 잇따라 낙마하자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청문회 제도 개선을 주문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2020년 10월28일 박병석 국회의장과 환담하면서 “공직 후보자 지명을 타진하면 대다수가 망신주기 청문회 때문에 거부한다. 개선책을 모색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조각 과정에서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불법 혼인신고 사건 등으로 청문회도 못 하고 사퇴했다. 이어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이유정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각종 논란이 불거지면서 잇따라 낙마했다. 홍역을 치른 문 대통령은 이후엔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장관 임명을 강행한다. 5년 재임 동안 34명을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박근혜·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여야가 제시한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의 핵심축은 두 가지다. 청문회 실효성 강화(자료 제출 강제, 청문 기간 연장, 허위사실 증언과 허위자료 제출 처벌 등)와 망신주기식 청문회 개선(도덕성은 비공개 검증, 정책·능력은 공개 검증으로 분리)이다. 그러나 여당일 땐 망신주기식 청문회 개선을 요구하고, 야당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실효성 강화에 무게를 둔 법안을 발의하는 행태를 반복하면서 실질적인 제도 개선은 없었다.
대통령까지 나서면, 여야는 잠시 개선책 마련에 힘을 쏟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개선 요청 뒤 여당인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은 당에 ‘인사청문제도 개혁 티에프(TF)’를 만들고, 2014년 12월29일 개선안을 내놨다. 인사청문위원회에 도덕성 심사소위를 두고 회의는 비공개로 하며, 검증 과정에서 알게 된 사항이나 자료 공개를 금지하는 게 핵심이다. 인사청문 과정에서 부적절한 언행을 하는 의원을 징계하는 규정도 함께 제안했다. 야당은 전혀 호응하지 않았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은 청문회에서 부동산 투기, 병역기피 의혹이 불거진 이완구 총리 후보자 지명에 대한 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청문 결과 여론조사’ 방안까지 제시했다.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2015년 2월13일,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만약 우리 (이완구 후보자 사퇴) 주장을 야당의 정치 공세로 여긴다면 중립적이고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 기관에 여야 공동으로 여론조사를 의뢰하자”고 제안해 야야 간 격론이 일었다.
정권이 바뀌고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청문회 개선 요구 뒤인 2020년 11월16일엔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만나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 티에프’를 구성했다. 여야는 공직 후보자 추천 때 사전 검증 강화를 전제로 청와대 검증 자료를 여야가 공유·열람하고, 비공개로 도덕성 검증 청문회를 먼저 연 뒤 능력과 자질을 따지는 청문회만 공개하는 방식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박근혜·문재인 두 대통령의 고민이 담긴 입법이 현실화하는 듯했지만 딱 거기서 멈췄다.
당시 논의에 참여했던 주호영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여야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개선책을 찾지 못했다고 전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비공개 도덕성 청문회와 정책·능력 검증 공개 청문회로 분리하기 위한 전제는 국정원·국세청 등 국가기관의 신뢰다. 국세청에서 검증해 ‘탈세 문제가 없다’고 클리어하면 그걸 믿어야 하는데, 믿을 수 없었다. 대통령이 후보자를 추천했는데 우리 국가기관이 ‘문제 있다’는 보고서를 (국회에) 써내겠느냐는 의심이 있었다. 또 후보자가 낸 자료, 청와대 등이 검증한 자료를 청문위원에게 다 가져와야 한다. 그런데 본인 동의가 없다면 못 준다는데 어떻게 하겠나?” 여야의 위치가 바뀐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서로를 의심했고 결국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 티에프’는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개정안 197건 중 의미 있는 단 2건
여야가 바뀌면서 의원들의 입법 강조점도 바뀐다. 문재인 정부 시절 자유한국당은 여당(새누리당) 시절 박근혜 대통령이 요구했던 도덕성 검증과 능력·정책 검증 분리 방안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2019년 4월 정용기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은 ‘인사청문 기한 연장, 공직 후보자 허위진술 방지를 위한 선서·벌칙 규정 신설’ 등을 내용으로 한 개정안을 소속 의원 45명 명의로 대표 발의했다.
반면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과 범여권은 도덕성 검증과 자질 검증을 분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민주당 출신 문희상 국회의장과 김진표 의원 등은 20대 국회가 끝날 무렵인 2020년 3월 ‘공직윤리청문회(원칙 비공개)와 공직역량청문회(공개)로 분리하고, 인사청문회를 마친 뒤 3일 이내 보고서 채택 표결을 의무화’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 요구가 드셌던 20대 국회에선 여야가 이런 식으로 무려 57건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인사청문회법은 단 1건이었다. “국민의 올바른 언어생활 본보기를 위해 일본식 법률 용어인 ‘당해’를 우리말인 ‘해당’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개정안(박광온 외 10인 발의)이었다.
여야가 마치 역할극을 하듯, 위치가 바뀔 때마다 서로 다른 쪽에 강조점을 둔 법안 발의를 남발하면서 인사청문회법의 근본적 손질이 계속 미뤄졌다. 2000년 6월23일 인사청문회법 제정 이후 지금까지 23년 동안 여야는 197건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국회에 냈지만 입법이 이뤄진 것은 단 8건에 그쳤다. 그나마 노무현 대통령이 4대 권력기관장, 모든 국무위원(장관)으로 확대한 2건이 의미 있는 변화다. 나머지 6건은 실효성 강화나 망신주기식 청문회 개선 등 본질적 대책이 아니라 정부조직법, 국회법 개정 등에 따른 청문 대상을 늘린 정도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4주년 기자회견(2021년 5월10일)에서 이렇게 호소했다.
“저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고, 이제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인사를 할 기회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저는 이대로 해도 괜찮은데, 적어도 다음 정부는 누가 정권을 맡든 더 유능한 사람을 발탁할 수 있게끔 그런 청문회가 꼭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누이 말씀드렸다시피 도덕성 검증 부분은 비공개 청문회로 하고, 그다음 공개된 청문회는 정책과 능력을 따지는 청문회가 돼서 두개를 함께 저울질할 수 있는 청문회로 개선되어나가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대통령 임기 말에 이런 요구가 실현되기는 어려웠다. 2022년 3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정치권의 의미 있는 논의는 없다. 윤 대통령 당선 뒤 민주당과 친야 무소속 의원들이 위증 처벌, 자료 제출 강제 등 실효성 강화에 무게를 둔 법안을 제출한다. 전해철 민주당 의원이 올해 6월27일 ‘공직윤리청문회, 공직역량청문회로 구분하되 후보자가 선서 전 공개·비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내용의 법안을 낸 게 민주당이 여당 때 강조한 기조를 이어간 유일한 개정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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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격 후보자 보내니 정쟁이…
언제까지 여야가 입장을 바꿔가며 소모적 논쟁을 반복할지 알 수 없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솔직히 여야 모두 진정한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엔 관심이 없다. 말로만 개정해야 한다고 외칠 뿐 실제 그럴 의지가 전혀 없다”고 했다. 여야가 절충점을 찾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처럼 방치해선 안 된다는 데는 공감한다. 주호영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여야 어느 쪽도 절박함이 없지만 지금처럼 인사청문회가 형해화하는 걸 방치해선 안 된다”며 “일단 인사청문회 제도의 운용,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김행 후보자처럼 자식이 동의하지 않아 자료 못 준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후보자 본인이 검증 때 제출한 자료, 대통령실 등이 수집한 검증 자료는 본인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청문위원회가 요청하면 무조건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윤석열 정부를 거치면서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른 건 국회 청문보고서 없는 임명, 이른바 ‘국회 패싱’이다. 일각에선 국무위원 국회 동의제로 강제하자고 하지만, 당장은 현실성이 낮다. 윤후덕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의 장관 임명권에 실질적 제약을 가하는 것인데 위헌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윤태곤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 실장은 “일단 검증을 강화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법무부 인사관리단의 검증 실패 때문에 곤란해지자 대통령실로 책임을 떠넘기는데, 권한을 준 만큼 검증 실패에 대한 책임도 엄정하게 물어야 한다”고 했다. 앞서 2013년 외부 전문가로 구성한 국회 정치쇄신자문위원회도 “여야 힘겨루기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은, 공직 후보자에 대한 사전 검증이 엄밀하게 이뤄지지 못한 채 인사청문 요구안이 국회에 제출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 스스로 엄밀한 자질 검증을 거쳐 국회에 인사청문 요구서를 보내면 정략적 청문회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헌법을 개정해 ‘국무위원 등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 공직자 국회 임명동의제’로 가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전해철 민주당 의원은 “국회 국민통합위원회에선 이미 국회가 총리를 복수 추천하고, 장관 인준을 국회 동의제로 바꾸는 안을 제시했다. 원내 다수당이 내각 구성에 실제 권한을 가질 때 장관 국회 동의제 도입은 훨씬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했다. 21대 국회 상반기에 박병석 국회의장 직속으로 활동한 국회 국민통합위원회(김형오·임채정 공동위원장 등 25명의 보수·진보 진영 정치인·학자·언론인 참여)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분산하고 정치 사회적 갈등을 완화해 타협의 정치를 만들기 위해 ‘총리 국회 복수 추천제와 장관 임명 국회 동의제 도입’을 제안한 바 있다. 4년 중임 대통령제 개헌과 함께 국회가 국무총리 후보 2인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그중 1인을 임명하되 국무위원 모두에게 국회 임명동의제를 도입하는 방안이다. 23살 청문회, 제도 개선은 논쟁보다 ‘실천할 결심’이 필요하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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