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국립대 의대생 100%·사립대 80% 지역 인재로 뽑아야"

신성식 2023. 10. 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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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전문가 7명의 긴급 제언
한덕수 국무총리(오른쪽)는 20일 지역의료 혁신 이행을 위한 관계장관회의에서 “지금 증원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 더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지역·필수 의료 살리기에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 회의에서 “지역 의료를 살리고 초고령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의료 인력 확충과 인재 양성은 필수”라고 큰 그림을 내놨다. 이어 20일에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범정부 차원에서 지방 국립대병원을 키워 지역 의료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기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환자가 지역에서 치료를 끝내게 하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국립대병원을 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대·신촌세브란스·서울성모병원 같은 소위 ‘빅5’ 급으로 키우고, 인력과 예산을 지원한다는 게 골자다.

중앙일보는 보건의료 전문가 7명에게 긴급 평가를 의뢰했다. 이들은 “방향을 잘 잡았다”고 호평했다. 다만 빅5 급 육성이 말잔치로 끝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깨알같은 주문을 쏟았다. 김윤 서울대 의대(의료관리학) 교수, 박은철 연세대 의대(예방의학) 교수, 신영석 고려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 윤석준 고려대 보건대학원장(의료관리학), 윤태호 부산대 의대(예방의학) 교수,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조희숙 강원대 의대(의료관리학) 교수(가나다 순)에게 물었다.

◆의대 정원 확대=대부분 동의했다. 조희숙 교수는 “진작 했어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박은철 교수는 이번 대책에서 빠진 점을 지적했다. 그는 “한의대와 의대를 동시에 둔 5개 대학이 한의대 정원을 의대로 옮기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준 교수는 “안 할(확대하지 않을) 방도가 없다. (이번에 숫자를 내지 않은 게) 설득하는 모양새를 갖추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윤 교수는 지역 의사 확충 단기 대책으로 “한시적으로 지방 국립대의대 정원의 100%, 사립대의대의 80%를 지역인재 전형으로 선발하자. 졸업생의 절반은 지역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40%(강원·제주 20%) 이상을 뽑게 돼 있다. 윤 교수는 “의대 신설 주장이 나오는데, 비용 대비 효과를 따져야 한다”며 부정적으로 봤다. 정형선 교수는 “지역 의사 확대는 웬만한 대책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지역 인재 전형을 확대하거나 일본식 자치의대(지역 의사 양성 의대)를 시행하면 일부라도 지역에 의사가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형선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정원 확대 의지를 갖고 끌고 가는 것 같다. 증원한다면 가치가 크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1000명 이상 늘리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지방 국립대병원 지원=윤태호 교수는 “국립대병원의 진료 역량이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 국립대만 올라가서는 안 되고, 그 지역의 병원과 같이 향상돼야 한다. 국립대만 독식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면 협력할 리가 없다. 국립대가 공공적 역할, 중심적 역할을 하되 2차 종합병원도 같이 좋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국립대병원이 지역 의료를 움직일 수 있게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며 광역 시·도 역할을 강조했다.

김윤 교수도 “이번 대책에 시·도의 역할이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현재 국립대와 사립병원이 경쟁 관계인데, 갑자기 ‘국립대 중심으로 모여라’고 한들 모이겠느냐. 시·도가 지역필수의료협의체를 만들어서 한데로 모으되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을 늘리고 교수를 늘리면 전공의도 늘어나게 되는데, 이런 인적 자원을 국립대만이 아니라 지역 전체가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협의체에서 의대생 실습, 전공의 파견, 교수 채용 등의 인력 운용을 결정하자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의료기관 간의 무한경쟁·각자도생의 틀을 깨고 국립대병원의 리더십을 갖추게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수도권이 더 빨아들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은철 교수도 “광역 시·도가 좀 더 일해야 한다. 부산이라면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아는 부산시가 필수의료 구멍을 감시하고,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희숙 교수는 “국립대병원에 얼마나 힘을 실어주고 예산을 줄지에 성패가 달렸다”며 “빅5 수준으로 키우려면 예산을 풀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그는 “국립대병원을 키운다는데, 행정력을 주는 게 아니지 않으냐. 민간병원을 아우르라고 하는데 권한과 수단이 없다”고 우려했다.

◆대통령이 나섰으니 이번엔 다를까=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17개 국립대병원의 관할 부처를 교육부에서 복지부로 바꾸기로 했다. 10년 넘게 추진해왔지만 실패한 일이다. 정형선 교수는 “그동안 교육부가 동의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대통령이 나섰으니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며 “복지부가 국립대병원 중심으로 지역의료체계를 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신영석 교수는 “이번에 지방의료원과 시·군·구 보건소도 복지부 관할로 옮겼어야 지역완결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데,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신영석 교수는 수가 조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신 교수는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들이 개업이 가능한 통증 분야로 몰리고 소아 중증환자를 수술할 의사가 부족한데도 피부과 등은 개업 러시가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개업 후 비급여 진료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인데, 진료 수가를 조정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신 교수는 “일반의사(비전문의)와 전문의의 건강보험 진료 수가에 차이가 없다. 의대만 나와서 바로 개원해도 문제가 안 된다. 수가를 달리하거나, 개업 유인 동기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피부과·성형외과 세율 체계를 개편해 수입을 낮추고, 24시간 중증환자를 대기하는 의사의 기회비용 보상을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은철 교수는 “국립대만, 공공의료만 살리려 하느냐”고 말한다. 그는 “전국에 상급종합병원이 45곳(국립대병원 포함)이다. 국립대병원은 분원 빼면 10여곳이다. 민간의 자원이 훨씬 많다. 똘똘한 민간병원이 중심이 되면 왜 안 되나. 가령 부산의 경우 부산대·동아대·인제대·고신대 등이 경쟁해서 중심 역할을 맡게 할 수도 있지 않나”고 반문한다. 박 교수는 “공공이든 민간이든 따지지 말고 지원해야 한다. 안동병원·제주대병원 같은 데는 지역 중심 역할을 하면 가산점을 줘서 상급종합병원 지정에 유리하게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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