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달달하게 책 읽기] 1929년 프랑스 청춘의 계약 결혼으로 본 동거
변광배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 결혼’(살림출판사)은 우리나라의 동거에 대해 연구를 시작하면서, 동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려다가 문득 보부아르 생각이 나서 읽은 책이다.
프랑스의 동거는 68혁명과 함께 새로운 단계로 들어갔고, 세골렌 루아얄과 프랑수아 올랑드는 1세대 동거인이라고 할 수 있다. 루아얄은 대선에서 사르코지에게 졌고, 다음 대선에서 올랑드가 이번에는 사르코지를 꺾고 프랑스 대통령이 되었다. 동거가 문제야? 그런 사람들이 대선 후보도 되고, 대통령도 되었는데? 프랑스도 한국만큼이나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사회였다.
1929년 군에 입대하기 전 사르트르는 보부아르에게 “우리 2년간 계약을 맺읍시다”라고 계약 결혼을 제안했다. 그해 11월에 두 사람의 계약 결혼은 시작되었고,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끝까지 유지되었다. 그들의 계약 조건에는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고,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서로 독립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계약 조건이 모두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이 세 가지는 워낙 유명했다.
1964년 사르트르는 노벨문학상을 거부했다. 생전에는 사르트르가 훨씬 돋보이는 철학자였을지 몰라도, 21세기에는 시몬 보부아르의 사상이 ‘제2의 성’으로 여전히 진행형이다. 변광배는 두 사람이 사상적으로 연결되는 지점과 그것이 계약 결혼으로 드러나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해서 보여준다. 보부아르의 ‘초대받은 여자’와 사르트르의 ‘철들 무렵’을 분석하면서 계약 결혼이 두 사람이 문학과 사상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도 분석했다.
사르트르가 죽고 보부아르는 가족 묘지를 거부하고 몽파르나스의 사르트르 옆에 묻힌다. 그녀의 미국인 애인이 준 반지를 끼고 누웠다고 한다. 낭만적이다. 1929년 두 사람의 계약 결혼은 당시의 한국 사회에도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도 이런 고민을 오랫동안 많이 했지만, 동거가 늘어났다는 어떤 흔적도 찾기는 어렵다. 그 대신 ‘졸혼’이라는 단어만 연관 검색어로 나왔다. 출생률이 줄면, 사회가 기존 제도에 대해서 유연해질 법도 한데,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동거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늘어나기를 바라면서, 두 사람의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럼프, 주이스라엘 대사 허커비 지명... 네타냐후가 웃는다
- ‘골목 벽화’ 논란 창신동, 6400가구로 재개발 다시 추진
- 트럼프 “머스크의 개혁, 정부 관료주의 해체·재구성”
- 한국 증시, 나흘째 ‘트럼프發 패닉셀’... 코앞에 둔 ‘4만전자’
- 엄마 뱃속에서 ‘이것’ 노출된 아이, 어른 돼서도 뇌 손상 겪는다
- 전공의협회가 지지한 박형욱, 의협 새 비대위원장 당선
- 이기흥 체육회장 “3선 도전 결정 유보... 비위 혐의 동의 못해”
- 신곡 낸 이문세 “박수 쳐주는 관객 한 명만 있어도... 은퇴는 없다”
- 길거리에서 딸 남자친구 흉기로 찌른 30대 여성 집유
- 국정원 “러 파병 북한군, 이미 전투 참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