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렵·채취만으로 1년 살아보니… 궁핍 각오했지만 풍요로웠다
야생의 식탁
모 와일드 지음|신소희 옮김|부키|428쪽|1만9800원
아더랜드
토머스 할리데이 지음|김보영 옮김|쌤앤파커스|520쪽|2만2000원
“냄비에 남은 토끼고기를 데운다. 야생 버섯과 댐슨자두의 풍미가 유쾌한 감칠맛을 낸다. 여기에 몬티아, 가지괭이눈, 나도산마늘 싹처럼 오늘 채취한 푸성귀를 곁들인다.”
낯선 야생초의 이름으로 가득한 이 문장은 2020년 12월 18일 저녁식사를 마치고 쓴 것이다. 만약 식량 위기로 마트에서 먹을 것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이런 음식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야생의 식탁’(부키)은 스코틀랜드의 작가이자 야생 식량 채집가인 저자가 그 질문에 답하고자 스스로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던 한 해의 기록이다. 2020년의 블랙 프라이데이 주간.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라는 코로나의 경고에도 할인 판매에 탐닉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좌절한 그는 자연에 한층 밀착한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가장 채집가다운 저항의 방식으로 1년간의 ‘야생식(食)’을 택했다.
◇'단순한 삶’으로 기후 변화 맞서야
실험은 다이어트가 아니다. 사전에 엄격하고 구체적인 조건을 설정했다. 근방에서 채취·사냥·선물·교환으로 구한 음식만 먹을 것, 이웃에서 받았다 해도 돈을 주고 샀거나 상업적으로 생산된 음식은 제외할 것. 조리와 보관에 필요한 전기·연료는 사용했다는 점에서 생존 리얼리티 쇼와도 구별된다.
야생 사과로 음식에 단맛을 내고, 연어가 프라이팬에 달라붙지 않도록 버터 대신 서양톱풀 잎을 까는 생활이 시작된다. 토끼와 사슴 고기도 먹지만 식단에서 가장 큰 부분은 철마다 피어나는 식물들이 차지한다. 턱수염버섯, 기름당귀, 별꽃, 퉁퉁마디…. 야생 식물들이 펼치는 향연은 그 이름이 낯선 도시의 독자들에게도 스코틀랜드의 숲과 들을 누비는 간접 경험을 제공한다. “많은 수렵·채취 공동체가 한 해 100~350종에 이르는 식물을 섭취하지만 오늘날 전 세계 칼로리 섭취량의 50% 이상은 밀·옥수수·쌀이라는 세 종류 곡물에서 나온다. 선택의 폭이 무한해 보여도 수퍼마켓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제한적이다.”
홀린 듯 피시 앤드 칩스 가게로 차를 몰았다가 문이 닫힌 걸 보고 겨우 정신을 차린 날도 있었다. 그런 고비를 넘기고 1년을 마무리할 때 체중 31㎏이 줄었고 옷 치수는 25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자연과 교감하며 정서적으로도 건강해졌다. “생기와 활력이 넘치고, 빈틈없고 민첩하며, 한층 더 영적이면서 동시에 더 현실적인 사람이 됐다. 자연의 치유와 회복 능력을 깊이 깨달으며 겸손해지고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실험 결과 보고서는 이렇게 끝난다. “궁핍과 고난을 각오하고 한 해를 시작했지만 내가 발견한 것은 풍요로움이었다.”
수렵·채집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 이 책의 메시지는 아니다. 1년의 실험은 기후 변화와 자연 파괴의 심각성을 일깨운다. 야생식은 하나의 대응 방식이었을 뿐 중요한 것은 즉각적 실천 그 자체다.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소비를 줄이고 더 단순한 삶을 사는 것이다.”
◇'대멸종’ 시대를 닮아가는 지구
‘야생의 식탁’이 개인 차원에서 자연 친화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했다면 ‘아더랜드’(쌤앤파커스)는 인간이 자연을 계속 지금처럼 대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지구적 차원에서 보여준다. 기후 변화의 파국적 결말이 현실화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기에 영국의 진화생물학자인 저자는 독자들을 아득한 옛날로 데려간다. 자연환경과 생태계의 변화는 “출연진만 다를 뿐 같은 연극”처럼 반복돼왔기 때문에 과거를 보면 미래를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2만 년 전부터 멀게는 5억5000만년 전까지 지질 시대의 풍경을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보듯 복원했다. 예컨대 2억5300만년 전 페름기에 존재한 초대륙 판게아에는 초강력 계절풍의 영향으로 1㎡당 하루 8리터에 달하는 폭우가 내렸다. 계절성이 극심해도 기후는 전반적으로 건조해졌다. 곤충, 거미, 균류와 식물에 이어 척추동물이 내륙에 진출했다. 그러다 화산 폭발로 재와 유독성 금속이 대지를 뒤덮으며 생물의 95%가 멸종하는 장면으로 페름기는 막을 내린다.
페름기 말기와 지금의 지구를 비교하면 “우려스러운 유사점”이 나타난다. 바다가 더워지고 해양 산소가 줄어든다. 온실 가스의 증가 속도는 이미 페름기를 초과했다. 우리의 시대도 파멸로 끝날까. 결말의 열쇠는 인류가 쥐고 있다. 핵심은 위기를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 성공 아니면 실패라는 이분법이 아니다. “첨탑은 무너졌지만 대성당은 아직 서 있다. 우리는 불길을 끌지 말지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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