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RE100 가입' 32개 기업, 940만 서울시보다 전기 많이 썼다
2022년 국내 전체 전력 사용량의 약 10.3%
1위 삼성전자, 2위 SK하이닉스, 3위 삼성디스플레이
2050년까지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쓰자는 글로벌 캠페인 'RE100 이니셔티브'에 가입한 국내 기업들이 2022년 쓴 전력량이 서울시 전체 전력 사용량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전력 사용량 1위인 삼성전자가 국내 사업장을 운영하면서 부산시보다 많은 전력이 들어갔다. 국내 기업들이 반도체 클러스터 등 첨단 시설을 지으며 계획대로 RE100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력량 구축 등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한국일보가 더불어민주당 김경만, 홍정민 의원실을 통해 한국전력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RE100에 가입한 국내 32개 기업은 지난해 56.338테라와트시(TWh) 전력을 썼다. 이는 국내 전체 전력 사용량(547.932TWh)의 10.3% 수준이다. 국내 주요 기업의 연간 전력 사용량이 구체적으로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삼성전자(21.731TWh)가 국내 사업장을 운영하는 데 부산시(21.493TWh)보다 더 많은 전력이 들어갔다. 상위 2~5위 기업이 쓴 양을 합쳐도 삼성전자보다 적다. 주력 분야인 반도체 공장은 24시간 돌려야 하는 데다 첨단 공정일수록 전력이 더 많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2위는 역시 반도체 회사인 SK하이닉스다. 지난해 10.041TWh를 썼는데 이는 대전시 전력 사용량(10.016TWh)보다 많다. 3위는 삼성디스플레이(6.146TWh)로 제주(6.045TWh)보다 더 들어갔다. 4위는 고려아연(2.421TWh), 5위는 현대차(2.204TWh)였다. 통신사인 KT(1.997TWh)와 SK텔레콤(1.769TWh)이 각각 6, 7위를 기록했다. 한국수자원공사(1.743TWh), 삼성SDI(1.213TWh), 기아(1.007TWh)의 연간 전력 사용량도 1TWh를 넘었다. 반면 대규모 데이터센터(IDC) 운영 때문에 전력 사용량이 많을 것으로 예상됐던 네이버와 카카오는 각각 0.176TWh, 0.0036TWh를 쓰는 데 그쳤다.
올해 1~8월까지 쓴 전력량도 삼성전자(15.611TWh), SK하이닉스(5.649TWh), 삼성디스플레이(3.679TWh) 순으로 많았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삼성전자 전력량은 조금 늘어난 반면 SK하이닉스는 10%가량 줄었다. 같은 기간 현대차의 전력 사용량은 5% 늘었다.
첨단공정은 전력량 급증...재생에너지 방안 마련해야
국내 기업들의 전력 사용량 공개는 국내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을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동안 기업들은 지속경영가능보고서 등을 통해 연간 재생에너지 사용량을 알렸지만 국내에서 전력을 얼마나 쓰는지는 밝히지 않아 정확한 RE100 달성률을 알기 어려웠다. 삼성전자는 2022년 미국에서 재생에너지 사용 100%를 달성하고 글로벌 전체 달성률은 31%라고만 했다. 그러나 연간 전력 사용량과 한국에너지공단의 재생에너지 인증 자료를 비교하면 지난해 국내 RE100 달성률은 이보다 낮다.
김경만 의원은 "전력을 많이 쓰는 기업들은 보여주기식 RE100 가입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재생에너지 사용량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영리단체 더 클라이밋그룹은 RE100 가입사에 늦어도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를 쓰되 그 중간 과정으로 2030년 60%, 2040년 9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라고 권고했다. 설사 RE100 가입 기업들의 국내 전력 사용량이 '지난해와 똑같다'고 해도 이를 실천하려면 최소 부산시와 대전시의 전력 사용량을 합친 33.803TWh만큼 재생에너지를 확보해야 한다.
문제는 경기 용인시에 반도체 클러스터 등 첨단 시설이 본격적으로 지어지면 필요한 전력량은 훨씬 늘 것이라는 점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TSMC가 대만 전체 전력 소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6%쯤인데 초미세공정이 가능한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도입으로 2025년이면 두 배 이상인 12.5%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2050년까지 용인 클러스터에 10GW 규모의 발전 시설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수도권 전체 수요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전문가들은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기업에는 인센티브를, 반대로 많이 하는 기업에 페널티를 주는 '당근과 채찍' 정책을 통해 기업들 스스로 재생에너지를 더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장다울 그린피스 전문위원은 "재생에너지 내수 시장 규모를 키우는 가장 좋은 방안은 재생에너지를 많이 쓰는 유럽, 미국에 비해 값싼 산업용 요금, 배출권 거래 가격을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생에너지가 필요한 기업이 좀 더 쉽게 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이근대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이 늘고 있지만 여기서 만든 전력을 필요한 곳까지 전달하는 전력망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며 "최근 봄, 가을에 발전 시설 가동을 멈추는 일이 벌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재생에너지가 필요한 지역에도 발전 시설을 마련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한편 전력송배전망도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나주예 기자 juy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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