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40년만의 습격’… 외국인 머문 곳서 출몰하는 이유
20일 오전 대구광역시 달서구 계명대 기숙사. 방역 업체 직원들이 침대 매트리스를 들어 올리고 소독약을 뿌렸다. ‘빈대’가 발견된 이 기숙사에선 19일부터 긴급 방역을 벌이고 있다. 빈대가 나온 침대는 영국 국적 학생이 쓴 것으로 조사됐다. 외국인이 자주 찾는다는 인천 서구의 한 찜질방에서도 최근 매트에서 빈대가 발견돼 임시 휴업 후 방역 작업을 벌이고 있다.
‘후진국 해충’이라는 빈대가 난데없이 다시 출몰했다. 과거 우리나라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빈대가 흔했다. 그러나 1960년대 새마을운동과 1970년대 DDT 등 살충제 방역이 일반화하면서 1980년대 들어 토종 빈대는 사실상 종적을 감췄다. 그런데 2006년 무렵부터 ‘빈대가 나타났다’는 신고가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빈대가 나온 장소 대부분은 ‘외국인이 머문 곳’이란 공통점이 있다. 최근 대구와 인천에 등장한 빈대도 ‘외국인과 관련 있을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빈대의 역사는 인류보다 길다. 2019년 10국 연구 기관이 전 세계 빈대의 DNA를 분석한 결과, 빈대 출현은 중생대 공룡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학술지에 발표했다. 빈대에 물린 첫 동물은 공룡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인류가 등장하면서 인간의 피도 빨기 시작했다. 박쥐에 기생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지구상에는 총 75종(種)의 빈대가 존재한다. 이 중 사람의 피를 빨아 먹어 피해를 주는 종은 국내에 서식했던 ‘시멕스 렉툴라리우스(Cimex lectularius)’다. 다만 종 분석만으로는 국내 발생인지, 해외 유입인지 단정하기 어렵다.
빈대는 납작한 타원형 몸통에 다리는 6개이고 길이는 6~9㎜ 정도다. 빈대에 물리면 피부가 빨갛게 붓고 가렵다. 모기에 물렸을 때와 비슷하지만 빈대는 모기보다 7~10배 많은 피를 빤다. 더 가렵고 붓는 면적도 넓다고 한다. 많은 빈대가 동시에 문다면 고열이 생길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심하게 가려우면 병원에서 항히스타민제를 처방받아 복용하거나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르는 것이 좋다”고 했다. 냉찜질도 증상을 완화한다. 헤어드라이어를 이용해 가려운 부위에 더운 바람을 쏘이거나 온찜질을 하는 것도 효과가 있다. 빈대는 몸집의 2.5~6배까지 흡혈할 수 있다. 양영철 을지대 교수는 “빈대는 피를 소화하는 일주일 동안 흡혈 활동을 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며 “전염병 등을 매개하는 곤충은 아니다”고 했다.
빈대는 빛을 싫어한다. 낮에는 가구나 벽 틈에 숨어 있다가 야간에 사람 피를 빤다. 저녁보다 이른 새벽에 더 활발하다. 빈대는 유충일 때보다 성충일 때 더 오래 사는 곤충이다. 실내 어두운 곳에서 알을 까며 번식한다. 유충으로 6~8주, 성충으로 12~18개월을 산다. 성충은 가정집 실내 온도인 18~20도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한 번 부화해 성충이 되면 2~3년간 한 집에 사는 경우가 많다. 빈대를 제때 박멸하지 않으면 오래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다. 빈대는 고온에 약해 45~50도 열을 쏘이면 죽는다. 빈대를 발견했을 때 스팀(증기) 소독을 하면 대부분 사라진다. 빈대의 천적은 바퀴벌레라고 한다.
빈대를 발견하면 지역 보건소에 신고해야 한다. 해충의 경우 생태계를 교란하면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이, 전염병을 옮기면 질병관리청이, 한국에 없는 외래종이면 국립생태원이 관리한다. 그런데 빈대는 이 조건에 모두 들어맞지 않아 평소 관리되는 대상이 아니라 출몰했을 때마다 방역을 통해 조치하고 있다. 최근 후진국은 물론 일부 선진국에서도 빈대가 출몰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빈대 습격이 더 잦아질 수 있다. 국립생물자원관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위생 관념이 높아 평소 관리만 잘해도 크게 확산할 가능성은 낮다”며 “다만 외국인 밀집 지역 등에선 빈대가 계속 발견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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