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탕후루 국감’ 유감
문제는 탕후루가 아니라
청소년 건강 불평등 문제
국가 노동력 차원서 접근을
올해 초 건강검진 결과는 공포 그 자체였다. 당뇨 전 단계인 공복혈당장애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살다가는 몇 년 내에 틀림없이 당뇨병 환자가 된다는 의미였다. 죽을 때까지 혈당 수치를 관리하면서 심근경색, 동맥경화, 신장 질환, 말초신경증, 시력 장애 등 다양한 합병증이 하나씩 더해지는 삶이 이르면 40대 중후반부터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생각조차 못 했다. 잦은 음주, 과식, 운동과 수면 부족으로 점철된 생활을 통째로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중국식 설탕 과자인 탕후루가 이슈가 됐다. 아동이나 청소년이 과도하게 당분을 섭취하게 만드는 식품이 비만과 성인병의 원흉이라는 것이다. 예비 당뇨인 입장에서 국회의원들의 말잔치를 보며 화가 났다. 청소년 건강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미디어의 관심만 끌어보려는 경박한 행동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소년 비만은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송경철 연세대 교수 등에 따르면 소아청소년 중 비만 비율은 2009년 6.6%에서 2018년 11.6%로 늘었다. 공복혈당장애 등 당뇨 전 단계 환자 비율은 5.1%에서 10.5%로 두 배가 뛰었다. 이들 중 다수는 30대에 당뇨병으로 이행할 가능성이 높다. 활발히 경제활동을 하면서 경력을 쌓아야 하는 나이에서부터 갖가지 합병증으로 고생해야 한다는 얘기다.
당뇨는 원래 50대가 되어서야 걸리는 질병이었다. 청소년들까지 연령이 내려온 것은 생활 방식의 문제다. 먼저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비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식사나 운동 습관은 물론 임신 당시의 환경, 키 등 신체 발달 등의 종합적인 격차가 나타난 것”이라고 장숙랑 중앙대 교수는 설명한다. 무절제하게 단 음식을 많이 먹어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홍용희 순천향대 교수 등이 2002~2016년 건강보험 자료를 분석한 결과는 부모의 소득 격차가 고스란히 당뇨병 격차로 이어진다는 걸 보여준다. 만 15~19세 남성 중 소득 하위 20%의 당뇨병 유병률은 2002년 0.03%에서 2016년 0.27%로 9.8배 늘었다. 같은 시기 나머지 80%의 유병률은 0.02%에서 0.12%로 5.8배 증가했다. 김대중 아주대 교수는 “성인도 소득 계층이 낮은 집단에서만 당뇨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기의 건강 불평등은 고스란히 노동시장에서의 격차로 이어지게 된다.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청년들을 다룬 연구를 보면 회사는 채용을 꺼리고, 불안정한 일자리를 갖는 경우가 많다. 질 낮은 일자리이기 때문에 만성질환 관리가 어려워 병이 악화되거나 일을 그만두기도 한다. 김 교수는 “당뇨의 경우 심각한 합병증으로 번지지 않으려면 식단 관리와 지속적인 운동이 필수적이고 생활도 규칙적으로 해야 한다”며 “경제적 여력이 부족하고 노동시장 지위가 열악한 중하층 청년들에게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건강 불평등은 사회적 약자의 행복권 문제만은 아니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뒤따를 노동력 부족은 국가적 과제가 된 지 오래다. 30~34세 남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15년 90%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하락해, 지난해 87%까지 내려왔다. 이대로 가면 한창 일할 나이의 성인 남성이 질병과 통증에 시달려 경제활동까지 포기하는 미국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내국인 노동력의 질 악화를 이민으로 벌충하기도 쉽지 않다. 경제라는 기계를 닦고, 조이고, 기름칠 하면서 돌아가게 하는 건 중하층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상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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