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 순간

김태언 기자 2023. 10. 21.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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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시라토리 겐지는 선천적 시각장애 탓에 앞이 전혀 보이지 않지만 20여 년 동안 미술 작품을 감상해왔다.

겐지는 동행자가 시각 정보를 말해주면 그에 관한 여러 주제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작품을 감상한다.

저자가 설명해주는 미술 지식뿐만 아니라 겐지와 함께 작품을 보는 방식이 특히 흥미롭다.

저자는 "평상시였다면 지나칠 작품을 앞에 두고 그에게 조금이라도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새롭게 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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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가다/가와우치 아리오 지음·김영현 옮김/432쪽·2만2000원·다다서재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미술을 감상할까?

일본인 시라토리 겐지는 선천적 시각장애 탓에 앞이 전혀 보이지 않지만 20여 년 동안 미술 작품을 감상해왔다. 겐지는 동행자가 시각 정보를 말해주면 그에 관한 여러 주제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작품을 감상한다. 세계적인 미술관인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이 제창한 ‘대화형 감상’과도 비슷한 방식이다.

일본 도쿄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저자가 겐지와 함께 2년 넘게 일본 각지의 미술관을 방문한 경험을 담았다. 저자가 설명해주는 미술 지식뿐만 아니라 겐지와 함께 작품을 보는 방식이 특히 흥미롭다.

프랑스 화가 피에르 보나르(1867∼1947)의 작품 ‘강아지와 여자’(1922년)는 개를 안고 있는 여자를 그린 그림이다. 저자는 겐지에게 “한 여성이 강아지를 안고 있는데 강아지 뒤통수를 유독 자세히 보네요. 개한테 이가 있는지 보는 건가” 하며 묘사한다. 그렇게 보기를 10분. 그림의 크기, 형태, 색채, 구성 등을 설명하다 보니 저자는 “슬퍼하며 식사하는 듯했던 여성은 느긋하게 오후의 티타임을 즐기는 사람으로 보였다”고 했다.

이처럼 겐지와 함께 미술관에 가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저자는 “평상시였다면 지나칠 작품을 앞에 두고 그에게 조금이라도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새롭게 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야기는 작품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기억을 소재로 작업하는 오타케 신로(68)의 콜라주 ‘8월, 하리활도(荷李活道)’(1980년)를 보며 하단의 사진 속 인물이 백인인지 흑인인지 논쟁하다가 인종의 개념에 대해 고민한다. 시간과 삶을 다룬 설치미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1944∼2021) 전시관을 둘러보며 내세와 죽음을 생각한다.

인간과 역사, 장애 등 다양한 주제로 확장돼 가는 이들의 대화를 읽다 보면 깨달음을 얻게 된다. “서로 이해하려 노력하고 이해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모순투성이 세계를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라는 사실이다. 2022년 일본 서점대상(논픽션 부문)을 받았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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