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서 일하고 싶어도 전공의 자리 없어,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채혜선 2023. 10. 2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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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병원 강화 대책을 국립대병원 원장과 의사들은 어떻게 볼까. 이들은 ‘지역에 뿌리내린 의사’ 양성을 키워드로 제시했다. 한 지역 국립대 의대 학장은 20일 “의대생도, 환자도 서울로 간다. 서울의 의료 블랙홀 현상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지역 국립대병원장은 “의대 정원 확대와 동시에 의사가 지역에 정주하게 하는 여러 제도를 정교하게 짜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필수의료 공백의 원인 중 하나로 의사 인력의 지역 격차가 꼽힌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서울의 지난해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3.47명인 반면 충북은 1.53명, 경북 1.39명, 전남 1.75명으로 서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런 현상이 생긴 이유는 지역 의사가 서울로, 수도권으로 이탈하기 때문이다.

지역에 의사가 남게 하려면 전공의 정원을 먼저 지역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부도 “전공의 수련을 지역의 병원에서 하면 서울로 이탈할 확률이 낮아진다”고 보고 있다. 복지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전공의 정원 비율을 현재 6대 4에서 내년에는 5대 5로 조정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류세민 강원대 의대 학장은 “강원 지역의 의대 정원은 267명이고, 인턴·레지던트 정원은 100명이 안 된다. 의대를 졸업해 의사 면허증을 따더라도 전공의 수련을 할 데가 부족하다. 지역에 남고 싶어도 남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가령 올해 강원 지역의 안과 전공의 정원은 3명이고, 지원율 100%를 기록했다. 류 학장은 “안과 의사를 강원에서 하고 싶어도 자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강윤식 경상국립대 의대 학장도 “의대 정원 확대는 10여년 뒤에야 효과가 나타나지만, 전공의는 당장 티가 나는 것”이라며 “(경남은) 입학정원 대비 전공의 비율이 30%에 불과하다. 지역 전공의 수가 당장 늘어야 지역 필수의료 의사를 늘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대생을 가르칠 교원과 기자재 등 같은 인적·물적 자원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원이 40명대인 소규모 의대는 보통 한 강의실에서 수업한다. 정원이 늘면 자원이 추가로 필요하다. 허정식 제주대 의대 학장은 “인프라 구축이나 교수 확보 없이 의대 정원만 늘어난다면 과거 운영 문제로 폐교된 서남대 의대처럼 부실 교육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의대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역 국립대병원에 의사들이 남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과감한 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주문도 나왔다. 배장환 충북대병원 공공부원장은 “지역 국립대가 지금처럼 서울의 대학병원 사관학교 역할을 하게 해선 안 된다”며 “의사 교육의 바탕은 환자이다. 환자가 지역 병원을 먼저 찾을 수 있게 병상을 늘리고, 우수한 교수 인력을 확충하는 등 지역 국립대병원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성규 동군산병원 이사장(대한중소병원협회 회장)은 “큰 병원, 작은 병원이 환자를 두고 경쟁하고, 다른 지역 병원이 서로 경쟁하는 ‘치킨 게임’ 같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지역 국립대병원이 비대해지면 지역 내 환자들이 1·2차 의료기관을 건너뛰고 국립대병원으로 쏠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역 내 의료전달체계를 무너트리지 않게 제한하지 않으면 지역 완결형 의료체계는 선언적 의미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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