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첫 단추부터 잘못 꿴 국적항공사 합병
정부 주도 빅딜의 한계 보여줘
아시아나 실사보고서 2종 작성
부정적 전망 기반해 합병 추진
지금 보니 명분도, 실리도 부족
전체 산업 관점에서 재검토해야
이상은 사회부 차장
“(항공사 합병) 딜이 무산되면 아시아나항공 파산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항공산업 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
이동걸 전 산업은행 회장은 2020년 11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합쳐야 한다며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시곗바늘을 돌려서 이 장면을 다시 곱씹어 본다. 이 전 회장은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 간 합병이 결정되지 않으면 “아시아나항공이 연내 파산을 피할 수 없다”며 “유일한 대안은 합병”이라고 단언했다. 인터뷰는 11월 말이었으므로, 40일도 못 버틴다고 한 셈이다. 어차피 망할 회사라 다른 회사와 합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논리였다.
그가 연내 파산을 언급한 데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항공기금융 등을 한꺼번에 상환하는 상황 등을 가정할 경우 아시아나항공에 몇조원이 더 들어가야 한다는 부정적인 시나리오를 담은 실사보고서였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를 인수할 생각이 없다는 게 분명해진 그해 9월 이후 한 회계법인이 작성해 산은에 건넨 것이다.
이 보고서의 존재는 11월 중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계획이 공식화될 때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오직 청와대와 이 전 회장, 그리고 산은의 극소수 인원만이 알고 있었다. 당시 아시아나항공은 정부가 코로나19 충격 완화용으로 조성한 기간산업안정기금의 지원 대상이었다. 따라서 기금 위원과 담당 실무자들은 모두 아시아나항공에 돈이 얼마나 들어갈지 실사를 통해 계산한 다른 보고서를 보고 있었다.
두 보고서가 가리키는 내용은 반대였다. 기금 위원들이 받은 보고서에서는 이듬해 아시아나항공에 필요한 돈이 몇천억원 수준으로 기재됐다. 그것도 적진 않지만, 수조원 시나리오와는 결이 달랐다. 아시아나가 어렵긴 해도 곧 망한다고 볼 이유는 부족했다. 상장사인 아시아나가 공개한 재무제표에도 연내 파산 가능성을 암시하는 부분은 없었다. 사실 정부가 기금을 지원하는데 갑자기 파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애초 기금을 지원해서도 안 됐을 것이다. 당시 청와대와 이 전 회장은 아시아나가 ‘살 수 있다’는 보고서는 제쳐뒀다. 대신 ‘죽을 것이다’란 보고서를 들이밀며 합병 추진의 근거로 삼았다. ‘이 회사는 회생 불가’라고 주장해 합병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려 했다는 후문이다.
전격적으로 추진된 두 회사 간 합병의 명분이 약하다는 이야기는 그때부터 나왔다. 이 전 회장은 몇조원 들어갈 것을 아낄 수 있으니 싼값에 아시아나항공을 손절하는 ‘굿딜’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코로나 상황이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낙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3년이 흐른 지금,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에 진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르면 1년, 늦어야 2년 내로 합병이 다 마무리될 것이라고 본 이 전 회장의 계산과는 완전히 다르게 돌아가는 중이다. 해외 경쟁당국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결과다. HD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인수 건에서도,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건에서도 이 전 회장은 경쟁논리를 얕잡아 봤다.
결국 대한항공 측은 최근 유럽 경쟁당국에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부를 팔고 여러 노선을 포기하겠다는 계획까지 제출했다. 미국 경쟁당국에선 또 뭘 요구할지 아직 알 수 없다. 법률자문 등 비용만 1000억원 가까이 썼다고 한다. 그렇게 하고도 통과를 자신하기 어렵다.
차 떼고 포 떼는 사이에 왜 이런 합병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국민들의 의문도 커지고 있다. 한진그룹은 통합 후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경쟁이 사라진 시장에서 얼마나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쟁력도 시나브로 사라지는 중이다. 치러야 할 비용에 비해 시너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애초 정부가 나서서 빅딜을 주도하는 모양새가 맞지 않았다. 물론 어느 순간에는 정부가 나서야 할 때가 있을 수 있고, 결과적으로 잘된 빅딜도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딜이 그런 딜이었는지는 의문이다.
기업 인수합병은 무척 어렵고 변수가 많다. 성공을 장담하기도 어렵다. 지금 와서 결과론적으로 지나간 딜을 비판하게 된 것은 유감이다. 하지만 명분과 실리라는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또 다른 장애물을 만나 경쟁력 상실을 더 감내해야 한다면, 한국 항공산업 앞날을 위해서라도 양사 합병 문제를 진지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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