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남 추종 ‘다크 패션’ 대가…“블랙은 겸허한 색”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 릭 오웬스
GD·뷔 등 K팝 스타도 즐겨 입어
1962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릭 오웬스는 오티스 예술 디자인 대학에서 2년 간 미술을 공부한 후, LA 무역 기술대학에서 패턴 제작 및 입체 재단 과정을 수강했다. 이후 여러 의류 업체에서 일하다 94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하고, 2002년 뉴욕컬렉션에 데뷔해 이름을 알렸다. 이후 2004년 파리로 이주해 지금까지 파리 컬렉션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패션왕국을 운영하고 있다. LVMH 같은 대형 그룹에 잠식당하지 않고 독자적인 경영을 펼쳐나가는 몇 안 되는 기업이기도 하다.
릭 오웬스를 수식하는 표현에는 ‘다크 패션의 대가’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가 있다. 검정색을 중심으로 어둡고 우울하면서도 고혹적인 의상을 디자인하는데 늘 놀라운 창조력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패션쇼 역시 이슈를 몰고 다닌다.
혁신적인 창조력 vs 기괴한 쇼, 릭 오웬스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분더샵 갤러리 사진전에서 만난 그에게 ‘릭 오웬스다운 옷’의 정의를 물어봤다.
Q : 패션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뭔가.
A : “‘공감적인 대안’이다. 지금의 문화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편협하고 또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한 미학적 기준들로 가득하다. 나의 디자인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오늘날 패션계의 획일화된 기준에 반대되는 어떤 대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궁극적으로는 사람들 안에 숨어 있는 ‘괴짜’를 드러내고 싶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이 가진 괴짜의 특성이 있다. 나는 그 독특한 고유의 특성들을 돋보이게 하고 싶다. 이건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꼭 필요한 ‘관용’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섣불리 남을 재단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나와 다른 사람을 온전히 수용할 수 있길 바란다.”
파격적인 패션쇼도 이슈 몰이
Q : 디자인이 너무 파격적이어서 소화하기 어려운 옷이 많다.
A : “물론 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렇게 한국의 유명 미디어가 인터뷰 할 만큼 우아하고 설득력 있는 디자인을 만드는 데도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웃음)
Q : 검정색을 사랑하는 이유는.
A : “블랙은 굉장히 드라마틱하고 세련되지만, 동시에 굉장히 겸허한 색이다. 굉장히 예를 갖춘 느낌이랄까. 일단 내가 주목받겠다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돋보일 수 있게 해 주는 컬러다. 또 어지럽고 지저분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조금은 눈을 편안히 쉬게 해주는 컬러기도 하다.”
Q : 당신의 옷을 잘 소화하려면 화보 속 모델처럼 키가 크고 말라야 하나.
A : “나의 어머니가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답한다. 미셸(아내)도 충분히 입는다고.”(웃음)
실제로 패션업계에서 무대 위의 옷과 밖의 옷은 조금 다르다. 쇼에서는 디자이너가 이번 시즌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과장해서 표현하지만, 매장에서 판매하는 옷은 어느 정도 정제된 경우가 많다. 외국인 모델들처럼 키가 크지 않은 지드래곤, 산다라 박, BTS 뷔 등 한국의 K팝 스타들도 릭 오웬스의 옷을 즐겨 입기로 유명하다.
Q : 좋아하는 단어들은.
A : “공감, 관용, 사랑, 부드러움, 따뜻함, 가족, 정원, 손자·손녀, 케이크, 에스프레소, 난, 수선화, 해안, 낮잠.”(웃음)
길고 검은 생머리에 10㎝ 높이의 굽이 달린 구두, 검정 가죽으로 휘감은 옷. ‘다크 패션의 대가’다운 모습이었지만 실제로 만나본 릭 오웬스는 낭만을 사랑하는 철학자 같았다. 그의 옷을 사랑하는 추종자들의 기분을 알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진짜로 ‘검정’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짧은 방한 일정이었지만, 인터뷰 후 그는 국내 사진가 민병헌의 사진전 ‘戒(계)’를 직접 방문해 사인까지 받았다. 민병헌은 ‘민병헌 그레이’라는 독특한 색감의 흑백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사진가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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