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 무뎌진 이스라엘, 사즉생 하마스에 속수무책 당해
[제3전선, 정보전쟁] 모사드의 실패, 하마스의 성공
하마스, 첨단정보 전환기의 허점 공략
상황을 좀 더 차분하게 살펴보면 몇가지 구조적 이유들이 보인다. 무엇보다, 첨단정보로의 전환에 따른 과도기적인 정보공백 현상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첨단 기술정보에 많이 투자한다. 첨단 기술정보는 인간정보와 달리 위험성이 낮고 정보의 자의적 왜곡 소지도 낮으며, 특히 인간정보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대량 정보수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도 이 같은 추세에 발맞춰 인공지능(AI) 등 첨단 디지털 정보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첨단 정보기술이 쳐놓은 그물을 피하기 위해 원시적 방법을 취하는 역발상을 선택했다. 전화기나 인터넷망을 사용하지 않고, 전파 자체가 차단되는 지하공간을 이용했으며, 극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문서는 직접 인편으로 전달했다. 이런 환경에서는 첨단 정보기술도 무용지물이 된다. 첨단 기술정보로의 전환은 미룰 수 없는 과제이지만, 전환기에 발생할 수 있는 정보 사각지대를 어떻게 메울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것이다.
또한가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매너리즘과, 그에 대비되는 하마스의 사즉생(死卽生) 자세다. 이스라엘은 국경장벽을 설치하고 가자지구를 통제하고 있다. 그래서 하마스의 공격 가능성에 대한 긴장감과 경계감이 낮아졌다. 미국 정보당국이 9·11 테러를 막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도 매너리즘에 빠져, 알 카에다가 민항기를 미사일 무기로 둔갑시켜 활용할 것이라는 상상력을 막지 못한 것이다. ‘설마’에 당했다는 점에서 이번 하마스 공격과 9·11은 공통적이다. 반대로 하마스는 사즉생의 정신으로 공격을 준비했다. 지난 수십년간 이스라엘의 강력한 정보력을 경험한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에 포착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일절 하지 않았다. 매너리즘과 사즉생의 대결에서 어느 쪽이 이길지는 자명하다.
정보의 고질적 딜레마인 늑대소년 효과(cry wolf effect)도 작용했다. 늑대소년 효과는 평소 사소한 위기를 자주 경고하면 경고에 대한 감각이 무뎌져 정작 결정적인 위기가 닥쳤을 때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번에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국경 일대에서 하마스의 공격 예행 연습 징후를 포착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같은 징후정보는 일상적으로 있는 것이어서 주목하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정보력을 과신하여 주변국의 경고 를 과소평가한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이집트 정보당국이 가자지구에서 ‘큰일’(something big) 날 가능성이 있음을 수차례 전달했으나 이를 경시한 것 등을 말한다.
그러나 이 같은 정보 수집과 분석 과정에서의 문제점보다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최종단계라 할 수 있는 정보판단의 문제다. 정확한 정보판단을 내리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국가가 처한 상황과 이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사람의 판단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판단은 주어진 기준이나 조건에 따라 기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4차 중동전쟁 때 더 심각한 정보 실패
이처럼 정확한 정보판단은 매우 어렵다. 정보실패의 원인은 정보수집 부족, 분석관의 편견, 정보조직의 경직된 문화, 국가지도자들의 집단사고 등 일반화할 수 있지만, 개별 국가들의 판단기준은 훨씬 더 복잡하다. 그 나라의 정치·안보환경과 지정학적 위치, 정보문화 등이 정보판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보와 정치, 정보와 정책의 숙명적 딜레마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보가 정치·정책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정보의 정치화·정책화로 인해 정보가 왜곡될 위험이 있다. 반면 정치·정책과 너무 멀어지면 현실과 멀어져 정보가 무용지물이 될 위험이 있다. 마키아벨리와 토마스 홉스의 정보철학처럼 정보는 가장 현실 지향적이고 목적 지향적이므로 속성상 정치·정책과 멀어질 수 없다. 참 어려운 딜레마이다. 그래서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잭 레비는 정보는 불확실한 요인들이 많아 실패와 오판이 일정 부분 불가피하다고 본다. ‘정보실패 불가피이론’이다. 그러나 굳이 학문적 이론을 들지 않더라도 정보실패 제로 달성은 사실상 어렵다. 만사가 그렇듯이 실패 제로는 신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일차적으로는 정보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나 9·11 테러 등 수많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정보실패는 국가전체를 위기로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보실패가 불가피하게 발생할 경우에 대비하여, 혼란과 위기를 즉각 회복할 수 있는 뒷받침 장치도 마련해 두어야 한다. 4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정보실패로 나라를 잃을 뻔했지만, 미국과 외교관계를 튼튼히 해 놓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예이다. 정보실패로부터 배우는 교훈을 잘 발전시키는 지혜도 필요하다. 미국은 진주만 피습 당시 역사상 최악의 정보실패를 경험했으나, 그 실패를 교훈삼아 국가정보 100년 대계를 다시 설계해 오늘날 세계 최강의 정보선진국을 달성했다. 좋은 선례이다. 또한 하마스의 사즉생 자세에서도 배울 교훈이 있다. 진부하지만 ‘불가능은 없다’ 고 증명하는 사례를 하마스는 하나 더 추가했다. 정보당국이 새겨야 할 교훈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실정에 맞는 국가단위의 정보실패 개념과 기준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정보실패에 대한 개념과 기준이 확립되어야 비로소 정보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는 고민이 시작될 수 있다. 그 고민이 곧 새로운 정보발전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