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이회창의 길 vs 이재명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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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흔들렸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입지가 제자리를 찾은 듯하다.
이 지점에서 한때 제1야당 대표를 했던 이회창(전 한나라당 총재)의 길을 떠올려 본다.
잇단 대선에서 실패한 이회창과 당권의 반환점을 갓 지난 이 대표 처지를 단순 비교하기도 어렵다.
이회창은 세풍(稅風·국세청 통한 대선자금 조성) 등 검찰 수사가, 이 대표는 과거 단체장 때 비리 의혹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발등의 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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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일변도·대세론 피로감 넘어서야
물론 대척점에 서 있는 보수와 진보 진영의 리더, 너무나 다른 성장 이력 등을 무시할 순 없다. 잇단 대선에서 실패한 이회창과 당권의 반환점을 갓 지난 이 대표 처지를 단순 비교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대선 패배 후 충분한 성찰도 없이 곧바로 당 장악에 나선 행보는 상당 부분 겹쳐 보인다. 다시 대선에 도전하기 위해선 당권 탈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이유였을 것이다.
자신을 조여 오는 사정 정국을 헤쳐 나가야 하는 방탄의 절박감도 비슷하다. 이회창은 세풍(稅風·국세청 통한 대선자금 조성) 등 검찰 수사가, 이 대표는 과거 단체장 때 비리 의혹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발등의 불이었다. 1997년 대선에 39만 표 차로 석패한 이회창이 당권 탈환에 걸린 시간은 불과 8개월. 한때 손잡았던 조순 체제의 2년은 중도에 무너졌다.
이 대표는 더 빨랐다. 대선 직후부터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분위기가 조성됐다. 대선 패배 후 3개월 만에 보궐선거로 원내에 입성한 지 두 달 만에 당권까지 장악했다. 같은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2년 대선 패배 후 당권 도전 선언에 741일 걸린 것에 비하면 초고속이다.
여야 처지가 바뀐 탓인지 대여 투쟁의 강도는 셌다. 이회창 체제에선 김종필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을 발의하는 등 장관 해임안 발의가 빈번했다. 통일부 장관 해임안은 자민련의 공조로 장관 낙마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압도적 과반의석을 쥔 이 대표 체제에선 해임안·탄핵 공세에 양곡법, 간호법 등 입법 독주도 다반사였다. 강한 대여 투쟁은 내부 갈등을 잠재우면서 1인 체제를 굳히는 다목적 포석이었을 것이다.
1인 체제는 ‘대세론’을 굳히는 지름길이다. 투쟁 일변도의 이회창 리더십을 비판해 온 비주류 중진들마저 2000년 총선으로 대거 퇴장하면서 이회창 대세론은 더 단단해졌다. 박근혜의 탈당과 복귀로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1인 독주의 그림자를 지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차기 대선에 나설 이 대표가 비대위나 중도 퇴진 요구에 철저히 선을 긋는 것도 대세론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대세론은 이종교배에 가까운 혁신과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감한 혁신의 체질 개선 없이 민의에 부응하기는 어렵다. 이명박 정권은 중도 실용의 국정 운영 기조 쇄신으로 레임덕 위기를 돌파했다. 반면 국정 운영 기조를 고집한 박근혜와 문재인 정권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정권과 맞서야 하는 야당도 이런 도도한 흐름을 거역할 수 없다. 내부 혁신 경쟁을 꺼린 이회창 대세론은 판을 뒤집는 노무현 바람에 주저앉았다. 변화와 쇄신이 실종된 대세론이 길어질수록 피로감만 쌓여갈 뿐이다.
23일 당무에 복귀하는 이 대표는 “우리 안의 작은 차이를 넘자”고 했다. 하지만 그 한 마디에 통합과 혁신이 구현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본인이 나서지 않더라도 측근 그룹과 지지 세력이 움직여 비판 세력을 제압하는 차도살인(借刀殺人)에 익숙한 탓일 게다. 위기는 기회이고, 기회는 위기가 될 수 있다. 강서 보선 승리가 이재명 대세론에 던지고 있는 숙제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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