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보고 있다’는 착각 깨트린 시각장애인과의 미술관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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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일본의 여러 미술관에 한 남성이 전화를 걸었다.
한 안내자는 비로소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며 오히려 감사함을 표했다.
또 다른 안내자는 "호수가 있다"고 했다가 "아니다. 노란색 점이니 호수가 아니라 들판"이라고 정정하며 "이 작품을 여러 번 봤는데 지금까지 호수라고 믿었다"고 놀라기도 했다.
책은 선천적 전맹인 시라토리 겐지가 이렇게 일본 각지의 미술관을 방문하여 다양한 작품을 감상한 기록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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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가와우치 아리오 지음/김영현 옮김/다다서재/2만2000원
“저는 앞이 보이지 않지만 미술관 전시 관람을 하고 싶습니다. 가능할까요?”
‘호수로 보이는 들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가장 가능성 높은 작품 빈센트 반 고흐 ‘수양버들이 있는 정원’, 블랑쉬 오슈데의 ‘밭’, 클로드 모네 ‘홍수’를 내놓고 미술감상체험 수강자에게 고르라고 했더니 의견은 완전히 갈렸다. 결국 답은 찾지 못했다. 눈이 있기 때문에 미술 작품을 본다고 믿었지만, 실상은 우리가 본다고 믿기만 한 것인지도 모르는 대목이다.
책은 선천적 전맹인 시라토리 겐지가 이렇게 일본 각지의 미술관을 방문하여 다양한 작품을 감상한 기록을 담았다. 책은 일본에서 출간 즉시 화제를 모았고, 제53회 오야 소이치 논픽션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2022년에는 서점대상 논픽션 부문 대상을 받았다. 장편 다큐멘터리 ‘눈이 보이지 않는 시라토리 씨, 미술을 보러 가다’로 제작되기도 했다.
작품에 대한 견해와 주관을 나누는 이런 ‘대화형 감상’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제창하고 세계 각국에서 활용하는 것으로, 겐지는 이를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이다.
그렇게 전맹 미술 감상자로 살아온 지 20여년, 그는 ‘대화형 감상’의 안내자로 눈이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의 감상 워크숍을 일본 전역에서 진행하고 있다.
저자는 겐지와 함께한 관람 여정을 통해 예술을 품고 있는 사회와 그 사회 전반을 가로지르는 통념도 꼬집는다. 슬쩍 보고, 대충 보고, 왜곡해 보면서도 ‘다 보고 있다’고 믿었던 것처럼, ‘내가 봤으니 잘 알고 있다’는 오만과 고정관념이 비장애인에게는 존재하고, 이로 인한 차별이 존재함을 부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겐지와 미술관 순례를 함께한 사람들은 예술을 ‘함께 바라봄’으로써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내면의 편견을 발견하고 의식과 인생에 변화가 왔다고 고백한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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