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동물은 천부적인 도덕적 권리가 있다”

김용출 2023. 10. 20. 23: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동물권리론’ 대표 레건의 핵심 저작
“자의식·믿음 등 있다면 삶의 주체
모든 동물 본래적 가치 존중 돼야”
인간 넘어 포유류 전체로 확장시켜
의무론 입장서 철학적으로 논증
‘동물 해방론’과 양대산맥 평가받아

동물권 옹호/톰 레건/김성한·최훈 옮김/아카넷/4만원

“삶의 주체인 모든 개체는 본래적 가치를 가지며, 따라서 동등한 도덕적 지위를 누린다. 곧 삶의 주체 기준은 본래적 가치를 소유하는 충분조건이 된다.”

당연해 보이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서 선뜻 반대에 나설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삶의 주체’를 인간을 넘어 의식을 가진 포유류 전체로 확장한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많은 사람이 반대할지도 모르겠다. ‘동물을 인도적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생각할 순 있지만, ‘동물이 사람의 생명권처럼 절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갖고 있다’는 생각까지 쉽게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톰 레건/김성한·최훈 옮김/아카넷/4만원
하지만 ‘동물 권리론’ 진영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오랫동안 동물권 운동에 헌신한 활동가인 톰 레건(1938~2017)은 인간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공리적인 고려에 의해서 양도될 수 없는 절대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분명하게 주장한다.

레건은 평생 17편의 저술을 펴낼 만큼 이론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한편, 부인과 함께 비정부기구인 ‘문화와 동물재단’을 만들어 상업적 동물 축산, 모피 산업, 동물 실험의 폐지를 목표로 동물권 운동에 헌신해온 활동가였다. 특히 공리주의 관점에서 ‘동물 해방론’을 편 피터 싱어와 논쟁하면서 동물권 논의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학자로 평가받았다.

의무론의 입장에서 동물권을 철학적으로 옹호한 레건의 핵심 저작이 번역 출간됐다. 레건은 책에서 철학적 논증을 바탕으로 본래적 가치를 갖는 존재들은 어떤 존재이건 절대적 권리를 동등하게 갖는다며 ‘동물 권리론’을 전개했다. 2004년 출간된 개정판의 완역.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과 함께 동물권 논의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돼 온 톰 레건의 핵심 저작이 최근 번역 출간됐다. 싱어가 공리주의 관점에서 동물권을 옹호했다면, 레건은 권리와 의무론의 입장에서 동물권을 옹호한다. 사진은 동물권 옹호를 위해서 국내외에서 벌어진 시위 장면. 세계일보 자료사진
레건은 먼저 정신적으로 정상인 한 살 이상의 모든 포유류는 삶의 주체이고, 그들은 본래적 가치를 가지며, 따라서 결코 양도할 수 없는 천부적인 도덕적 권리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렇다고 암소의 평등하게 투표할 권리나 모르모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고양이의 종교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말하는 건 아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본래적 가치를 갖는 개체로서 존중받을 동물의 권리를 말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삶의 주체를 어디까지 규정할 것인지, 그리고 삶의 주체가 가지는 본래적 가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다. 레건에 따르면, 자의식이 있는 존재, 곧 믿음과 욕구를 가질 수 있는 존재, 미래를 생각하고 목표를 가질 수 있는 행위자들이라면 모두 삶의 주체라고 부른다. 아울러 본래적 가치란 개체들이 자신들의 선함 혹은 다른 존재들에 대한 유용성과는 독립적으로 갖는 가치이다. 본래적 가치를 가진 모든 삶의 주체가 갖는 권리는 도덕적 권리이며, 도덕적 권리란 바로 본래적 가치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도덕적 권리를 법적인 권리와 혼동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즉, 법적인 권리는 법의 산물로 사회마다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도덕적 권리는 피부색이나 국적, 성, 종과 무관하게 모든 삶의 주체에게 귀속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 같은 자신의 견해가 밀의 공리주의에 반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 행위 능력을 결여한 존재조차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칸트의 전통에서도 한발 비켜 서 있다고 설명한다.

레건의 책은 1983년 초판이 출간된 이후 피터 싱어의 책 ‘동물 해방’과 함께 동물권 논의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돼 왔다. 싱어가 공리주의 관점에서 동물권을 옹호했다면, 레건은 권리와 의무론의 입장에서 동물의 권리를 옹호했다.

책은 현재 동물들이 인간에 의해서 어떤 처우를 받고 있는지를 비롯한 사실의 영역을 다루지 않는다. 대신 인간들은 왜 동물에게 권리를 인정해야 하는지, 동물에게 권리를 부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도덕 추론과 논리 분석을 통해 주장할 뿐이다. 따라서 독자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을 수 있고, 좀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철학적이고 분석적이어서 오히려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동물권의 철학적 길잡이로 자리매김해온지도 모른다.

“동물권은 철학적 이념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급성장하는 사회정의 운동 및 동물권 운동을 일컫는 이름이기도 하다. 현대의 기준으로 판단해 보면, 이 운동의 목표는 많은 철학자를 포함해서 대부분 사람에게 과격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 대신에 우리는 음식을 위해 동물을 기르는 것을 종식하고 모피를 얻고자 동물을 죽이는 것을 멈추기를 요구한다. 우리는 동물을 기르기 위해 ‘더 큰 우리’가 필요한 게 아니라 ‘빈 우리’가 되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