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 이후 격변하는 중동에 대한 오해와 진실

김수미 2023. 10. 20.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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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아랍국가 휩쓴 민주화 혁명
튀니지·리비아 등 독재정권 무너져
美, 아프간 철군 등 역할축소 맞물려
IS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더욱 득세
UAE·사우디는 오일머니 등에 업고
전폭적 복지공세로 민심 동요 차단
MZ 세대 부상에 파격적 개혁 행보
복잡하고 다양한 중동의 모습 담아내

최소한의 중동수업/장지향/시공사/1만9000원

중동은 우리에게 두 개의 상반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하나는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처럼 극단적인 이슬람 민족주의에 경도된 무자비한 테러, 다른 하나는 오일 머니(Oil Money)가 넘쳐나는 부유한 산유국이다. 실제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주둔군 철수 이후 ‘이슬람국가(ISIS·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등 극단주의 세력이 득세하며 세계 각지에서 테러를 자행하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 산유국은 네옴(Neom) 시티 건설, 화성탐사선 발사 등 파격적인 개혁·개방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신간 ‘최소한의 중동수업’(시공사)은 2011년 일어난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 전후 중동 국가들의 이 같은 변화상과 함께 중동에 대한 우리의 오해와 편견을 짚어준다. 특히 저자는 중동의 이 같은 변화에서 MZ세대의 역할에 주목한다.
장지향/시공사/1만9000원
◆걸프 산유국의 파격적 개혁·개방
2011년 중동을 휩쓴 ‘아랍의 봄’ 혁명은 튀니지 중부 작은 도시 시디부지드에서 청과 노점상을 하던 청년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부패한 공무원의 단속 횡포에 항의해 분신하며 시작됐다. 그의 사촌은 현장을 촬영해 SNS에 올렸고, 이를 본 시민들이 곧바로 항의 시위에 나섰다. 젊은 활동가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활용해 지방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난 반정부 시위와 경찰의 폭력 진압을 실시간으로 알렸다. 순식간에 전국으로 번진 반독재 시위는 주변 국가로까지 걷잡을 수 없이 퍼졌고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예멘의 독재자가 연쇄적으로 물러났다.
2011년 1월 24일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시위대가 벤 알리 전 대통령의 사진을 불태우고 있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혁명은 주변 국가인 리비아와 이집트, 예멘 등으로 확산됐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반면 대표적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는 시위 금지령을 내리고, 대신 전폭적인 복지 공세로 동요하는 민심을 회유했다. 개인주의와 민주주의를 선호하는 젊은 층의 마음을 사기 위해 탈석유, 탈이슬람 개혁을 시행하는 한편 숙적인 이스라엘과의 국교 정상화에 합의하는 등 새로운 실용주의 노선을 선언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985년생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2016년 ‘비전 2030’ 개혁 프로젝트와 함께 광폭 변화를 시작했다. 여성의 운전과 축구장 입장뿐 아니라 남녀 혼석을 허용하고 BTS 콘서트를 개최해 주변국 젊은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서울 면적의 44배에 이르는 최첨단 친환경 도시 네옴 프로젝트는 전 세계를 경쟁에 뛰어들게 했다.
중동에서 개혁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서 걷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가장 독보적인 속도로 개혁을 추진한 것은 2020년 화성 탐사선 발사에 성공한 아랍에미리트다. 2009년 한국의 인공위성 개발 업체인 쎄트렉아이의 기술을 빌려 첫 위성 발사에 성공했는데, 이제 우리를 앞서는 우주강국이 된 것이다. 첨단과학기술부 장관으로 취임한 1987년생 여성 과학자가 성공시켰다는 점에서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두 나라의 개혁 행보 배경에는 2010년 중반 저유가로 인한 재정 위기가 있지만, 정권 안정에 더 큰 위협은 인구 절반이 넘는 청년층의 의식 변화였다. 부모 세대와 달리 청년층은 세계 여행을 즐기고 첨단 정보기술을 활용한다. 또 종교, 가족, 공동체, 민족 대신 개인 의사, 실용주의, 민주주의, 세계화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2020년 9월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간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합의인 ‘아브라함 협정’ 서명식을 마친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왼쪽부터)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바레인의 압둘라티프 빈 라시드 알자야니 외무장관, UAE의 셰이크 압둘라 빈 자예드 알나흐얀 외무장관. 세계일보 자료사진
2020년 8월에는 수니파 아랍국가와 유대 국가인 이스라엘이 ‘아브라함 협정’을 맺고 전략적 연대를 조직했다.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건설 없이 이스라엘과의 국교 수립은 없다’는 아랍세계의 금기를 깬 놀라운 사건이었다.

◆MZ세대의 등장과 이슬람 테러조직의 변화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중동의 독재 정권을 두둔하며 자국 이익에 기반해 원조를 제공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장기 참전에 따른 전쟁 피로감과 여론 악화, 셰일 에너지자원 개발에 따른 중동 의존도 하락, 중국 견제를 위한 아시아 중시 정책의 부상 등으로 오바마정부 때부터 중동 내 역할을 축소하기로 했다. 트럼프정부가 시리아에서의 철군을 강행한 데 이어 바이든정부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주둔군을 철수시켰다.

미국의 중동 내 역할 축소는 부유한 산유국의 개혁·개방을 촉진시킨 반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같은 권위주의·독재 국가에 더 큰 혼란을 가져오고 이슬람 극단주의 득세의 빌미가 됐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통제하는 가자지구에 보복 공습을 감행한 가운데 지난 10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인이 파괴된 건물 잔해 속에서 걷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수니파 민병대원과 아랍 사회주의를 내세운 바아트당 출신들이 알카에다 이라크지부로 출발한 것이 극단주의 테러조직 ISIS다.

2014년 등장한 ISIS는 제국주의 이익에 따라 완성된 중동의 현재 국경선을 해체하고 단일 수니파 이슬람 국가 수립을 목표로 한다. 여성의 지위와 역할을 극도로 제한하며 시아파 이슬람과 타 종교를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수니파도 협조하지 않으면 참수, 화형, 수형 등으로 처벌해 2세대 이슬람주의를 대표하는 알카에다가 절연을 선언할 정도로 극악무도하다.

주목할 것은 ISIS가 다국적, 다인종, 다언어 집단이라는 점이다. 90여개국 2만여명에 이르는 외국인 전투원의 상당수가 서구 출신이다. 이들은 자체 트위터 앱을 개발하고 영어로 제작한 완성도 높은 선전물을 SNS에 마구잡이로 뿌렸다. 전 세계 ‘외로운 늑대’ 등 많은 청년이 자생적 테러리스트가 되거나 외국인 전투원으로 시리아에 들어갔다. 일사불란한 지휘체계가 작동하던 급진주의 알카에다와 달리 ISIS는 지도부의 권위, 명령 체계를 따르기보다 독자적으로 테러를 저지른 뒤 중앙에 보고하는 ‘선(先)테러 후(後)보고’ 시스템, 일명 테러의 프랜차이즈화가 특징이다. 저자는 ISIS는 낮은 응집력 문제로 점차 약화하고, 간헐적인 서구 테러로 명맥만을 유질할 것이라면서도 ISIS의 프랜차이즈화 현상이 ISIS 자체가 아닌 각 나라 고유의 사회·경제적 취약점과 연동된다는 사실이 더 무섭다고 지적한다.

우리에게는 중동과 이슬람 세계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이 있다. 그러나 이제 막연한 선입견보다는 중동의 복잡하고도 다양한 얼굴을 객관적으로 봐야 할 때다.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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