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역사저널] 김만덕과 나눔 정신
포상 대신 금강산 유람… 덕행 실천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서 전국에서는 지역별 특징을 담은 축제 행사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제주도의 10월을 대표하는 행사는 ‘만덕제’로, 제주 출신 조선후기 여성 CEO 김만덕이 실천했던 나눔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여성으로 그 이름이 기록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던 조선시대에 김만덕(金萬德:1739~1812)은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을 당당히 올렸다.
만덕의 행적은 정조의 참모 채제공의 ‘번암집’에 ‘만덕전(萬德傳)’이라는 제목으로 기록되었다. “만덕은 성이 김씨이며, 탐라의 양인 집안의 딸이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귀의할 바가 없었다. 기녀를 의탁해 살았는데, 점차 성장하자 관부에서는 만덕의 이름을 기안(妓案)에 올렸다. … 나이 스무 살에 그 사정을 관아에 읍소하니, 관에서 그것을 불쌍히 여겨 기안에서 제외하고 양민으로 복귀했다. … 그 재주는 재산을 늘리는 데에 뛰어났다. 때에 따라 물가의 높고 낮음에 능해, 팔거나 샀다. 수십년에 이르러 자못 명성을 쌓았다. … 을묘년(1795년)에 탐라에 큰 흉년이 들어 백성들의 시신이 침상을 이루었다. 왕이 곡식을 배에 싣고 가서 구제하기를 명했다. … 이에 만덕이 천금을 희사해 쌀을 사들였다. 육지의 여러 군현의 사공들이 때맞춰 이르자 만덕은 십분의 일을 취해 친족을 살리고, 그 나머지는 모두 관가에 수송했다. … 남녀 모두가 나와서 ‘우리를 살려준 이는 만덕이로다’라 하면서 만덕의 은혜를 칭송했다. 구제가 끝나자, 목사는 그 일을 조정에 아뢰었다.”
만덕의 기부 행위에 조정에서는 포상을 논의했지만, 쉽게 관직을 내릴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이런 고민을 만덕은 깨끗하게 해결해 준다. “다른 소원은 없으나 오직 하나, 한양에 가서 왕이 계시는 궁궐을 우러러 보는 것과 천하 명산인 금강산 1만2천봉을 구경하는 것입니다.” 거액의 기부자답지 않은 소박한 소원이었다. 1796년 만덕이 서울에 오자 정조는 직접 만덕을 격려했고, 이듬해 봄에는 평생의 소원이던 금강산을 유람하고 돌아왔다. 만덕은 이제 ‘장안의 스타’가 되어 있었다. ‘번암집’에는 “만덕의 이름이 한양에 가득해 공경대부와 선비 등 계층을 가리지 않고 모두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보고자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만덕은 제주도에 돌아온 후 15년 만인 1812년 세상을 떠났고, 그녀의 유언에 따라 무덤은 제주 성안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가운이 마루 길가에 묻혔다고 한다. 성공한 CEO로서 나눔의 미덕을 실천한 기부 천사 만덕의 행적은 우리에게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그리고 제주도에서는 해마다 만덕상을 제정해, 또 다른 만덕을 배출해 가고 있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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