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욘 포세가 그려낸 예술·사랑[책과 삶]
멜랑콜리아Ⅰ-Ⅱ
욘 포세 지음·손화수 옮김
민음사 | 540쪽 | 1만7000원
“나는 아주 멋진 보라색 코듀로이 양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 있다. 나는 한스 구데를 만나기 싫다. 나는 한스 구데가 내 그림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말을 듣기 싫다. 나는 오직 침대에 누워 있을 뿐이다. 나는 오늘, 한스 구데를 만날 기력이 없다.”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의 소설 <멜랑콜리아Ⅰ-Ⅱ>는 주인공인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우울한 독백으로 시작한다. 라스는 19세기 활동했던 노르웨이의 풍경화가로 생전 인정받지 못했다. 1부(멜랑콜리아Ⅰ)는 라스의 생애 중 1853년 늦가을 오후와 1856년 크리스마스이브 아침, 라스가 죽고 오랜 세월이 지난 1991년 늦가을 저녁 등 3일의 시간을 다룬다.
라스는 독일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로 유학을 와서 유명 화가 한스 구데의 제자가 됐지만 돌연 그를 만나기 싫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의 의식은 하숙집 딸 헬레네에 대한 집요한 사랑으로 옮겨간다. 라스는 정신착란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주변으로부터 소외당하면서도 그림만은 놓지 않는다.
2부(멜랑콜리아Ⅱ)는 1902년 노르웨이 남부 도시 스타방에르에 사는 라스의 누나 올리네로 주인공이 바뀐다. 라스와 달리 실존 인물이 아니라 포세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다. 라스는 두어 해 전에 죽었고, 올리네는 치매를 앓으며 혼자 산다. <멜랑콜리아Ⅰ-Ⅱ>는 실제 역사에 상상력을 더한 소설이다. 욘 포세는 1인칭과 3인칭 시점을 오가며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썼다. 미사여구 없는 간결한 문장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병든 내면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한국어 번역을 통해서도 시를 읽듯이 문장 사이에서 고요하게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부족하지 않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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