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간병, 애정과 의무 그 어디쯤[책과 삶]
어머니를 돌보다
린 틸먼 지음·방진이 옮김
돌베게 | 263쪽 | 1만6800원
소설가 린 틸먼이 희귀 질병을 앓는 어머니를 11년간 돌본 경험을 사실적으로 적은 자전적 에세이다. ‘영케어러(가족돌봄청년)’ 문제가 화두가 된 한국에서도 의미 있는 이야기다.
저자의 어머니 소피 메릴은 1994년 말 병을 얻었다. 의료 인력의 치료를 받았으나 저자를 비롯한 세 딸이 주로 어머니를 돌봤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성년이 될 때까지라는 기약이라도 있지만, 중병이 든 부모를 돌보는 것은 기약이 없다. 기약이라면 ‘회복’ 혹은 ‘죽음’이겠으나 전자는 불가능한 꿈과 같고 후자는 너무나 불온하다.
책은 나이 듦과 병듦, 필수 노동으로서의 돌봄, 그리고 그 끝에 놓인 죽음이라는 인간 조건을 냉철하게 직면한다. 작가는 “나는 좋은 딸 역할을 연기했지만 거기에는 내 진심이 담겨 있지 않았고 대신 내 양심은 담겨 있었다”고 고백한다. 양심이란 어쩌면 사랑이나 애정보다도 그를 불온해지지 않게 견디게 한 힘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바라보며 담대해져야 하는 것은 돌봄을 하는 이들이 겪는 또 하나의 어려움이다. 작가는 어머니가 죽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어머니의 때가 오면 그렇게 될 거예요. 어머니의 몸이 아직 준비가 안 되어서 그래요, 죄송해요”라고 위로했다.
어머니를 돌보는 과정에서야 그를 이해하기도 한다. 작가는 어머니를 언제나 멋쟁이였고, 만약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에만 머물지 않았을 장래성이 있는 소녀였을 것이라고 적는다.
어머니를 꿈이 있는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어머니가 보통의 ‘어머니’로 건강히 존재할 때가 아닌 병상의 환자로서 낯설어졌을 때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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