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제약회사 직원, 中서 간첩혐의 구속... 방첩법 시행 후 첫 사례
일본 정부가 19일 중국 정부에 간첩 혐의로 구속된 일본 제약회사 직원 A씨의 석방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7월 중국 ‘반(反)간첩법(방첩법)’ 시행 후 외국인이 간첩 혐의로 공개적으로 구속 전환된 첫 사례다. 개정된 중국 반간첩법은 간첩 행위의 범위를 넓히고 처벌을 강화해 모호해진 조항에 어느 나라든 현지 주재원과 교민이 억울하게 처벌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50대 일본 남성(A씨)이 이달 중순 체포됐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중국 측에는 다양한 레벨(단계)과 기회를 통해 조기 석방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지지통신은 이날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중국의 반간첩법 개정안이 지난 7월 시행된 이후 (당국에 의한) 자의적인 적용에 대한 불안이 높아져 왔다”고 지적했다.
A씨는 지난 3월 간첩 혐의 등으로 중국 당국에 체포됐고, 지난달에는 임시 구속에 해당하는 ‘형사 구류(최장 37일)’ 상태로 바뀌었다. 이어 정식 구속과 비슷한 개념의 ‘체포’로 전환된 것이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중국은 법치 국가로 법률에 따라 사건을 처리할 것이고, 법률에 따라 당사자의 합법적인 권리를 보호할 것”이라고만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조사한 일본 정부는 “A씨의 간첩 혐의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어서 양국 관계는 급랭 중이다.
일본 매체들에 따르면, A씨가 근무한 B제약사는 1939년 설립됐다. 도쿄거래소 상장 기업으로 연결 매출액이 1조3000억엔(약 11조원)에 달하며 미국, 중국, 한국, 브라질 등 각국에 지부를 두고 있다. A씨가 체포된 지난 3월은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기 직전 시점이었다. 아사히신문은 A씨가 베이징 등 중국 지부에서만 20년가량 근무한 ‘중국통’이라고 보도했다. 의료계와 연관된 중국 정부 인사들과도 활발히 교류해 왔다고 한다.
A씨의 혐의를 놓고 일본 매체들에서는 “산업 스파이 행위를 했는지 단정할 순 없지만, 중국으로부터 의료 기밀을 빼내야 할 만한 기업 수준은 아니다”라는 보도가 많다. 일본 주간지 프레지던트는 A씨가 근무하던 제약사의 주력 제품 중 하나가 장기 이식자에게 투여하는 면역억제제란 점에서 A씨가 중국 내 부당한 장기 이식 상황 등에 대해 조사하다가 법 위반을 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또 A씨가 중국 공무원의 부패 혐의에 연루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다른 국가에서라면 통상 간첩죄로 처벌받지 않는 ‘미운털’이 박힌 것 아니겠느냐는 취지다.
산케이신문은 “이번 사태로 중국에서 활동하는 일본 기업들의 우려는 커질 것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19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일·중 지식인들의 회의체인 ‘도쿄·베이징포럼’에서도 이번 사태가 화두에 올랐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한 일본인 참석자는 “구속된 이유조차 모르면 일본 기업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니혼게이자이는 중국일본상회가 이달 공개한 사업 환경 조사 결과에서 중국 주재 일본 기업들 중 ‘올해 투자 규모를 작년보다 줄이거나 아예 없애겠다’는 답변이 절반에 육박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반간첩법의 영향을 받고 있는 건 일본 기업만은 아니다. 지난 3월 중국 당국으로부터 베이징 사무소를 급습당해 중국인을 포함한 직원 5명이 체포된 미국 신용조사회사 민츠그룹은 베이징 사무소를 닫았다. 영국 기업 실사 업체 리스크어드바이저리그룹도 최근 홍콩 지사를 폐쇄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반간첩법으로 중국 내 외국계 기업 활동이 갈수록 축소하고 있다”고 했다.
☞반(反)간첩법
중국 정부가 국가 기밀 유출, 산업 스파이 등 간첩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도입한 법안. 지난 7월 개정된 반간첩법은 모호한 조항으로 인해 논란이 됐다. 간첩 행위 적용 대상을 ‘국가 기밀·정보를 빼돌리는 행위’에서 ‘국가 안보·이익과 관련된 자료 제공’ ‘간첩 조직에 의지하는 행위’ 등으로 크게 확대했다. 또 ‘시(市)급 이상 안전 기구’의 허가만 받으면 혐의자의 정보나 물품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하면서 물증이 없어도 정황만으로 처벌할 수 있게 했다. 중국 주재 외국계 기업 직원과 가족 등뿐 아니라 관광객에게도 적용될 수 있어 각국은 중국 방문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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