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이제 막을 내리는 하루키 월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나왔다. 1990년대 초반부터 30년 동안 하루키 소설을 따라 읽어온 터라 이번에도 습관처럼 책을 주문했고, 760쪽 분량이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이틀간 계속 읽을 수밖에 없었다. 나처럼 오래된 독자들 때문인지 혹은 ‘하루키’라는 이름이 여전히 새로운 독자들을 끌어들이는지, 이 책은 예약판매 단계부터 3쇄라는 기록을 세웠을 뿐 아니라 두 달째 주요 서점의 문학 부문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49년생으로 올해 74세인 하루키는 극렬한 학생운동 세력인 ‘전공투 세대’로서 폭력적 집단주의에 반발해 개인의 내면과 일상에 천착했다. 너무 강한 빛을 보면 사물의 윤곽이 겹쳐 보이는 것처럼 ‘하루키 월드’에는 늘 착시와 환상이 함께했고, 그 속에서 삶을 지탱해주는 건 자신의 감각에 집중하면서 찬찬하고 정성스럽게 일상을 꾸리는 일이었다. 그의 소설이 주는 위로는 슬프고 부조리한 현실로부터 비켜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곳에서는 비록 상처받고 연약한 존재일지라도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은 끊어질 듯 이어진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는 첫사랑의 상대인 소년과 소녀가 나온다. 그들은 둘만의 비밀 도시를 상상한다. 어느 날 소녀의 소식이 끊어지고 소년은 그 도시로 들어간다. 높은 벽으로 둘러싸이고 시간이 없으며 일각수들이 사는 그곳에 머물려면 그림자를 버려야 한다. 소년에서 성인이 된 남자는 그 도시의 도서관에서 여전히 어린 첫사랑 소녀가 만들어주는 차를 마시면서 밤새 사람들의 꿈을 읽는 일을 한다. 그러나 현실로 다시 돌아온 남자는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중년의 시골 도서관장이 되어 다시 그 도시와 연결된다.
이런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나는 한 시대의 종말을 느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원환 구조를 이룬다. 주인공의 생애 전반부에 배치됐던 사건들이 후반부에 약간의 차이와 함께 반복되면서 그 의미를 드러낸다. 하루키가 처음 썼던 중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1980)을 40년 만에 개작(쉼표가 빠졌다!)했다는 사실 역시 같으면서 다른 소설의 플롯과 일치한다. 서른한 살에 쓰던 소설을 일흔한 살에 다시 썼다는 감격 때문인지, 새침한 하루키가 ‘작가 후기’까지 붙였다. 너무 개인주의라는 비판을 받던 하루키이지만 노년에 접어든 탓인지, 주인공이 호감을 품고 소통하는 인물을 네 명쯤 넣었다.
그런 하루키의 반대편에 올해 3월 세상을 떠난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1935년생)가 있다. 이 대목에서 그가 떠오른 건 오에가 하루키를 지독하게 싫어했다는 세평이 있기 때문이다. 하루키 작품을 비행기에서 시간 보내려고 읽는 ‘공항소설’로 폄훼했으며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때 앞선 수상자로서 반대했다는 것이다. 진위를 확인하기 어렵지만, 일본 진보주의와 평화주의의 상징, 전후 민주주의의 기수로 추앙받던 오에의 성향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다. 오에의 타계와 함께 일본 식민지배에 대한 원죄의식으로 한국 진보세력을 지지하던 세력이 사라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하루키의 시대 역시 동시에 소멸할지 모른다. 어떤 사람을 ‘그 불확실한 벽’ 안으로 숨어들도록 만들었던 바깥 세계 역시 불확실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공항소설’은 글로벌 자본주의가 한창이던 한 세대의 산물이다. 파스타와 샐러드, 맥주와 와인, 재즈와 클래식, 소박하지만 고급스러운 코즈모폴리턴 취향이 등장하는 하루키의 소설에서 늘 문제가 되는 건 자아의 고독과 존재 이유이다. 오에의 불만은 역사와 사회가 생략됐다는 것이었으며 더구나 거기에는 기후위기도, 팬데믹도, 불평등도, 전쟁도 없다. 그렇기에 출발점으로 돌아간 ‘하루키 월드’의 원환 구조는 완성되는 동시에 닫히고 있다.
이렇게 새롭지만 오래된 ‘하루키 월드’를 지키기 위해 이 소설을 주문한 독자들은 나 이외에 누구일까. 워낙 소설을 읽지 않는 시절에 그래도 한 권쯤 읽는다면 그 유명한 하루키를 선택한 것일까. 그래서인지 작품에 대한 논의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문학 부문의 또 다른 베스트셀러를 살펴보니 올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노르웨이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욘 포세의 장편 <아침 그리고 저녁>이다. 하루키 신작과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문학 시장의 양대 기둥은 여전하다. 하루키 역시 이런 쇠퇴에 마음이 쓰인 것일까. 기구한 사연을 지닌 독지가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산골 도서관의 존재를 신성하고 아름답게 그렸다. 사람들의 꿈이 모이고 그것을 읽는 곳도 도서관이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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