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서 3700명 죽어도 美의 '자제 촉구'는 아직도…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이스라엘의 무차별 보복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망자가 3700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미국이 자제를 촉구하지 않는 데 대한 내부 비판이 커지고 있다. 분쟁 시작 뒤 요르단강 서안에서도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폭력이 크게 늘었다.
19일(현지시각) 유엔(UN)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서안에서 이스라엘군 및 불법 정착촌 주민들에 의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폭력이 대폭 증가했다. OCHA는 이스라엘군의 수색 작전 중 누르 샴스 난민캠프에서 13살, 16살 소년 2명이 숨진 것을 포함해 지난 24시간 동안 서안에서 14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군 총탄에 맞아 숨지고 1명이 정착민에 살해당했다고 밝혔다. OCHA는 지난 7일 가자를 통제하는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분쟁이 시작된 뒤 19일 오후 9시까지 서안에서 어린이 19명을 포함해 73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숨졌고 어린이 1명을 포함해 6명이 정착민에 살해 당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은 지난해부터 테러리스트 소탕을 이유로 수시로 서안에서 수색 작전을 벌였지만 분쟁 시작 뒤 팔레스타인 부상자 규모가 급증한 상황이다. OCHA는 지난 7일 이후 서안에서 최소 129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1399명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부상 당했고 35명은 정착민 폭력으로 다쳤다고 밝혔다. OCHA는 부상자의 27%가 실탄에 의해 다쳤는데 이는 올해 들어 10월7일까지 실탄으로 인한 평균 부상자 수보다 거의 8배 높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착민 폭력도 증가했다. OCHA는 7일부터 19일까지 이스라엘 불법 정착민들이 서안에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저지른 폭력이 100건 가량 돼 하루 평균 8회나 발생하고 있다고 짚었다. 올해 일 평균 3회 가량 발생하던 것에서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로이터> 통신은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이 시작된 뒤 비교적 온건한 파타당이 집권 중인 서안에서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팔레스타인인들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항의 시위가 벌어지고 일부 무장 투쟁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구호가 등장하며 이스라엘 언론이 이 지역이 가자,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와의 전선에 이은 '제3의 전선'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통신은 고립된 가자와는 달리 서안에선 일상적으로 이스라엘군 수색과 정착민 폭력이 일어나 날마다 새로운 충돌이 빚어지지만 하마스와 같은 무장 조직이 조직될 여력은 적다고 짚었다.
가자의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가자 보건부는 19일까지 가자에서 어린이 1524명을 포함해 3785명이 죽고 1만2500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가자 주택 당국에 의하면 이 지역 주택의 30%가 손상을 입었다. OCHA는 가자 주민 절반인 1백 만 명 가량이 난민이 됐다고 추정했다. 이 중 절반 가량인 52만7500명이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쉼터에 머물고 있다.
식량, 연료 공급까지 차단한 이스라엘의 가자 전면 봉쇄가 열흘 넘게 이어지며 인도주의적 위기도 심화되고 있다. 가자 주민 한 명이 먹고 요리하고 씻는 데 소비하는 모든 물의 총량은 하루 3리터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기 공급이 끊겨 의료 붕괴가 현실이 돼 가고 있는 가운데 세계보건기구(WHO)는 지금까지 의료 자원에 대한 59건의 공격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병원 17곳, 구급차 23대가 피해를 입었고 의료 종사자 16명이 사망했다.
전날 이스라엘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집트를 통해 20대의 구호 트럭을 가자로 진입시키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지만 <AP> 통신을 보면 19일 마이클 라이언 WHO 비상대응국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해당 분량은 "물 한 방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트럭 20대 통과는) 현재 가자가 직면한 바다와 같은 필요에 물 한 방울"을 보내는 격이라며 "20대가 아니라 2000대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OCHA는 이스라엘 공습으로 폐쇄된 이집트와 가자 사이 통행로인 라파 검문소 인근에 가자 지원을 위한 3000톤(t) 가량의 구호 물자를 실은 200대 이상의 트럭이 대기 중인 것으로 추정했다. 전날 바이든 대통령은 도로 보수 뒤 이르면 20일 트럭이 가자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봤지만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및 유엔 당국자들을 인용해 도로 수리가 지연되며 21일 이전에 물품이 전달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도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스라엘에 인도주의적 봉쇄 해제 및 대응 자제를 촉구하지 않는 미국 및 서방에 대한 내부 비판도 나오고 있다. 18일 미 국무부 정치군사국에서 무기 이전 감독 업무를 맡았던 한 관리가 의회 및 이번 분쟁에서 이스라엘에 무기를 계속 보내기로 한 바이든 정부의 결정에 반발해 사임을 표명하기도 했다. 11년 간 국무부에서 근무한 조시 폴 의회 및 대외 업무 담당 국장은 소셜미디어(SNS)에 사임 이유를 밝히며 미국의 "한 쪽에 대한 맹목적 지지"를 비판하고 "이스라엘이 취하고 있는 대응과 해당 대응 및 점령 유지에 대한 미국의 지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 모두에게 점점 더 깊은 고통을 초래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18일 시오니즘(유대민족주의)에 반대하는 유대인 단체 회원 수백 명이 미 의회 부속 건물 내부 및 의사당 인근에서 "가자를 살려달라"며 의회가 휴전 결의안을 통과시키기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시위 참가자인 재이 세이퍼가 "집단학살(제노사이드) 생존자의 후손인 유대인으로서 현재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집단학살을 막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16일 미 민주당 하원의원 5명이 즉각적 휴전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했고 추가로 8명이 서명하기도 했다.
하마스에 의해 가족을 잃은 이스라엘인 유족 일부도 보복 공습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번 하마스 습격으로 형제를 잃은 이스라엘인 노이 카츠만이 장례식에서 "우리의 죽음과 고통을 다른 가족의 죽음과 고통을 가져오는 데 사용하지 말라"고 촉구했다고 전했다. 노이와 그의 형제 하임 카츠만은 평화 및 인권운동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매체에 따르면 84살의 어머니가 하마스에 인질로 끌려 간 여성·평화운동 활동가 네다 헤이먼 또한 "가자 폭격은 영구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며 "오직 정치적 해결책 만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말했다. 매체는 다만 장례식 연설 뒤 노이에게 20건 이상의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지만 이스라엘 매체에선 요청이 없었다고 전하며 이러한 시각이 주류가 아님을 시사했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칼럼니스트 하워드 프렌치는 19일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는 값비싼 실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건으로 "중동이 그 어느 때보다 외교적이고 정직한 중개자를 필요로 하는 시점에서 미국이 역내 분쟁에서 노골적으로 편파적인 존재로 여겨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중동을 넘어 전세계에서 미국의 이미지가 타격을 받으며 당장 우크라이나전에서 남반구 국가들의 지지를 모으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한편 <로이터>에 따르면 19일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가자 인근에 집결한 병사들을 향해 "지금은 가자를 멀리서 보고 있지만 곧 안에서 보게 될 것이다. 명령이 나올 것"이라며 지상군 진입을 시사했다. 이번 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바이든 대통령, 리시 수낵 영국 총리 등이 이스라엘을 연이어 찾으며 이들의 방문 기간 중엔 지상 공격이 연기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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