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빈대의 습격
조선 후기 <득효방>이라는 책에 “빈대는 부평초(개구리밥)를 태워 연기를 내면 없어진다”는 민간요법이 나온다. <증보산림경제>와 <규합총서>는 지네를 태우거나 지네와 거미를 꿩의 깃과 함께 태우는 것을 빈대 퇴치법으로 소개한다. 이런 근거로 미뤄보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빈대 미워 집에 불 놓는다”는 속담도 있으니 옛 조상들이 빈대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짐작할 만하다.
1924년 일제강점기 경성부청(서울시청) 숙직실에 불이 났다. 한 직원이 벽면에 휘발유를 뿌려 빈대 잡기에 나섰는데 주방 석탄불이 옮겨붙은 것이다. 1936년 부산 주택가에서도 휘발유로 빈대 잡다 불씨가 번져 8시간 동안 38가구가 타버린 일이 있었다. 웃지 못할 ‘그때 그 시절’ 이야기로 넘길 법한데, 놀랍게도 해외에선 이런 일이 곧잘 이어지고 있다. 2017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알코올로 빈대 잡다 난 불로 아파트 48채가 소실됐고, 2021년에는 빈대 때문에 자기 차에 불을 질러버린 사람도 나왔다.
빈대는 아래위로 납작한 6~9㎜ 크기의 작은 곤충이다. 같은 흡혈 곤충이지만, 좌우로 납작하고 동물에 붙어 기생하는 벼룩과 다르다. ‘베드 버그’(침대 벌레)라 불리듯 침대·매트 주변에 숨어 있다 밤사이 사람 피를 빨아먹고 사는 지긋지긋한 존재다. 세균을 옮기진 않지만, 빈대에 줄줄이 물려 빨갛게 달아오른 피부의 가려움증이 극심하다. 한두 마리 잡아도 끝없이 번식하고, 소탕하려면 집 전체를 소독해야 하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언제 물릴지 모를 불안과 노이로제 같은 정신적 피해가 상처보다 훨씬 크다고 한다.
1970년대 이후 자취를 감춘 줄 알았던 빈대가 다시 나타났다. 최근 인천 찜질방에 이어 대구의 한 대학기숙사에서도 다량 발견됐다. 프랑스 파리의 기차·호텔·아파트에서 빈대가 기승을 부린다는 소식이 들린 지 한 달 만이다. <빈대는 어떻게 침대와 세상을 정복했는가>를 쓴 빈대 전문가 브룩 보렐은 20세기 중반 화학살충제 대량 보급으로 지구상에서 거의 퇴치된 빈대가 반세기 만에 내성을 갖추고 재출현한 것이라고 했다. 빈대의 역습이다. 21세기 한국도 ‘빈대와의 전쟁’이 불가피해졌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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