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창업자의 경영권 보호하는 ‘복수의결권’
[IT동아 한만혁 기자] 오는 11월 17일 복수의결권 제도가 시행된다.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벤처기업(스타트업)을 대상으로 1주당 최대 10개 의결권을 허용하는 제도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를 통해 벤처기업 창업자가 경영권 상실에 대한 우려 없이 기업 성장에 매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너무 까다로운 조건 탓이다.
복수의결권의 필요성
우리나라 상법은 ‘주주평등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주주평등의 원칙은 보유한 주식 수에 따라 의결권을 갖는다는 것으로 ‘1주 1의결권 원칙’이라고도 한다. 이번에 시행되는 복수의결권은 이 원칙의 첫 예외 조항이다.
기업의 경우 사업을 영위하고 성장하기 위해 많은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초기에는 창업자 역량으로 충당한다 해도, 일정 시점 이후에는 외부 투자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때 투자자는 투자 대가로 해당 기업의 이익을 배당받을 수 있는 주식과 주주로서 기업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의결권을 취득한다. 의결권은 주주평등의 원칙에 따라 투자한 자본이나 주식 수에 비례해 분배된다.
그런데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나타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적대적 M&A다. 적대적 M&A는 투자자가 기업의 의결권을 다수 확보하고 기존 임원진을 교체한 후 기업지배권을 탈취하는 것을 말한다. 이후 창업자나 기존 임원진 의사와 상관없이 주요 자산을 매각하거나 특정 기업과 M&A를 강행하기도 한다. 창업자 입장에서는 아무런 대응을 할 수가 없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복수의결권이다. 특정 주주, 즉 창업자에게 보다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신규 투자자가 들어와 지분이 줄어도 창업자가 원래 의도한 대로 안정적이고 일관된 사업 운영이 가능하다. 물론 적대적 M&A도 방어할 수 있다.
복수의결권, 까다로운 조건 충족 필요
지난 4월 복수의결권 관련 내용을 담고 있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해당 개정안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2020년 10월부터 추진했던 법안이다. 하지만 대기업이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 부딪혀 진척되지 못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복수의결권 제도화를 올해 핵심 미션 중 하나로 설정하고 역량을 집중했고 그 결과 1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복수의결권은 상법에서 규정한 원칙의 예외 조항인 만큼 강도 높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선 비상장 벤처기업이어야 하며, 창업 이후 100억 원 이상 투자를 받고 마지막 투자가 50억 원 이상이어야 한다. 또한 창업자는 기업 설립 당시 정관에 기재된 발기인이어야 하고 주식 발행 당시 등기 이사로 기재되어 있어야 한다. 이 조건을 충족한 상태에서 투자 유치 이후 창업자의 지분이 30% 이하로 내려가거나 최대 주주 지위를 벗어나는 경우에 발행할 수 있다.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을 위해서는 기업 정관에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 내용, 절차, 발행 수, 의결권, 존속기간 등을 기재해야 한다. 특별 결의도 거쳐야 한다. 기존 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기 때문에 의결권이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3/4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한다.
효력 발휘 기간도 제한된다. 복수의결권 주식의 존속 기간은 최대 10년이며, 상장 시 최대 3년으로 줄어든다. 이후에는 보통주로 전환된다. 상속이나 양도, 이사직 상실, 공시대상기업 집단에 편입된 경우에도 보통주로 바뀐다. 이를 통해 복수의결권이 악용될 가능성을 차단한다.
또한 복수의결권을 발행한 기업은 중소벤처기업부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부여된다. 보고하지 않거나 내용을 허위로 기재한 경우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허위 발행 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복수의결권에 대해 설명하며 “고성장 벤처기업이 경영권 상실에 대한 불안감 없이 투자 유치를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제도”라며 “창업자는 기업 성장에 매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세부 시행령을 위해 지난 8월 정책감담회를 통해 전문가 및 현장의 의견을 반영했다.
실효성 생각한다면 사전 동의권에 대한 고민도 필요
업계에서는 창업자의 기업 경영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는 복수의결권이 오랜 논의를 거쳐 시행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실효성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는 기업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에 대해 제도의 남용을 막고 원래 취지에 맞게 쓰이기 위한 안전장치라는 견해도 있다.
김성훈 법무법인 미션 대표 변호사는 “상장 전 창업자 지분이 적은 경우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을 통해 안정적으로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다수 스타트업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보다 많은 스타트업의 경영권 상실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선 사전 동의권에 대한 논의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이 투자 유치를 진행하는 경우 투자 계약서, 주주 간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이를 통해 투자자에게 경영상 중요 의사 결정에 대한 사전동의권을 부여한다. 경영에 변경 사항이 생기거나 의사 결정이 필요한 경우 투자자에게 사전에 공유하고 동의를 구한다는 조항이다. 투자 이후 관리 및 감독을 통해 스타트업의 안정적이고 건설적인 성장을 지원한다는 취지지만 결국 투자자에게 기업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셈이다.
김성훈 대표 변호사는 “이번 복수의결권 시행은 기업의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해 고민하는 시작점이라는데 의의가 있다”라며 “이를 통해 기업의 의사 결정 구조, 창업자와 투자자의 권리 보호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글 / IT동아 한만혁 기자 (m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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