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악은 평범하다" 외친 한나 아렌트의 모든 것

구은서 2023. 10. 20.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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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악(惡)'을 별나게 생각한다.

독일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그는 '악은 평범하다. 거대한 악의 뿌리에는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게으름과 멍청함이 있을 뿐이다'고 결론 내렸다.

'악의 평범성' 정도만 들어봤을 뿐 아렌트의 철학을 깊이 들여다본 적 없고, 그럼에도 아렌트를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을 위한 책이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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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간 없이 사유하기
한나 아렌트 지음 / 신충식 옮김
문예출판사 / 824쪽│4만3000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남긴
20세기 저명한 정치사상가
일생동안 남긴 대담·에세이 등
집필 순서대로 한 권에 담아내
"사유가 위기를 넘는 방법이다"


사람들은 흔히 ‘악(惡)’을 별나게 생각한다. 악인은 평범한 시민과는 전혀 다른 끔찍한 괴물이고, 그의 악행은 철저하게 의도된 결과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악하지 않다’는 믿음이 그 아래에 깔려 있다.

20세기 저명한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1906~1975)는 이런 믿음을 산산조각 냈다. 독일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그는 ‘악은 평범하다. 거대한 악의 뿌리에는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게으름과 멍청함이 있을 뿐이다’고 결론 내렸다. 이것이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고, 이 개념은 훗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역작으로 출간된다.

최근 국내 출간된 <난간 없이 사유하기>는 아렌트가 일생 동안 발전시킨 사유의 과정을 한 권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그의 조교 출신인 제롬 콘이 아렌트의 글을 엮었다. 아렌트가 47세이던 1953년부터 70세 나이로 사망하기 전까지 남긴 글, 강연, 서평, 대담 등을 집필 순서대로 실었다. ‘악의 평범성’ 정도만 들어봤을 뿐 아렌트의 철학을 깊이 들여다본 적 없고, 그럼에도 아렌트를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을 위한 책이라고 할 만하다.

아렌트가 평생에 걸쳐 주장한 내용은 ‘사유하라. 위험은 무(無)사유에서 나온다’로 요약할 수 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사는 대로 살면, 우리는 일상에서 만나는 사건이나 사람에 대해 판단도 인식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판적 사고가 없는 삶은 잘못된 사고보다 위험하다는 게 아렌트의 주장이다.

“사유는 위기에 대면하는 한 가지 방식입니다. 사유가 위기를 제거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사유가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대면하는 것이 무엇이든 대면할 수 있도록 항상 우리를 새롭게 준비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유의 핵심은 ‘언어’와 ‘상상력’이다. 책을 번역한 신충식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언어는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에 접근할 수 있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언어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특수한 방식으로 형성해준다”고 설명했다. 또 사유는 단순히 자신의 경험을 되새김질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다.

책 제목은 이런 아렌트의 사상을 요약한다. ‘난간 없이 사유하기’는 누군가의 의견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사유하는 일을 뜻한다. 아렌트가 1972년 캐나다 토론토 사회정치사상연구회가 주관한 학술회의에서 한 참여자와 나눈 대화에서 따왔다.

“여러분은 계단을 오르내릴 때 넘어지지 않도록 항상 난간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난간을 잃어버렸습니다.” 난간을 잡지 않고 세상이라는 계단을 오르는 건 위태롭고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인간이라면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다.

읽기 수월한 책은 아니다. 800쪽이 넘는 분량에다가 내용도 심오하다. 책 끝부분에 실린 ‘옮긴이 해제 및 후기’가 그나마 독자가 기댈 만한 난간 역할을 한다. 순서대로 글을 읽어나가기 부담스러운 독자에게는 ‘자유와 정치에 관한 강연’ ‘인간의 조건에 관해’ ‘현대 사회의 가치들’ 등 강연과 대담 목차부터 읽어보는 방법을 권한다. 구은서 기자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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