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채금리 16년 만에 5%대 돌파… 금융시장 요동

안승진 2023. 10. 20.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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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공포 확산
파월 “인플레이션 여전히 높다”
금리 인상 가능성 언급 충격파
중동 충돌·유가 상승세도 여파
美 증시 3대 지수 일제히 하락
머스크 ‘잿빛 실적 전망’ 언급에
테슬라株 9.3% 폭락 220弗대로
국내 이차전지 주식 3∼5% 하락
‘안전 자산’ 금·달러화 강세 뚜렷
전 세계 금리의 척도인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2007년 이후 16년 만에 5%대를 돌파했다. 시장이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코스피는 기관 자금 이탈로 약 7개월 만에 2400선 아래로 내려앉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충돌에 유가도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금융시장의 전반적인 불안감을 키웠다.
코스피 7개월 만에 2400선 붕괴 코스피 지수가 전일 대비 40.80포인트(1.69%) 내린 2375.00에 장을 마친 20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업무를 마친 딜러가 자신의 컴퓨터 화면을 내려다보고 있다. 코스피 지수 종가가 2400선 밑으로 떨어진 것은 약 7개월 만이다. 코스닥 지수도 전거래일보다 14.79포인트(1.89%) 하락한 769.25로 마감했다. 남정탁 기자
20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19일 오후 5시(현지시간) 직후 연 5.001%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7년 7월 이후 16년 만에 5%대를 상회한 것이다. 미 10년물 국채 금리는 전 세계 장기 금리의 기준점 역할을 한다. 미 10년물 국채 금리 상승은 주택·학자금·자동차 대출 금리 상승과 신용도가 낮은 회사채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기업의 자금 조달 부담으로 작용한다. 미국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이미 2000년대 이후 처음으로 8%를 찍은 상태다.

미 국채 금리는 9월 소매판매 증가율 등 미 경제 지표의 호조, 중동 분쟁 등 지정학적 우려에 따른 수요 변화 등이 밀어올린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이 이스라엘·우크라이나·대만 지원을 위해 국채 발행량을 늘릴 가능성이 커진 반면, 중국 투자자들이 지난 8월 150억달러(약 20조원)어치의 미 장기 국채를 팔았다는 소식은 채권값을 하락시키고 금리를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파월 “과잉 긴축 아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19일(현지시간) 뉴욕경제클럽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그는 이날 물가 둔화 조짐을 인정하면서도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높다”며 고금리 정책 장기 유지 가능성을 시사했다. 뉴욕=AP연합뉴스
시장은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계속 고금리 정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신호를 낸 것에도 영향을 받았다. 파월 의장은 이날 뉴욕 경제클럽 연설에서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너무 높다”며 “최근 몇 달간의 좋은 수치는 인플레이션이 우리 목표를 향해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확신을 쌓는 데 필요한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채권 수익률 상승이 전반적인 금융 상황을 ‘상당히’ 긴축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현재 통화정책에 대해서는 과잉긴축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시장은 이 발언을 추가 금리 인상 여지로 받아들였다. 올리버 퍼쉬 웰스파이어 어드바이저 수석 부사장은 로이터에 “시장은 파월 의장이 금리 인상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하기를 바랐으나, 그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 다시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암시했다”고 말했다.

파월의 발언에 국내외 주식 시장은 출렁였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0.75%,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0.85%, 나스닥지수는 0.96% 각각 하락하는 등 미 증시 3대 지수가 모두 떨어졌다.
머스크 “전 분야 소비 위축”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18일(현지시간) 테슬라의 저조한 3분기 실적과 관련해 고금리 장기화 등 세계 경제 상황의 어려움을 언급하며 소비심리가 전 분야에서 위축됐다고 말해 월가 투자 심리 악화에 일조했다. 사진은 머스크 CEO가 지난 6월 프랑스에서 열린 유럽 기술박람회에 참석한 모습. 파리=AP연합뉴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시장 기대에 못 미치는 3분기 실적을 내놓고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향후 사업 전망에 부정적 견해를 드러낸 점은 월가 투자 심리를 위축시켰다. 테슬라 주가는 하루 만에 9.30% 폭락한 220.11달러에 19일 장을 마감해 시가총액 700억달러(약 95조원)가 증발했다.

국내 증시도 이틀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날 대비 1.69% 하락한 2375.00로 장을 마쳤다. 코스피가 종가 기준 2400선을 하회한 것은 지난 3월21일(2388.35) 이후 7개월 만이다. 기관이 강한 매도세를 보이며 코스피 전체 종목 중 87%가 하락세를 보였다. 코스닥은 1.89% 하락한 769.25을 기록했다.

테슬라의 주가급락 소식에 국내 이차전지주를 중심으로 하락세가 뚜렷했다. 테슬라에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은 전날 대비 3.54% 주가가 하락했고 POSCO홀딩스(-5.03%), LG화학(-3.04%), 삼성SDI(-2.83%), 포스코퓨처엠(-5.66%) 등 이차전지 관련 주가가 하락했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에코프로(-5.89%), 에코프로비엠(-2.51%), 엘앤에프(-4.98%) 등 이차전지 대표주들이 약세를 보였다. LG화학, 삼성SDI, 엘앤에프는 52주 신저가를 찍었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전기차 수요 부진 우려가 부각되는 것은 경쟁 심화에 따른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일부 업체들은 배터리 가격 하락을 예상하고 판매 조정을 실시한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국채와 함께 대표 안전 자산으로 꼽히는 금값은 사흘 연속 상승했다. 금 현물은 이날 온스당 1.3% 오른 1973.41달러에 거래됐다. 미국 금 선물도 0.6% 올라 1980.50달러에 거래됐다.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 위치한 뉴욕증권거래소(NYSE)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달러화를 다른 6개 주요 통화와 비교하는 달러인덱스는 이날 오후 3시30분 기준 106.38로 0.12% 상승했다. 달러인덱스가 100을 상회하면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가 높은 것을 뜻한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5.0원 내린 1352.4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장 초반 환율이 상승세를 보였지만 수출업체들의 달러매도 물량이 유입되면서 하락세로 돌아섰다.

국제유가는 이·하마스 분쟁의 확전 가능성에 상승세를 이어갔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이날 가자지구 접경 지역에 집결된 지상군에게 진입을 위한 대비 태세를 유지하라고 명령하며 긴장감이 높아졌다. 12월물 브렌트유가 1% 오른 배럴당 92.38달러를 기록했고,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1.2% 상승한 89.37달러를 기록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 수출 금지 제재를 일부 완화했는데도 상승세는 그치지 않았다.

최유준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중동 사태의 불확실성이 높아졌고 확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유가는 물가와 긴축을 자극하는 변수이고 미국의 정치 불확실성은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 행정부 정책 지속성에 영향을 주고 있어 투자심리를 냉각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장기 국채금리 상승과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는 단기적으로 주식시장을 하락시킬 수 있는 변수”라며 “다만 9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이후 연준 위원들의 발언 강도가 누그러지고 있다는 점, 이·하마스 사태의 국제전 확산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승진·윤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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